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평가 대비 위한 고육지책" 학생들 "불이익 두려워 솔직한 평가 못해"

교육부 “강의평가 지표는 환류시스템 점검 … 부정 있으면 감독할 것”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일부 대학들이 교육부 대학평가 지표를 맞추기 위해 강의종료 뒤 실시해야 하는 강의평가를 기말고사에 앞서 시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대학은 특히 학칙에서 정한 강의평가 시점까지 어겨가며 강의평가를 앞당겨 실시하기도 했다.

19일 대학가에 따르면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나 각종 교육부 재정지원사업에 학생만족도나 강의개선지표 등이 포함되면서 대학들이 학칙을 바꾸거나 강의평가를 학기 종료 뒤에서 학기 중으로 옮겨 2차례 실시하는 관행이 발생했다.

학생들은 강의평가 내용이 담당교수에게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면서도 성적열람이나 강의수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기 중 강의평가에 응하는 실정이다. 일부 학생들은 강의평가 시점이 강의종료 뒤에서 학기 중으로 앞당겨져 솔직한 평가를 할 수 없다는 불만도 제기했다.

서울소재 한 사립대 학생은 “강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강의를 평가하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수가 직접 강의평가를 할 것을 수업 중에 독려해서 할 수 없이 했다. 좋은 이야기 외에 진솔한 비판은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사립대 재학생도 “강의가 종료된 뒤 성적평가까지 다 끝난 뒤에 강의평가를 해왔는데 최근들어 중간고사를 앞두고 강의평가를 실시하고 기말고사를 앞두고 한번 더 하는 등 강의평가가 앞당겨졌다. 학생 입장에서는 혹시나 불이익이 있을까 두려워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다른 학생들과 사석에서 얘기하다보면 강의평가에 쓴 내용을 교수가 정확히 알고 있더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럴때 마다 강의평가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은 학칙을 개정조차 하지 않은 채 강의평가를 앞당겨 실시하기도 했다.

서울 소재 한 사이버대는 학칙에서 강의종료 뒤 강의평가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총학생회와 협의를 거쳤다며 수년간 기말고사를 앞두고 강의평가를 시행했다. 이 대학은 또 강의평가를 하지 않은 학생은 온라인 수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도록 임의적으로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강의평가 시점에 불만을 품은 학생이 강의평가를 하지 않았다가 수업을 들을 수 없어 출석 미달로 학사경고를 받고, 다음 학기 등록을 하지 않아 제적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당초 학칙에 맞게 대학평가를 실시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학생 측의 환불요청에도 응하지 않다가 최근 취재가 시작되자 서둘러 사건을 봉합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대학들이 강의평가를 학기 중으로 옮긴 것은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들은 2010년경부터 강의평가를 학기 중으로 옮겨 두 차례 실시하도록 학칙을 다수 개정했다. 대외적으로는 강의의 질적 개선이라고 강조했으나 내막은 달랐다.

한 사립대 교수는 “강의평가는 강의를 종료한 뒤에 하는 게 맞다. 강의평가 내용에 교수도 민감해지다보니 강의에서 학생들의 비위를 맞추는 교육내용을 선정해야 하는 갈등도 생기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강의평가가 다음학기 임용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소신있는 강의가 어려워진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국립대 교수는 “현재 대학가에서 실시되는 정량위주의 강의평가는 강의 내용에 대한 제대로 된 환류과정보다 평가점수에 따른 인사고과로 작용한다. 강의평가를 실시하는 당초 취지와는 한참 동떨어진 셈”이라며 “대학당국 역시 강의평가를 통해 강의의 개선점을 파악하기보다 강의평가 점수가 낮은 교수들을 중심으로 학생만족도를 높여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사업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하기 때문에 강의평가의 목적 자체가 질적 개선과 멀어졌다”고 비판했다.

강의평가를 담당하는 직원들 역시 같은 입장이다. 영남지역 한 사립대 교무처 관계자는 “강의평가를 학기 중에 실시하는 이유는 이 점수가 대학재정지원사업의 지표에 포함돼 있기 떄문이다. 교육부가 강의평가 관련 지표를 만든 것은 강의의 질적 제고가 목적이었겠지만 재정지원사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대학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점수를 높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강의평가로 인한 대학가의 부담을 잘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대학평가과 한 관계자는 “각종 대학재정지원사업에서 강의의 질적 제고와 환류제도 안착을 위해 강의평가를 지표로 감독하고 있는 것은 맞다”며 “그러나 어디까지나 목적은 학생교육을 위한 환류시스템 확립이다. 대학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고, 이로 인한 학생과 대학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면 현황파악을 우선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부 대학이 학칙을 어겨 강의평가를 실시한 점 역시 처벌 대상에 속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학칙은 일종의 기관별 내규로, 내규를 어겼다고 해서 직접적인 주무부처의 처벌대상에 속한다고는 볼 수 없다. 주무부처의 지도감독권을 포괄적으로 해석하면 학칙을 어긴 점 자체를 문제시할 수 있다는 관점도 있지만 우선 학칙 위반으로 인한 피해사실이 적발되거나 민원이 접수되면 시행명령을 내리는 등의 행정조치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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