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빈(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래정치연구소장)

개헌 논의는 모든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임에 틀림없다. 개헌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지난 10여년에 걸쳐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국회의원은 물론 국민 다수가 개헌에 찬성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들은 최순실 사태를 통해 현행 대통령제의 권력집중 현상 때문에 대통령 친인척·측근 비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민주화의 결실인 1987년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6명의 대통령 모두 재임 중 친인척 혹은 측근이 구속되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기록하였다. 그렇다면 개헌 논의를 어떻게 진행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최우선적인 조건은 정치권의 진정성이다. 개헌은 대통령이 아닌 국회가 주도해야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과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매달리면 개헌 논의는 한 발짝도 진전될 수 없다. 개헌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정치권의 개혁 의지와 진정성을 근본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조건은 개헌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다.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말에 제안했던 것과 같이 권력구조만을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을 할 것인지, 국민 기본권, 지방분권, 통일, 복지, 선거제도 등 다양한 계급과 계층의 이해관계를 함께 다룰 것인가의 문제이다. 원론적으로는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실적으로 권력구조만 바꾸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최순실 사태로 불거진 ‘제왕적 대통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4년 중임 정·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정부제의 3가지가 논의되고 있다. 지난 2009년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4년 중임제와 이원정부제를 제안한 바 있다. 전자는 우리 대통령제의 내각제적 요소인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 및 국회의원 장관 겸직을 금지하고 미국의 순수대통령제처럼 의회의 권한을 더 강화하는 것이다. 후자는 프랑스처럼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혼합한 형태로 요즘 논의되는 책임총리제와 유사하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외치를 담당하고 의회가 결정한 총리는 내치를 담당하는 통치방식이다. 두 가지 대안 모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합의 가능성이 높은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셋째, 권력분산을 위한 개헌은 선거제도 변화를 수반할 때 더욱 실효성이 있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는 승자독식과 양당제를 강화해 권력집중을 초래한다. 따라서 작년에 국회의원 선거구획정 과정에서 주목을 받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확대·도입한다면 각 정당들은 전국의 4~5개 권역별로 비례대표의원을 배출할 수 있다. 이는 군소정당 출현에 의한 권력분산과 지역주의 완화 효과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다.

네 번째 조건은 제도만능주의에 대한 경각심이다. 권력구조를 바꾸면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론은 금물이다. 프랑스의 이원정부제는 대통령과 의회의 다수당이 다른 정파인 동거정부(코비타시옹)가 탄생하면 정국갈등이 첨예해진다. 미국은 트럼프의 당선으로 대통령과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의 권력집중과 교착이 우려된다. 일본은 의원내각제가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반이 되자 1990년대 초 권력분산을 위한 선거제도 개혁을 단행했다.

비교민주주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라이파트 교수는 민주주의의 질과 대표성 제고를 위해 승자독식의 ‘다수제’보다는 권한과 책임을 공유하는 ‘합의제’가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최순실 사태 수습과정은 우리의 정치제도 디자인이 이상적인 민주주의 모델인 ‘합의형’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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