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택(본지 논설위원 / 서경대 철학과 교수)

또다시 한국 역사가 움직인다. 대학생 이후 지난 30여 년간 지켜본 우리 사회는 10년 전후로 한 번씩 에너지를 응축하며 발산해 왔다. 그 장면은 80년 광주, 87년 6월, 사형수가 대통령이 되는 97년, 2004년 탄핵반대 촛불시위 그리고 오늘의 광화문 아고라로 연결돼 있다. 이 연결을 보며 어느 역사학자는 역사의 장기 흐름과 이 흐름에서 촉매제 역할을 하는 사건을 나눠 학문적으로 설명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왜 우리는 거리에 나서야만 하는지를, 그리고 덜 나서도 되는 제도 변경의 시급성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우리의 정치 참여 열정에 놀란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대통령을 잘못 뽑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도 짓는다.

말하자면 20세기 인류 역사에서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역사의 변곡점을 이루는 데모가 지속적으로 있으면서도 일상은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거리의 시민들은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기에 정치 환경은 과거로 복원되고 주류언론은 정치와 역사를 지배하고 매일 설명해댄다.

바뀌지 않는다고 거리에 다시 나서는 것은 쉽지 않다. 에너지의 응축 시간이 필요하고, 이의 촉매 사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모두가 떠난 사무실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의 태블릿 PC가 장기 역사 진행의 촉매였다. 그 직후 나온 대통령의 일부분 인정은 지금의 시작이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대통령은 과학이 주장, 역사의식, 정치토론보다 확실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과학과 기술은 위대하다. 근거 앞에 나머지는 퇴장한다. 내가 공부하는 철학은 장기 추세는 말하고자 하는데 과학기술이 이따끔 근거를 보태준다.

외쳤지만 제도는 바뀌지 않았던 장면들이다. 1980년 5월 광주가 발언하고 난 뒤 7년의 침묵이 지난 87년 늦봄 대학생 고문사에 대한 폭로가 이뤄지며 시민들은 거리에 나선다. 그리고 거리에서 20일간 이뤄진 ‘국론통일’은 직선제를 수용하는 담화로 지켜보는 단계에 접어든다. 헌법은 바뀌지만 결선투표는 당시 여당의 저항에 막혀 담기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당시 단일화 불발보다 더한 헌법적 참사를 야당 지도자 두 명은 제도적으로 추인한 셈이다. 오늘날도 언급되는 1987년 체제의 적폐인 것이다.

야당 후보 단일화, 아니 한국의 20세기 역사 흐름으로 해석하면 분단, 평화, 민주 등의 이 모든 키워드가 함축하는 세상으로의 진입이, 87년 헌법에 빠진 것 즉 우리의 정치적 대표는 과반수 동의라는 절차적 정당성만이라도 최소한 지녀야 한다는 선거제 도입의 실패로 좌초한다. 이 좌절은 그 뒤 대통령 둘이 지나고, IMF 경제위기와 또한 김종필 정치세력과의 연합 내지는 야합에 의해서야 극복된다. 제도가 역사 흐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제도적 결함에 10년의 세월, 국가 전체의 위기, 정치적 야합 정도의 연합이 함께 반작용하며 역사를 장기 추세로 올려놓은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최초 새로운 성격의 정권에게서 한 축이 2000년 국회의원 선거 직전 비례대표제 문제를 둘러싸고 나간다. 새로운 정권은 곧바로 소수파로 몰린다. 이에 당시 여당은 대통령 후보 선거인단의 절반을 일반 시민으로 한다는 제도 개혁안을 내놓는다. 이러한 제도적 접근에 힘입어 전혀 새로운 정치인이 후보에 당선된다.

여기에는 당 내부 경선제도 변경만 있지 헌법공동체 한국의 선거제도 변경은 아직 없다. 그리고 이의 귀결은 당내 경선제 변경에 따른 피해자라 여기는 세력과 당시 야당에 의한 탄핵이다. 이는 국회에서 통과되고, 2004년 3월 초 추운 거리에 시민들은 또다시 앉아야 했다. 제도적 결함이 다시금 시민들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분출시킨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를 10년 정도마다 거리로 불러내는 것은 우리의 정치의지를 담지 못하는 선거제도에 있지 우리가 전세계에서 민도가 가장 앞서서가 아닐 것이다.

헌재는 탄핵은 기각하지만 몇 달 뒤 행정수도에 대해 관습헌법을 근거로 위헌 판결한다. 정부의 지속은 인정하지만 정부의 핵심정책은 탄핵한 것이다. 그 뒤 또다시 제도 개혁 없는 역사 흐름이 얼마나 부유하는지를 시민들은 지켜본다. 모두의 국가라는 공동체가 분단과 평화, 공공성, 교육 파행 등의 과제를 정파적 관점으로 관철한다. 4대강 사업도, 종편도 마지막은 육탄전이었다. 그들이 주도한 이 장면이 그들이 주도한 세계화 시대에 세상의 매체에 실시간으로 노출되자 물러나 국회선진화법을 만들고는 이내 후회한다.

그런 그들이 서서히 몰락해 광화문에 아고라가 또다시 설치됐다. 이 아고라도 제도 변경 덕분이다. 아고라가 지속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의회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농촌지역 선거구 10여개를 줄여서 수도권에 늘린 선거구 협상의 산물이다. 이렇듯 선거제도는 정치를 바꾸는 핵심이며, 우리의 드높은 민도를 구현하는 핵심이다.

개헌을 하고 제도를 바꾸려거든 시민들의 열망을 담아야 한다. 직선제를 하면 결선투표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도 안하면서 대통령의 실정을 놓고 중임제, 내각제 개헌을 외치는 것은 민의의 제도적 실현 필요성에 대한 비틀기에 해당한다. 대통령직선제의 결선투표 도입과 아울러 의회의 시민 대표성을 살리고자 정당별 비례대표를 의석의 절반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광화문 아고라는 역사와 정치의지에 존재하고 그 주인들은 일터로 복귀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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