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논설위원 /김재관 전남대 교수(국교련 사무총장))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에 분노한 전 국민의 촛불 집회는 정유년 신년에도 어김없이이어지고 있다. 집회에 참가한 인원만도 천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평화로우면서도 시민의 상상력이 발휘된 다채로운 형식의 촛불집회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새로운 시위 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전 세계는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민주의식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부끄러운’ 대통령과 대비되는 ‘자랑스럽고 위대한’ 우리 국민의 명예혁명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한겨울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의 광장을 뜨겁게 달군 촛불 민심은 이미 세월호 참사에서부터 타올랐다고 보여진다.

귀한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리며 안타까워했던 우리 국민들은 그 날 4월 16일이 생생하건만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1000일 지나도록 온갖 거짓과 책임 회피로 일관해 왔다. 저들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통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가 급기야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진짜 민주공화국을 수립하라는 국민들의 준엄한 요구는 대통령의 하야는 물론이고 그동안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적폐 및 각종 정치·사회제도의 개혁과 교육비리를 청산하라는 쪽으로 우리 사회의 전면적인 리셋(reset)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 소추 결의, 국회의 국정조사, 검찰의 특검, 그리고 헌재의 탄핵 판결을 다그치고 있는 동력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 국민들이 성난 민심일 것이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한국 사회의 고질적 정경유착의 부패 고리(가령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 공모)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탄압, 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 유린 사태 등으로까지 그 파장과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최순실과 박근혜 비호 측근 세력들은 정유라 부정입학 사례, 문화예술계 인사 블랙리스트 작성 공모에서 볼 수 있듯이 문화예술의 자유뿐만 아니라 대학의 공공성을 훼손해왔다. 이 과정에서 탐욕에 물든 교수출신 청와대 참모들은 최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 대학 역시 이미 ‘진리에 순종’(Obedire Veritati)하기는커녕 돈과 권력에 눈 멀어 결국 부정부패와 파렴치로 얼룩진 지 오래다. 금번 이대 사태는 우리 대학의 민낯을 드러낸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일 뿐이다.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대학 책임자 그들은 과연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을 어디에 둔 것인가? 명예가 내면의 양심이 외부로 표출된 것이라면, 양심은 명예가 내면으로 깊이 응축된 것일진대, 교수들에게 가장 소중한 명예와 자존심 그리고 양심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쌀 다섯 말(五斗米)에 허리 굽히기를 거부한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선비 기개를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오늘날 양심을 저버리고 권력에 기웃거리는 대학 교수들이 부지기수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부를 향해 ‘이게 나라냐’라고 외쳤던 국민들, 이제 학생들은 ‘이게 대학이냐 교수냐’, ‘이러려고 대학 왔냐’는 탄식이 터져나올 만도 하다. 정유라 이대 부정입학 사례를 통해 드러난 ‘정학(政-學) 유착’, 즉 부정청탁-부정입학(학사비리)-비리 사학재단에 대한 재정특혜 지원 등이 밝혀지면서 이대 뿐만 아니라 전국의 대학과 교수집단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정부가 비단 문화예술계 뿐만 아니라 대학 역시 통제하려고 조직적으로 관여해왔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보수정권은 ‘신자유주의’ 노선을 내걸고 대학 ‘선진화’라는 미명하에 마치 대학을 기업처럼 구조조정하고 통제하기 위해 엄청난 국가 예산을 쏟아 부어왔다. 대학을 통제하려는 국가의 음모와 기도는 이명박 보수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골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추진돼왔다. 국립대학의 선진화 방안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추진돼온 대학에 대한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시도들, 대학구조개혁법안, 국립대학 총장 직선제 폐지와 간선제로의 전환, 국립대학 총장 인선의 부당개입과 압박(가령 경북대 총장 후보 1순위자에 대한 충성 각서 요구, 여러 국립대학 총장 후보 2순위자 임명 강행 및 여러 대학 총장 공석 사태 등), 국립대학재정회계법 제정, 국립대학자원관리시스템(KORUS) 구축,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 등은 정부가 대학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그 구체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그동안 교육부가 정부의 하수인으로서 행·재정적 지원 수단을 동원해 대학을 좌지우지해왔던 작태도 문제지만, 대학 스스로도 정부정책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거나 상호약탈식 성과 경쟁에 몰입했던 점 역시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 정책들 가운데 특히 올해 초부터 시행하고있는 국립대학자원관리시스템(KORUS)에 대한 국공립대학 책임자들의 문제의식은 커녕 아예 이 시스템 구축에 대학이 발 벗고 나섰다는 점에서 대학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이 제도는 국립대학 관리 선진화 방안 가운데 하나로 2009년 준비 작업을 시작한지 7년 만에 완결돼 올 초부터 전국 39개의 국립대학의 행정업무영역(재정회계, 인사급여, 산학연구, 업무관리 등)과 다양한 회계(일반 회계, 기성회회계, 산단회계, 발전기금회계 등)를 유기적으로 연계 처리할 수 있는 행·재정 통합시스템이라고 한다. 코러스는 과연 국립대학 관리의 효율성 증진 방안인가 통제의 또 다른 수단인가? 국립대학 재정 고사 상태에서 이 시스템 구축에 총 사업비가 무려 551억원(국고 219억, 국립대학 332억)을 들였다하니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교육부가 이 통합 시스템 구축으로 국립대학 행·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관리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다는 정책적 효과를 거둘지는 몰라도, 문제는 이 시스템으로 국립대학이 기업처럼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관리돼 마치 ‘빅브라더’(Big Brother)'처럼 교육부가 모든 국립대학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전도된 대학의 ‘민낯’과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보고 대학 본연의 위상과 역할을 회복하기 위한 반성과 자구 노력이 더없이 절실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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