공간부족과 국제교육 위해 논의 시작 … 투기자본과 얽히며 일방통행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서울 관악구에 터를 잡은 서울대에서 차로 약 30㎞를 달리면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시흥시 배곧신도시 개발구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4907㎡규모로, 인근 오이도역과 인접해 있고 소래포구 등 해안가 명소들도 가깝게 있다. 배곧신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서울대 시흥캠퍼스 터는 건너편의 연세대 송도 국제캠퍼스와 마주하고 있다. 배곧신도시로 진입하기 전 군자대교를 건너면 곧장 연세대 송도캠퍼스로 갈 수 있는 경로다.

배곧신도시는 본래 화학성능 시험장으로 쓰였던 땅이다. ㈜한화가 1985년부터 1996년까지 화학성능 시험장으로 매립해 1997년 준공해 썼다. 시흥시는 2006년 한화로부터 토지를 매입해 배곧신도시 조성에 뛰어들었다. 시흥시는 배곧신도시를 △주거용지 △주상복합용지 △상업용지 △교육 및 의료복합용지 △연구 R&D 용지 △도시 지원시설용지 △복합용지 △도시기반시설용지 및 기타시설용지 등으로 구분해 조성할 계획이다. 배곧신도시 개발은 1~3공구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고, 1~2공구는 6월 현재 90%를 넘는 공정률을 보이고 있고 3공구는 85% 공정이 진행됐다.

▲ 시흥시 배곧신도시 공사현장.

■대학 ㆍ지자체ㆍ건설업체 3자 구도 만족=시흥시가 계획하는 배곧신도시의 수용인원은 5만 6000명 2만 1541세대다. 현재 배곧신도시는 공동주택용지 12곳 가운데 9곳이 분양이 완료됐고, 주상복합용지와 단독주택용지는 모두 분양을 마쳤다. 이들 주거용지 분양 호재는 단연 서울대의 이전이다. 국내 굴지의 대학으로 자리매김해온 서울대가 일부 기능을 이전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각 언론들은 배곧신도시의 분양이 탄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실제 배곧신도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지역특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서울대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2007년 서울대의 국제화 캠퍼스 부지 공모에 지원한 시흥시는 2009년 서울대와 첫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2011에는 한발 더 나아간 기본협약서를 체결했다. 이어 시흥시는 2012년 공동협의체를 구성했고 2014년 1월과 3월 각각 서울대 시흥캠퍼스 시민토론조정협이회 발족과 ㈜한라 사업협약 체결 등이 이어졌다. 2014년 4월 30일에는 본격적인 삽을 들기 위한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 SPC)도 구성됐다.

앞서 지난 2007년부터 국제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신규캠퍼스 설립을 추진해온 서울대는 막대한 개발자금을 보태겠다는 시흥시의 설득에 배곧신도시를 새로운 캠퍼스 부지로 낙점했다. 여러해 동안 논의를 거듭한 서울대와 시흥시는 2011년 12월 기본협약서를 체결한 데 이어 2012년 2월 공동협의체를 구성했다. 2014년 3월에는 ㈜한라와 사업협약을 체결했고 시흥시와 한라, 서울대가 참여한 SPC를 설립하며 박차를 가했다.

3자간 사업구도는 서울대에 크게 불리한 점은 없다.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시흥시가 한라에 부지를 판매하고, 한라는 수익부지에 6700세대 규모의 아파트단지를 조성해 개발이익을 얻는다. 그리고 이 개발이익 가운데 일부를 서울대 시흥캠퍼스 조성 초기비용으로 토지와 함께 무상기증하는 형태다. 한라가 시흥캠퍼스 예상 수익 가운데 서울대로 기증할 것으로 추정되는 규모는 최소 1500억원에서 최대 4000억원이다.

문제는 이 대목에서 발생했다. 현재 시흥시와 한라는 개발이익을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 분양을 서둘렀고, 이 과정에서 서울대 학생들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기숙형대학(Residential College, RC) 모델과 신입생의 기숙사 의무입주, 일부 단과대학의 이전, 서울대병원의 이전 등이 논의된 것이다. 서울대 측은 그런 논의를 진행한 바가 전혀 없고 기숙형대학이나 단과대학 이전 등은 절대 불가한 사항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시흥시의 배곧신도시 홈페이지에는 강의동과 기숙사 및 교직원 숙소가 배곧신도시에 설립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반교육시설을 비롯해 진료·연구 및 연구병원, 첨단 융합의학 연구단지, 치의학 대학원, 융복합 글로벌 신약 연구소 등이 시흥시가 밝힌 서울대의 이전 내역이다.

▲ 시흥시 배곧신도시 주거지역 분양 현황.

