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최순실 위해 대통령 지위·권한 남용 … 공정한 직무수행 아냐”

‘세월호 7시간’ ‘언론통제’ ‘공무원 임면권 남용’ 증거 없어 인정 안돼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헌법재판관 8명 모두 평결에서 탄핵 찬성에 표결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난해 12월 9일 이후 92일 만이다. 국민 절반(51.6%)의 지지로 대통령에 취임한 박 전 대통령은 결국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대통령이란 기록을 남기게 됐다.

헌재는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을 비롯해 박 전 대통령의 공무원 인사개입, 언론통제 등 국회가 제출한 탄핵소추안 거의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국민담화에서 거짓말까지 하며 은폐하려 했던 최순실(최서원)씨의 국정농단과 이를 진두지휘한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이 발목을 잡았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며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함은 물론 공무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피청구인(박 대통령)은 최서원(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제기를 비난했다.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견제나 언론 등 감시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탄핵심판)과 관련한 피청구인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 피청구인의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고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판결했다.

헌재는 이번 결론을 내리기까지 약 60일간 이 사건을 논의했다. 3차례의 준비기일과 17차례의 변론기일을 열었고 청구인과 피청구인 측 증인 29명, 11건의 문서송부촉탁결정과 69건의 사실조회결정을 거쳤다. 증거조사된 자료만 4만8000여 쪽에 달하며 탄원서 등 당사자 외 시민들이 제출한 자료도 40박스에 이른다.

이정미 권한대행은 “재판부는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의 심정으로 선고에 임하고자 한다”며 간접적으로 부담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정미 권한대행은 “재판관들은 지난 90여일 동안 이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며 “국민들도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번민과 고뇌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알다시피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다. 오늘의 선고가 국론분열과 혼란을 종식시키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세월호 7시간 불인정 “직책성실의무는 사법적 판단의 대상 아냐”= 이날 파면 결정 외 가장 논란이 될 지점은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이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하던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행적이 묘연하다는 주장이 세월호 7시간이다. 어떤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못해 안타까움을 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미용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헌재는 그러나 국회가 제출한 탄핵사유 중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시 적극적으로 구명활동을 벌이지 않은 것은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의무를 저버렸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세월호 침몰사건은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준 참사라는 점에서 어떤 말로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면서도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했다고해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으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헌재는 국회가 제출한 탄핵사유 중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해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을 침해했다는 점과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 당시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우선 “문체부 노 국장과 진 과장이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문책성 인사를 당하고 노 국장은 명예퇴직했으며 장관이던 유진룡은 면직됐고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이 문체부 제1차관에게 지시해 1급 공무원 6명으로부터 사직서를 받아 3명의 사직서가 수리된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건 증거를 종합해도 박 전 대통령이 노 국장·진 진과장을 최순실(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돼 인사를 단행했다고 인정하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1급 공무원 사직서와 유진룡 전 장관 면직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연관돼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 역시 마찬가지다. 헌재는 세계일보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사실과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검찰에 지시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세계일보 사장 해임을 구체적으로 누가 지시해 압력을 행사했는지 확실치 않고 박 전 대통령이 연루돼 있다는 증거도 없다고 했다.

■ ‘최순실 국정농단’에 박 대통령 조직적 개입 있었다= 헌재가 잇달아 탄핵사유를 인정하지 않아 탄핵 기각으로 기우는 듯 했지만 최순실(최서원)의 국정농단 개입에 이르러 반전됐다.

헌재는 최순실이 연설문과 인사자료, 국무회의자료, 대통령 해외순방일정과 미국 국무부장관 접견자료 등 기밀자료를 2013년 1월경부터 2016년 4월경까지 전달받아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실로 인정했다. 헌재는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사실상 최순실의 국정개입을 지시하거나 용인, 혹은 도왔다고 봤다.

헌재는 “피청구인은 안종범(청와대 전 정책조정수석)에게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법인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해 대기업들로부터 486억원을 출연받아 재단법인 미르를, 288억원을 출연받아 재단법안 케이스포츠를 설립하게 했다. 두 재단의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은 피청구인과 최서원(최순실)이 했고 기업들은 관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서원(최순실)의 요청에 따라 피청구인(박 대통령)은 안종범을 통해 케이티(KT)에 특정인 2명을 채용하게 한 뒤 광고 관련 업무를 담당하도록 욕했다. 그 뒤 플레이그라운드(최순실 설립 광고대행사)는 케이티 광고대행사로 선정돼 케이티로부터 68억여원에 이르는 광고를 수주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헌재는 최순실의 광범위한 국정농단과 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박 대통령의 혐의를 사실로 인정했다.

이정미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의 행위는 최서원(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이라고 했다.

소수의견도 있다. 이날 판결에서 김이수 재판관과 이진성 재판관은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대응은 미래의 대통령들이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해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을 유산으로 남겨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상실되는 불행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며 이를 지적했다.

또 안창호 재판관은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헌재가 박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12시경부터 대통령직을 즉시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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