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교수)

광화문 앞 세종로 찻길은 보도블럭으로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이 블럭들과도 꽤 친근해졌다. 지난 토요일에 나가면서는 그 전 주와는 절박감의 정도가 달랐다. 이전에는 대중이 함께 모이는 것만으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겠지 하는 순진한 기대의 참석이었다면, 이번에는 단단하게 드러난 상대의 벽을 허물어내야 한다는 비장함이 느껴졌던 토요일이었다.

아직 광화문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160만명이라는 무리 속에서의 분위기를 전하면 이렇다. 우선 옆에 선 사람과 어깨와 등이 맞닿은 상태에서 추운 줄도 모르고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서있는 2 시간여가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필자는 주로 광화문 앞 집회는 2시간 정도 참여, 청와대를 향한 행진은 1시간정도 참여해 그리 긴 시간의 경험을 하진 않았다). 감탄스럽고 또 감사한 것은 옆에 선 어떤 사람도 그들 끼리 잡담을 하거나 딴 소리를 해 분위기를 흩뜨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무대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위치에서 무대는 보이지 않고 조명등 불빛만이 무대의 위치를 알려주지만) 목소리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곳 세웠다가 구호외치라는 선창이 나오면 기다렸던 듯이 목청과 촛불을 높여서 소리를 내었다. 청와대를 향해서 행진을 할 때는 청운동 길 들어서면서 길이 좁아지는데, 그래서 속도를 내지 못해 뒤에서 오는 인파에 등을 밀리게 된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선창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후창을 하여 잠시도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구호가 끊기면 안된다는 절박감에 모두가 목소리가 쉬었음에도 지침없이 소리를 외쳐됐다. 내 뒤에서 오던 젊은 여성은 웬 목소리가 그리 크고도 카랑카랑한지, 그리고 지치지도 않는지, 그의 선창에 호응해 소리를 높이느라 꽤 힘이 들었다. 이번 행진은 처음에는 예와 마찬가지로 함께 목소리를 낸다는 생각에 힘도 나고 희망도 느껴졌으나, 행진이 진행되면서 점차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착한 국민들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무엇을 위해 주말마다 나와서 이렇게 간절히 외치고 있는 건가? 이 끝도 없는 인파가 목소리를 높이고 촛불을 드높이며 몇 km를 걸어서 과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걸까? 지금 청와대는 깜깜하게 불이 꺼져 있는데, 이 외침이 그 단단한 벽에 부딪혀 조각나 흩어지고 있는데, 내주엔 원하는 소식이 들릴까? 이런 감상을 그래도 위로해 주는 것은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명도 허트러짐을 보이지 않고, 서로를 북돋아 주는 마음 씀씀이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우리 어른들은 민주의식이 아직 일천해서 지도자를 잘못 뽑았지만, 올겨울 토요일 밤마다의 이 경험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불쑥 자라고 단단해 져서 우리 아이들은 보다 안전한 나라에서 존중받으며 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지친 걸음이 가벼워 졌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직 검찰조사도 받지 않았고 법적으로 잘못함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퇴진을 얘기하고 하야를 얘기하는 거냐고. 또, 이런 얘기를 한 정치인도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아니더라도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국민세금으로 미백주사, 태반주사를 맞았다면 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부적절한 처신입니다. 그러나 선택의 잘잘못을 떠나서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입니다.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어떤 짓을 했였기에 국민이 탄핵을 외치는가? 국민이 세월호 7시간을 얘기하는 것은 그 시간동안 대통령이 취해야 할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만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으로 대통령이 우리 국민을 향해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무수히 많은 경로로 우리 국민에게 확인됐다. 국민을 향한 청와대와 정부의 무수한 거짓말과 무대응, 그리고 무소통. 이 무소통은 단순히 국민을 무시했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개성공단 폐쇄, 그것도 발표 하루 만의 실행.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시와 방해, 국민들과의 이간질. 단 한 명의 국민을 놓쳐버렸다고 노무현 정권을 비난해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를 잘 보호해 주겠구나 생각하게 끔 했던 그 대통령은 단 한명이라도 국민 한사람을 잘 보호해 주었나? 이런 정부 하에서는 나도 개성공단 사장처럼,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처럼 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서 당신 그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하는 것인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질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필자는 사회학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 진보성향의 사람들에 관해서 한마디 할 것이 있다. 내가 아는 진보라는 대중은 생겨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무슨 심오한 철학으로 무장화된 사람들이 아니다. 당연히 보수들이 얘기하는 친북, 좌익성향의 사람들도 아니다. 정부 또는 소위 권위당국에서 국민들을 향해 너무 많이 해온 거짓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점차 진보적 성향을 갖게 된 사람들인 것이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에서 우리 국민들은 너무 많은 거짓과 왜곡, 그리고 은폐를 보고 들어왔다. 천안함과 세월호가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그 외에도 수를 샐 수 없이 많은 불합리의 경험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도덕심과 자존감은 심하게 훼손돼 왔다. 정부에 있어서 국민은 존중하고 섬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겁박하고 속이고 자신들의 안녕과 이욕을 취할 반대편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고 그래서 정부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탄생한 것이다. 이번 촛불 집회에 어린 친구들이 많이 참가하는 이유를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가 이기지 않더라도 진보는 저절로 없어질 수 있다. 단언컨대, 정부가 깨끗하고 제대로 국민을 섬기는 그 임무를 다한다면 말이다. 진보가 사라지는 다음 정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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