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시민들은 결국 올 겨울에도 촛불을 들고야 말았다. 사상 최악의 비선실세 의혹이 터진 뒤 청와대는 사실상 녹다운됐고 집권여당도 그로기 상태다. 지푸라기 같은 지지율이나마 붙잡고 싶은 사람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셈법보다 정국이 앞서고 있다. 친박과 비박, 여당과 야당의 복잡한 정략과는 관계없이 실각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징조는 있었다. 국가는 앞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과 세월호의 비극 당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정부의 권위를 잃었다. 오히려 국가를 대신했던 의인들을 차가운 동토로 쫓아버린 국가를 시민들은 봤다. 연이은 무능으로 앞선 총선에서 참패한 뒤에도 여전히 무도하게 사정의 차디찬 칼날을 휘둘러댔던 공권력의 그 뒤에, 사적인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음이 드러난 이상 이 정권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이제 누가 이 정부의 정책을 신뢰할까. 지난 4년여간의 집권기간 동안 어떤 결정이 최순실의 것이 아니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서늘한 상상을 해보자. 국립대 총장 후보자였던 한 교수의 고백처럼, 누가 국립대 총장을 ‘간택’하고 있었나? 누가 대학들이 모두 반대하는 줄세우기식 대학평가를 강행했나? 누가 그 대학들을 부실대학이라 이름 붙이고 내년부터 고등교육계에서 발을 빼라고 강요했나? 도대체 누가 사학비리의 당사자들을 끝까지 비호해왔는가? 누가?

교육의 근간이 단 한 사람의 사적 이익과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돼왔음을 상상하는 것은 한겨울에도 오한에 머리끝이 쭈뼛할 만큼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태는 이미 시민의 상상력을 뛰어넘어버렸다. 정책이 그럴진대 인사라고 오죽하겠는가.

국립대 총장을 차치하더라도, 이미 교육부 차관인사는 수차례 ‘코드인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정교과서 추진, 누리과정 국면돌파 등이다. 위기마다 개각을 단행해 국면을 전환하는 것은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치행위지만, 그 결과가 코드인사라면 곤란하다. 특히나 그게 대통령이 아닌 비선실세의 ‘코드’와 맞춰져 있다면 아연실색할 일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아무도 정부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교육부도 마찬가지다. 비선실세 의혹에 연일 아니라는, 억울하다는 답변만 내놓았던 교육부는 더 이상 교육부가 아니다. 이제와 이화여대 학사관리 감사를 펼친다고 하지만 화살은 이미 이화여대를 떠나 교육부로 향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비선실세와의 의혹을 부정하며 감추고 은폐하려는 시도 외에는. 국내 교육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무엇보다 위에 서고자 했던 그 부처의 욕망어린 정책은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대학교수도, 직원도, 학생도 더 이상 교육부의 정책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초한 일이니 감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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