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 “정부 주도 대학구조개혁, 자율성 침해 분명”
“원칙만 정해지면 충분히 가능” “구성원 결집 등 대학 노력도 필요”

上. 2016년 대학 자율성 긴급 진단
中. 대학 자체적인 구조개혁은 불가능할까
下. 대학재정지원, 무엇이 쟁점인가?

[한국대학신문 이연희·이재익 기자] 대학 자율성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평가다. 대학구조개혁평가, 각종 재정지원사업 선정평가, 기관평가인증, 계열별 단과대학 평가인증까지 대학들은 정부의 각종 평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 중 가장 파급력이 센 평가는 단연 대학구조개혁평가다. 지난 2011년부터 매년 정량평가 위주 평가를 통해 하위 15%는 정부재정지원을 제한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대학을 5개 등급으로 나누고 B등급부터 차등적 정원감축을 권고하고 D등급과 E등급은 정부재정지원을 제한하면서 대학의 ‘돈줄’을 전면적으로 제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발의된 대학구조개혁법도 자율성 논란이 일기는 마찬가지다. 법안은 △대학자체구조개혁 법적 근거 마련 △대학평가위원회·대학구조개혁위원회 설치 △대학 평가 결과에 따른 구조개혁 자료 확보 △사립대학법인 자진 해산 시 잔여재산 전부 또는 일부 설립자에게 귀속 △유휴 교육용 기본재산 용도 변경 허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입법인 이 법안은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 통과를 위해 여러 차례 의견수렴 자리를 마련하고 법안을 조금씩 수정했지만 기본 골자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보다 고등교육의 질적 개선을 목표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점, 대학들의 자율적인 변화나 부실대학의 기능전환을 적극 유도한다는 점, 부실대학법인 자진 해산 시 돌려주는 잔여재산 범위를 설립자 출연재산 등으로 좁힌 점 등이 포함됐다.

▲ 대학공공성강화를위한전국대학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 2014년 12월 대학구조개혁 평가 편람 공청회장 앞에서 대학구조개혁 반대를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 주도로 전체 대학을 평가한 뒤 구조조정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꾸준히 현행 대학구조개혁 문제점을 지적해온 반상진 전북대 교수는 대학구조개혁에 대해 ‘고등교육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육부 안이 정답이 아니라면 현 대학구조개혁 평가는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시도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 “관련 법률이나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작동되도록 구축하는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는 대학구조개혁 정책이 자율성을 얼마나 침해하는지 묻는 데 대해 ‘중간’을 집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대학이 정부의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 평가와 동반된 조치가 자율성을 보장한다고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강제사항이 없다고 하고 내부 정원감축에 대해서는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거기에 각종 재정지원사업과 국가지원금이 걸려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시장 논리에 맡기자” vs “외부 자극 필요”= 대학구조조정을 정부가 주도하는 대신 시장논리에 맡기자는 의견은 여전히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고등교육 서비스 소비자인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하도록 한다면 자연스럽게 열악한 대학들은 도태되고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지방의 한 거점국립대 기획처장은 “알다시피 지방의 여러 대학들에선 입학 정원도 제대로 채우지 못해 충원율이 30~ 40%인 학과도 생겼다. 그런 것만 잘 관리해도 정원 감축의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며 “대학은 충원율과 상관없이 정원을 유지하려고 하겠지만 오히려 시장에 맡겨놓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들 스스로 양적 구조개혁이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칼을 쥐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최준열 한국대학평가원장은 “모든 학과와 대학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메스를 가하기 위해선 외부 충격도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시장 자체가 외부 자극’이라는 평도 나온다. 최근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추진한 수도권 사립대 기획처장은 “당장 대학들한테 지원금도 안 주면서 자율적으로 구조개혁하라고 하면 하겠나. 뭐든 상벌이 있어야 움직인다”면서도 시장 역시 학생 충원 측면에서 줄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와 대다수 지역 대학들은 시장 원리에 맡길 경우 전문대학과 지방대학에 피해가 몰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당초 정부가 대학구조개혁 정책을 채택하게 된 계기 역시 학령인구 급감 상황에서 지방대학 황폐화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전방위적 지방 균형발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수도권 집중현상과 수험생들의 수도권 대학 선호현상, 일반대학 졸업장에 대한 선호현상이 해소되지 않은 우리 사회 특성상 수도권 대학들은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또한 지역에서는 대학의 존재 자체가 지역경제 활성화, 교육 공동화를 막는 마지막 보루라는 해석이 더해지면서 보호가 필요하다는 여론은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학이 말하는 자체 구조개혁 가능성은=대학 자체 구조개혁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대학에 모든 것을 맡기면 아예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의 이주호 교과부장관 시절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 지정 평가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교육부는 ‘대학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학들 자체적으로 구조개혁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정부와 일부 교육학자들은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대학들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나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서 구조조정 대상을 선정하고, 원칙을 정하도록 한다면 경기를 뛰는 선수가 심판을 보는 소위 ‘선수 심판론’이라는 지적이다. 즉 스스로 살을 잘라내야 하는 작업에 스스로 공정한 구조개혁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 시선이다.

그러나 대학구조개혁법이 통과되지 않은 채 1주기 구조개혁평가를 치른 이 시점에 대학들은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학령인구 급감 위기를 본격적으로 체감하고 있고 온라인 고등교육 프로그램 등 새로운 대학교육 모델이 등장해 대학의 위기를 대학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구조개혁의 원칙만 제대로 정해놓으면 대학들 스스로가 움직일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반상진 교수는 “대학들 모두가 위기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만큼 평가를 통해 정원감축을 한다는 목적은 이미 흐려진 상태”라면서 “대학들끼리 합의를 통해 대학구조개혁법에 구조조정 원칙을 명시한다면 대학들 스스로가 충분히 자체 구조개혁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학구조개혁평가가 정량위주 평가에서 대학의 질을 평가하고 구조개혁을 유도하는 질적 평가로 중심점이 옮겨가면서 이 같은 주장은 힘을 얻는 분위기다.

최준열 한국대학평가원장은 “만약 정원 10%를 줄여야 한다면 부실대학 구조조정 외에 큰 대학들도 5%까지는 고통분담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를 비롯해 여건이 좋은 대학들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일정비율로 다 같이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열악한 대학은 퇴출 경로를 마련하는 내용을 대학구조개혁법으로 묶는다면 대학들 스스로도 충분히 양적 구조개혁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김광호 강원대 기획처장도 “구성원의 공감대를 확보한다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강원대는 지난 구조개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아 충격에 휩싸인 바 있지만 그것을 계기로 대학구성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며 대규모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김 처장은 “이번 강원대 구조혁신은 구성원의 동의와 합의 하에 추진됐다. 무엇보다 대학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려면 외부적으로는 평가 중심의 정부 지원보다는 ‘선(先)지원 후(後) 모니터링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대학의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계속 피력됐다. 한 지방대 기획처장은 대학들의 자체적인 구조개혁이 가능하기 위해선 부실 사립대에 대한 정리와 함께 지방대학이 해당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위등급을 받았던 대학들을 모두 해체시켜도 필요한 정원 감축 수의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을 폐교한다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여파는 심각한 수준”이라며 “근본적인 방향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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