■"서울대 간판팔이 안돼"=학생을 비롯한 서울대 구성원들은 줄곧 서울대의 ‘간판’을 내세운 부동산 투기장사라며 발을 빼야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발간한 ‘시흥캠퍼스 철회에 나서는 우리들의 자료집’에서 총학생회는 “서울대본부가 파는 것은 서울대라는 이름의 학벌주의적 프리미엄”이라며 “이를 통해 받아오는 것은 부동산 투기금이다. 서울대가 들어온다는 식으로 배곧신도시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부풀려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것이다. 대학이 사회적 문제를 비판하고 시정하는 역할을 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서울대 총학생회는 이 배곧신도시로의 대학이전에 반대하며 대학 본관을 18일째 점거하고 있다. 10일 저녁 이 대학 총학생회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의결기구인 전체학생총회를 개최해 1097명의 찬성으로 행정관 건물과 총장실을 점거했다. 

그렇다면 서울대는 왜 시흥캠퍼스를 추진하려 할까? 서울대 본부의 주장과 그간의 논쟁을 살펴보면 서울대 측은 관악캠퍼스가 아닌 새로운 국제캠퍼스 조성에 실제로 목말라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서울대가 처음 시흥캠퍼스 조성에 착수했던 2007년 3월 공개한 장기발전계획서에 따르면 서울대는 2025년 세계 10위권 대학 진입을 목표로 글로벌 리더십 캠퍼스 구축을 꼽고 있다.

서울대가 그간 발표한 각종 중장기발전안을 종합하면 서울대는 시흥캠퍼스에 교육기능을 이전시키는 대신 기업 엔지니어와 외국인 교수, 서울대 출신 연구자 등을 주로 집결시킬 계획이다. 한 언론매체는 서울대가 오는 2025년까지 2026명 수준의 교수 인력을 2800명까지 늘리고 시흥캠퍼스에 △인공지능·자율주행차 △드론·로봇 △빅데이터 △조선해양 △바이오·메디컬 등 최근 화두가 된 4차 산업혁명 분야를 대비한 연구 인프라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서울대는 이 언론매체가 단독입수했다고 밝힌 기본계획안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이 같은 추진계획 내용에 대해서는 “그간 각종 채널을 통해 밝혔고 논의돼 왔던 사실이다. 확정안은 아니지만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서울대는 교사확보율이 247.8%에 달하는 거대한 캠퍼스지만 그간의 난개발로 인해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본부 측의 입장이다. 실제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도 서울대가 넓은 면적에 비해 활용공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매년 나온다. 캠퍼스위원회 등을 둬 난개발을 억제하고 중장기발전안에 기댄 점진적인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지만 권한이 크지 않아 한계가 있다는 게 학생들과 대학본부의 공통된 지적이다.

■3천억원 평창캠퍼스가 불신키워=그러나 학생들은 이 같은 관악캠퍼스의 난개발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여전히 시흥캠퍼스를 지을 당위성은 되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빌미는 대학본부가 제공했다. 준공 2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령캠퍼스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는 평창캠퍼스 때문이다. 2006년 서울대와 지방자치단체가 산학협력 촉진과 바이오산업 클러스터 형성을 위해 3451억원을 투자해 조성된 평창캠퍼스는 277㎡에 달하는 대규모 캠퍼스지만 실제 입주기업은 3곳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농업기술대학원도 지난해 2학기 기준 정원 45명 중 32명에 불과했다. 국회예산처는 지난 7월 ‘2015 회계연도 결산 위원회별 분석’자료를 통해 “산학연 클러스트 구축을 위한 산학협력이 평창캠퍼스의 주요한 설립 목적”이라며 “평창캠퍼스의 자립 및 안정적 정착을 위해 산학협력을 보다 적극적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가 시흥시와 비밀리에 실시협약을 맺은 것도 학생들의 불신을 산 이유다. 서울대는 당초 시흥시와 실시협약을 체결할 시에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혀왔지만 실제 실시협약이 이뤄지던 당시에는 언론보도를 코앞에 두고 사실을 알리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또 시흥캠퍼스 조성을 위한 각종 학생 공동 위원회를 꾸리고도 회의를 진행하지 않는 등 학생소통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대는 연일 학생과의 소통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 총학생회는 서울대가 여전히 학생과의 대화는 외면하고 외부 언론에 시흥캠퍼스 홍보자료를 배포하는 등 학생을 기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측은 “향후 시흥캠퍼스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논의에서도 기숙형대학 설립과 특정 단과대학 이전, 특정 학년 이전은 배제될 것이란 방침은 확고하다. 총장 담화문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한 만큼 이런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대 시흥캠퍼스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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