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종 (본지 전 주필 / 문학평론가)

 윤동주의 시 <초 한 대(1934년)>는 지금도 많은 사람의 가슴속을 밝히고 있다. 바람만 불면 꺼진다는 말은 거짓이다. 오늘 많은 한국인의 가슴과 가슴마다 켜져 있는 촛불이 그렇다. 그것은 저 멀리 캄캄한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셀 수 없이 반짝이는 별이 되어 온 세계 교포의 가슴속도 밝히고 있다.

광화문에서 벌어진 100만 촛불 파도타기는 거대한 해일이다. 삼각산 밑에 웅크리고 있는 쓰레기부터 한반도 구석구석에 쌓인 모든 오물을 먼바다로 휩쓸어갈 해일이다.

그런데 이들 속에는 초등학생, 중․고생 그리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주머니도 있다.
이들은 모두 보통의 시민이며 이들의 소망은 너무도 소박하고 단순하다. 열심히 공부한 만큼 대학에 가고, 땀 흘린 만큼 미래를 꿈꿀 수 있고,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빼앗기지 않고, 사랑하며 살아갈 세상을 약속받고 싶은 보통의 시민이다. 그리고 이 소박한 소망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며 모든 권리를 시민으로부터 이양받은 사람이 대통령이다.

그런데 이보다 몇백 배로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자와 그 하수인들은 그 약속의 몇백 배로 비참한 나라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어린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가혹한 입시지옥에 시달리지만 부모 잘 만나면 놀고 먹으면서도 명문대생이 될 수 있는 나라다. 학칙이나 제도 따위야 바꾸면 그만이고 이 짓에 동참하지 않는 자는 내쫓으면 그만이다. 이것은 교육계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의 공통현상이다.

하루 한 끼니로 연명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재벌은 수십억 수백억을 불평 한마디 없이 한 여자에게 내준다. 이런 판국에 일부 문인은 민주화운동 피해보상금으로 이미 받은 수억원을 도로 강탈당하며 빚더미에 앉아서 누구한테 하소연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비명에 죽은 부모를 위한 푸른 기와집 효녀의 복수극일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지금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성숙한 시민 혁명이 일고 있다. 썩은 자들이 진작 썩을 만큼 다 썩고 있는 이 시간에 성숙할 만큼 다 성숙한 시민이 방패를 들고 막아서는 경찰들에게 꽃을 던지며 세상을 바꿔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항은 시민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권리다. 탄핵과 퇴진과 하야와 체포와 구속의 모든 함성은 이들이 내준 소중한 권리를 되돌려 받겠다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당당한 권리행사다. 물론 권리를 빼앗기고 짓밟히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힘없는 많은 백성이 그렇게 살기도 했다. 그렇지만 빼앗기고도 참고 견디는 것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굶어 죽어가는 조카들을 위해서 빵 한 조각 훔치다가 붙잡힌 장발장을 용서하고 놓아주면 미덕이지만 약자의 빵을 빼앗는 강자에 대한 용서는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더욱 슬프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빼앗긴 권리는 반드시 되찾아야 하며 그래야 후손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고 그것이 후손을 위한 우리 소중한 약속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체제를 배반하는 폭력집단의 반인륜적 지배체제에 대한 시민의 저항은 마땅히 성취해야 할 시민 혁명이다. 더구나 이 혁명은 꽃을 뿌리며 성취해 나가는 사랑과 평화의 혁명인바 이것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가장 아름다운 혁명의 역사를 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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