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교수(본지 논설위원 / 경일대 교수)

2016년의 광장을 메운 촛불이 2017년의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지 아직은 짐작하기가 어렵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매우 달라진 모습으로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가 놀라고 우리 스스로도 놀란 이번 촛불행진의 매듭이 어디까지일지 알 수 없으나, 결국은 과정과 결과 모두 우리들 몫이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만큼 이 시대 대학의 역할을 거듭 생각하게 된다.

비슷한 뜻의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자신들의 생각을 밝히는 것은 물론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주장을 펼치는 광경 역시 민주주의가 베푸는 선물이다. 이번 탄핵정국이 어떤 결말에 이르든 민주적 표현의 자유가 반칙 없이 잘 지켜진다면, 소수의 권력자가 밀실에서 훼손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수의 국민들이 광장에서 회복시켰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이런 국민들의 저력을 바람직한 생활력으로 가다듬어야 할 교육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 교육의 기본에 대한 통렬한 자성의 요구가 분노처럼 치솟는 것은 배운 자들의 역겨운 거짓말과 반사회적 행태 때문이다. 법지식으로 법망을 피해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고 책임은 회피하는 그들을 지켜보며 국민들은 묻고 있다. 우리 교육은 그간 무엇을 한 것인가.

고등교육을 가동하는 국가의 시스템 역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두어 가지 예만으로도 그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5.31교육개혁 중 가장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학설립준칙주의(1996)에 기대어 10여 년 사이에 60여 개 대학이 난립했다. 그 제도가 폐지된 지금도 숱한 부작용의 후유증을 겪고 있지만 책임을 인정하는 공직자는 아무도 없다. 2013년 7월말에는 ‘지방대학 육성방안’이 발표됐다. 교육부는 “우수인재가 지역에 남고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교육-지역발전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천명했지만, 그 ‘강한 의지’는 이듬해 9월에 열린 대학구조개혁평가에 대한 교육부의 공청회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정부의 강한 의지’ 유효기간이 1년에 불과한 것인지 묻는 대학도 없다. 그저 새로 제시된 당근에 몰려들어 북적일 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신뢰관계가 형성될 수가 없다. 지난해 12월 9일에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이 보도되고,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4차 산업혁명시대 창의융합인재 육성 촉진’과 ‘자율성 확대’라는 취지가 무색하게도 많은 교수의 반응은 냉랭하다. 세계 산업계의 큰 흐름에 대비한 시의적절한 방안이라는 환영이 아니라 어수선한 정국을 틈타 통과만을 꾀하는 얕은 꼼수라는 평가다. 새해에는 이런 불신을 불식해야 한다.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뜨거운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면 된다. 밀실작업이나 눈가림식 공청회와 같은 구태를 과감히 벗지 않으면 신뢰회복이 어렵다. 마침 국교련과 사교련 교수들이 대학교육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방안을 꾸준히 의논한 끝에 지난해10월 대학정책학회를 창립했다. 대학교육을 반성할 수 있는 공론의 장 하나가 마련된 것이다.

교육철학을 함께 논의하고, 선순환의 교육시스템 구축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이 시대의 과제를 함께 풀고자 어떤 격론도 사양하지 않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몇몇이 입을 맞춰 어떤 결론을 내어놓기에 급급했던 구각을 이제는 깨뜨려야 한다. 지금 진행 중인 변화를 우리 사회에 잘 안착시키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전문적인 시각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새해에는 대학이 그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우리 대학이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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