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부총장

사건은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낸다. 이는 ‘사건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테제다. 트럼프 현상은 지성들에게 변화된 현실에 대한 변화된 이론을 요구하고 있다. 필자는 올해 7월 출간한 신간(《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메디치 미디어)에서 이를 트럼프가 상징하는 기존 백인 보수주의의 황혼기 대 힐러리가 상징하는 새 리버럴 질서의 문명적 차원의 충돌로 분석한 바 있다.

보다 정교한 이론화 작업을 선도하는 이는 포퓰리즘 연구의 권위자인 마이클 카진 교수다. 그는 <포린 어페어스> 10월 호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현상을 포퓰리즘이란 프리즘으로 조명한 바 있다. 여기서 학문세계에서 접근하는 포퓰리즘이란 흔히 한국 언론에서 오해하듯이 인기영합주의가 아니라 기성 질서에 도전하는 아웃사이더 집단들의 정치담론을 가리킨다.

이 포퓰리즘은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트럼프의 극단적 인종주의에서 샌더스의 진보적 포퓰리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나곤 한다. 카진 교수의 이론적 작업과 궤를 같이하는 흐름이 <뉴 리퍼블릭>의 존 주디스가 발 빠르게 낸 《포퓰리스트의 폭발》(Populist Explosion)이다. 이 책에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트럼프 현상을 미국 내의 역사적 전통에서 그치지 않고 경제적 대위기 이후 전 지구적 포퓰리즘의 만개 현상 속에서 정의 내린다는 사실이다. 내년 프랑스와 독일 등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향후 지구적 포퓰리즘 비교는 흥미로운 학문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광화문 촛불의 만개는 단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넘어 기성 정치 체제와 재벌 등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란 점에서 트럼프의 반이민 포퓰리즘보다는 샌더스의 공화주의적 포퓰리즘 유형과 더 유사하다. 이 촛불에 대한 비교정치학적 연구는 앞으로 흥미로운 후속 연구와 실천에의 지적 자극을 줄 수 있다.

포퓰리즘의 전통에 대한 연구와 재해석은 오늘날 미디어 혁명과 연결해야만 비로소 퍼즐들이 완전히 풀릴 수 있다. 이 점에서 선거 기간 하버드대 가제트는 트럼프 현상을 ‘탈 진실(Post-Truth)' 시대의 특징이라 정의한 바 있다. 즉 진실이냐 허위냐보다 무엇이 소셜 미디어에서 더 임팩트가 있느냐의 시대가 거짓말의 달인 트럼프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발 빠른 통찰력을 보여준 강준만 교수가 《도널드 트럼프: 정치의 죽음》이란 신간에서 미디어 혁명과 이에 따른 ‘액체성 민주주의’(liquid democracy)가 만든 트럼프 현상을 총체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이 미디어 혁명 연구는 다가오는 대선의 계절에 한국 연구자들에게 다양한 연구 과제의 실험실을 제공한다.

이번 트럼프 당선은 단지 기존 포퓰리즘과 미디어 연구자들에게만 이론적 자극을 부여한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자면 그간 미국의 작동원리로 작용해온 리버럴 민주주의의 에너지 고갈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에게 거시적 연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비록 역사적 논점에서 상당한 논란은 있었지만 유발 하라리는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된 《사피엔스》를 통해 이 점에서 후속 연구를 자극하는 기여를 한 바 있다. 올해 나온 그의 후속 신간인 《신적 존재로서의 인간: 미래의 역사》(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는 이제 리버럴 민주주의 헤게모니가 종언을 고하고 구글 등이 주도하는 기술 유토피아주의가 지배력을 강화해 나가는 틈새에서 소외감을 가진 이들의 반동으로 트럼프 현상을 이해한다.

미국에서는 리버럴 민주주의의 시효 만료가 논의된다면 한국에서는 정치학계를 중심으로 기존 87년 체제의 종료와 새 정치질서로의 헌법적 전환이 논의되고 있다. 어쩌면 광화문 시민정치 현상이란 대사건은 협소한 정부 형태 논쟁보다 더 대담한 이론적 상상력으로의 토양을 만들지 모른다. 학문은 이 새로운 기적과 사건들을 해석하고 더 나은 미래문명으로의 등대여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