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림 저, '인간사랑' 출판

현대 세계에는 상반된 현상들이 공존한다. 크고 작은 전쟁이 끊임없이 발발해온 동시에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범인류적인 노력도 지속되었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획기적 발달에 따라 전 세계가 벽을 넘어 하나의 ‘그물망(Web)'으로 얽혀지기도 했다. 개인들 사이의 소외가 오히려 심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개인의 실존적 반항이 아닌 집단 차원에서의 자기성찰이다. ‘현대정치사상’은 ‘현대’의 ‘시공간’ 속에서 집단적 삶의 조건을 탐구하는 분야이다. 물론 ‘현대’의 시공간은 확정되어 있지 않다. 경험은 그 직접성에 의해 삶의 과정을 과거 / 그곳과 현재 / 이곳으로 나눌 수 있는 근거인 것처럼 보이지만, 경험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시공간의 차원이 발견된다. 기억은 정치적 삶의 시공간을 확장시킨다. 우리에게 ‘현대’는 새롭게 경험된 시공간의 총체이다. ‘현대’는 기억과 경험, 경험에 대한 끊임없는 반추를 통해 우리에게 열려진, 그리고 우리가 열어가는 시공간이다. 정치사상은 공동체적 삶의 조건과 공공선, 그리고 인위적 관계망인 정치 조직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정치사상은 공동체적 삶의 조건과 공공선, 그리고 인위적 관계망인 정치 조직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정치사상은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며, 현실의 위기는 정치사상의 존재기반이다. 정치공동체의 건설(founding), 정신적―물질적 기초의 제도화를 통한 유지(maintenance)와 발전(development), 다양한 형태의 부패(corruption)의 출현과 이에 따른 위기의 심화, 개혁을 통한 재건(re-founding)의 순환적 역사과정 속에서 긴장과 갈등은 정치적 삶의 보편적 조건이다.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면 정치적 위기가 초래되지만, 그 위기의 극복을 통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삶의 가능성이 열린다. 긴장과 갈등은 집단적 삶의 동력이다. 집단적 삶의 이러한 조건을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파악하고, 그 조건에 적절히 대응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정치사상이다. 이 책의 대체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현대사상의 기저에는 이른바 ‘계몽의 변증법’이 낳은 비관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의식이 존재한다. 따라서 1장에서는 근대성의 위기에 대한 니체와 스트라우스의 평가를 고찰한다. 2장에서 6장까지는 현대정치상의 조류들 중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대변하는 이론가들의 논의를 주로 다룬다. 현대자유주의의 양면성과 정치적 자유주의의 의미, 자유주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공동체주의의 철학적 기초와 정치적 제안, 담론 윤리와 토의 정치의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하버마스의 재구성적 정치이론, 현대 세계의 변화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 데리다의 해체주의 윤리와 로티의 포스트모던 자유주의 등이 그 내용을 이룬다. 그 다음으로 인권의 보편성, 법치주의 확립의 문제, 한국정치이념의 역사와 과제 등의 보다 현실적인 주제들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현대 정치사상 분야의 많은 주제들에 대해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심층적으로 접근하는 책들은 많지 않지만 현 서울대 정치학교 교수인 유흥림씨가 쓴 이 책은 그 중 하나로 기억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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