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화된 고등교육체계’ 구축…일반대-전문대 동등한 가치 부여해야

‘고등직업교육 컨트롤타워’ 필요성 공감…구체적 방안에서는 온도 차

▲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가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고등직업교육혁신운동본부·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주최로 열린 '고등직업교육 정책 대토론회에 참석해 접견실에서 전문대학 총장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명섭 기자

[한국대학신문 천주연 기자] 정치권, 교육계를 막론하고 ‘학제 개편’이 연일 화두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가 지난 6일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대선 공약으로 ‘5-5-2 학제 개편’을 내세운데 이어 23일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K-5-4-3 학제 개편’을 제안하기도 했다.

전문대학가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20일 열린 ‘고등직업교육 정책 대토론회’를 통해 학제 개편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학교급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변화보다는 고등교육 학제를 중심으로 한 부분적인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학제개편 모형으로 통합형·분리형·결합형 제시 = 학제는 일반적으로 학교의 단계와 계통에 따라 교육의 목적과 교육기간, 교육내용, 취학연령 등을 구분하는 종적 연결구조와 학교교육과 학교 외 교육의 기능을 계열 간, 학교 간 이어주는 횡적 연결구조로 구분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의 기본학제를 중심으로 하는 단선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각급 학교단계별로 특별학제에 속하는 학교들을 두고 있어 결과적으로는 절충식 분기형 학제라는 분석이다.

신현석 고려대 교수는 지난 20일 정책 대토론회에서 학제 개편 모형으로 △통합형(단선형 학제 모형) △분리형(복선형 학제 모형) △결합형(분기형 학제 모형) 세 가지를 제안했다.

각 특징을 살펴보면 통합형은 학부 교육을 대학 유형에 상관없이 통합하고, 대학이 수업연한을 몇 년 과정으로 운영할지 스스로 선택하게 개방하는 모형이다.

분리형은 초·중학교 등 의무교육 단계 학교는 통일된 학교 계통을 두고, 그 상급 단계부터 인문교육과 직업기술교육의 투트랙 학교 계통으로 나눠 운영하는 모형이다. 여기에는 중고등학교부터 트랙을 분리하는 중등 분리형과 대학부터 트랙을 분리하는 고등 분리형이 있다.

마지막으로 결합형은 현재와 같이 기본학제와 특별학제로 구성하되 기본학제와 특별학제는 상호 이동이 가능하게 하는 모형이다. 기본학제 내에서도 고등학교부터 학교유형에 대한 선택권이 부여돼 있고 유형 간 수직 및 수평 이동이 자유롭다. 현 체제를 유지하는 현재 유지형과 전문대학을 비롯한 직업기술계열 대학의 수업연한을 다양화하는 보완형이 여기에 속한다.

■전문대학가 “연구중심 일반대학-직업교육대학으로 이원화 돼야” = 전문대학가에서는 이 가운데 분리형인 복선형 학제 모형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모양새다. 연구중심학위인 일반대학과 직업교육중심학위인 직업교육대학 등 이원화된 고등교육체제로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학벌중심사회, 일류대학을 열망함으로써 나타나고 있는 여러 한국 사회와 교육의 병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에 대한 동등한 가치 부여가 선행돼야 한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대학을 일반대학의 하위 교육체계로 보는 현재 서열화된 단일학위체계에서 벗어나 각 특성별로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트랙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용섭 한국고등직업교육혁신운동본부장(광주보건대학 교수)은 이를 정상화와 차별해소 등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최 본부장은 “고등교육법에 이미 고등교육기관은 그 기능과 설립목적, 수업연한 등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지도자 양성이나 심오한 학술연구를 위해 설립된 대다수의 일반대학이 학술연구중심보다는 직업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실용학문을 개설하는 등 전문대학화되면서 기능상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일반대학이냐 전문대학이냐에 따라 정부재정지원이나 졸업생의 사회진출 등 여러 부분에서 전문대학생들이 받는 차별이 있다. 이런 부분을 이원화된 고등교육체제 구축을 통해 해소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이런 주장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5월에 열린 본지 ‘제5차 UNC 프레지던트 서밋’에서 이승우 군장대학 총장(당시 전문대교협 회장)이 학문과 직업의 학위체계를 이원화하는, 이른바 준 복선제를 확립해야 한다며 투 트랙 시스템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던 것이 최근 4차 산업혁명과 조기 대선, 학령인구 감소 등이 시기적으로 맞물리면서 학제 개편 관련 논의가 재점화 됐다는 분석이다.

이정표 한양여대 기획조정처장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평생직업교육 체제 구축은 불가피하다. 현재 고등직업교육의 핵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대학의 폐쇄적 직업교육으로는 성공적인 평생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며 “4차 산업혁명 등 패러다임 변화도 함께 나타나면서 직업교육의 방법과 여건 등에 대한 근본적 체계 개선이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범부처 차원의 일원화된 ‘고등직업교육 컨트롤타워’ 필요성 공감 = 성공적인 학제 개편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등직업교육육성법·고등직업교육교부금법 제정, 고등직업교육정책실 마련 등 후속 과제가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특히 각 부처 및 부서에 분산 운영되고 있는 평생·교육직업교육기관의 통합 운영을 위한 범부처 차원의 일원화된 협력적 거버넌스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표 처장은 지난 20일 정책 대토론회에 참석해 “고등직업교육의 중장기 발전 비전 및 계획하에 정책 수립, 운영을 주도할 수 있는 고등직업교육정책실이 신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고등직업교육의 컨트롤타워 기능 수행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에는 동의하지만 그 방안에 대해서는 약간의 온도 차를 보였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정지선 평생직업교육연구본부장은 “고등교육정책실을 설치해 타부처는 물론 교육부 내 다른 부서끼리 협의가 가능하도록 해서 효율적인 전문대학, 직업교육 정책을 추진하자는 내용은 상당히 공감된다”면서도 “타 부처를 아우르고 교육부 내 정책 사업 조정, 통합 등을 통해 시너지를 내자는 취지에서 지난 2014년부터 사회부총리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컨트롤 타워로서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고 있지 못하다. 교육부 내 한 조직이 생김으로써 큰 효과를 기대하는 것보다 교육부 내 조직과 더불어 파트너십을 가질 수 있는 외부 싱크탱크 기관도 함께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산업교육센터(가칭)가 외부 싱크탱크로서 직업교육의 큰 그림을 장기적 안목에서 연구하고 기획, 조정 기능까지 맡게 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부 조직이 바뀌는 것과 무관하게 일관성 있는 직업교육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등직업교육정책실보다 더 진일보한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한 토론패널은 “차관급의 직업교육훈련청 신설을 제안한다”며 “그럴 경우 교육부, 고용부, 미래부 등 산재돼 있는 직업교육을 총괄해서 업무 중복,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사업이 제대로 진행 안 되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고등직업교육혁신본부는 이번에 논의된 부분을 정교화시켜서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전체 전문대학의 요구를 명료하게 제시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한번 더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학제개편 등이 전문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도록 대선 후보자들에게 전문대학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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