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상숙 단국대 교육대학원장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대통령이란 자리가 얼마나 귀한 자리인가. 출근도 안 하고 관저에서 업무를 봤다고 하니 아무도 이해 못할 노릇이다. 여성들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는데 정작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오히려 일선의 성 평등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됐다. 취임 당시에는 그래도 성 차별 문제를 이슈화 할 수 있는 힘이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는데 참담할 뿐이다.”

지난 한 해 (사)전국여교수연합회(전여연)를 이끌어온 고상숙 단국대 교육대학원장은 최근의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고 원장은 지난해 전여연 내 글로벌융합학문연구소를 개설해 성 평등 관련 연구 지원 기반을 다졌다고 평가받는 인물. 그러나 노력이 무색하게도 하반기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여대인 이대 사태 등으로 여성 리더들이 평가절하 되고, 유리천장이 더 공고해질까봐 안타깝다는 심정을 드러냈다.

고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지난 2012년을 떠올렸다. 그는 “독일이나 스웨덴처럼 사회가 어느 정도 성 평등 개념이 정착된 뒤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게 맞지 않나. 그런데 너무 빨리 됐다는 점에서 희한하다고 여겼다”면서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에도 불특정 여성 대상 강력범죄나 디지털 성범죄 대책이 제대로 법제화 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OECD국가 중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과거 정권보다 더 떨어졌다. 여성 대통령 시대에 성 평등 실현에 손을 놓다니 역대 이런 비극이 없다”고 개탄했다.

또 “박 대통령이 임기 동안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데 우선순위를 두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이나 소수자 문제, 다문화가정 문제에 집중하길 바랐는데 오히려 여성들의 위치를 후퇴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대가 조직적으로 최순실씨 딸 정유라에게 부정입학과 학사 특혜를 주고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한 데 대해서도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솔직하게 증언하지 않고 위증을 하면서 학교의 명예도 먹칠을 하는 후폭풍을 몰고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대 학생들과 졸업생, 교수들이 이같은 국정농단 사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데 안도감을 표했다.

“이대에서 영문학과 등 역사가 깊은 학과 출신 동문들의 활약이 특히 뛰어났다고 들었다.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던 졸업생과 동문들이 학생회와의 소통, 교수들과의 소통을 주도해 이번 사태에 비선실세가 있다는 것을 끄집어낸 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과연 끝까지 노출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고 원장은 조기대선이 점쳐지는 지금, 대선주자들이 보다 성 평등 정책에 신경 쓰고 좋은 정책을 내주길 바란다는 기대를 밝혔다. 무엇보다 새로운 국가지도자가 정권에 반대되는 성향일지라도 최고의 전문가들을 발탁하고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전문가는 반대파라도 차별 없이 기용하겠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면서 “이번 정부 들어 여성가족부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봐도 유독 성 평등 연구 협력 등에 소극적이고 개념도 미약하다는 인상이었다. 당시에는 이상하게 느꼈는데 이제는 알겠다. NGO에서 많이 활동하는 여성운동과 양성평등 연구에 임하는 전문가들이 정부에 반대 목소리를 낼까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대학 내 성 평등 얘기로 화제를 바꿨다. 고 원장은 여전히 대학이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여교수 비율이 30%도 되지 않는 현실, 특히 대학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성 보직교수 비율이 1%도 되지 않는다는 점과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꼽았다.

“그나마 사립대가 성 평등 구현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다. 그러나 국공립대는 페널티나 예산을 걸고 제재하지 않는 이상 여교수 충원 등에 소극적이다. 또 사범대학이나 간호대학, 예술대학 등에는 여교수가 많은 편이지만 경상계열이나 공과계열에는 여교수가 한 명도 없는 경우가 많다. 보직도 실·처장급 주요 보직에 여교수들은 배제되곤 한다. 여성 보직교수들이 일단 맡기면 잘 하는데, 막상 제안을 받으면 학교에 누가 될까봐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문제다. 대학 내 남성 교수 등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이 많은 대학에서 일어나고, 그럼에도 학교의 위상 때문에 쉬쉬하는 문제는 고질적이고 또 어려운 문제다”

고상숙 원장은 새해를 맞아 여성인재 양성과 신설한 연구소가 본격적으로 좋은 실적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도 밝혔다. 올해 신임 회장인 김성숙 광주교대 교수와 전여연이 여교수들의 목소리가 주요 어젠다로 떠오를 수 있도록 전임 회장으로 역할도 찾겠다고 밝혔다.

“올해 대선이 있는 만큼 전여연의 일이 많을 것 같다. 토론회 개최 등 여성 교수들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본다. 2018년 전여연 출범 20주년도 앞두고 있어 선대 회장단들의 역할을 되짚어보고 향후 방향에 대해서도 신임 회장과 논의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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