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홍 본지 논설위원 / 경일대 교수

대한민국이 유례없는 진통을 겪고 있다. 각종 지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지만,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빚어진 국민간의 균열을 화합으로 묶는 일이 초미의 급선무가 되었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을 따진다면, 역시 이 사회를 이끌고 있는 더 배운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난마처럼 얽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결국 교육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교육문제에는 답이 없다'는 자조의 우스개도 있지만, 역사의 거울로 현재를 비춰보는 방법도 해법 모색에 유용할 듯하다.

수(隋)를 이은 당(唐)의 출발은 불안했다. 당 태종 이세민은 형과 동생을 제거한 ‘현무문의 정변’으로 권력을 잡았다. 그 원죄에도 불구하고 후인들이 칭송하는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룬 것은 다른 형제의 수하였던 과거를 문제 삼지 않은 인재 등용에다 간관(諫官)의 비판에 귀 기울인 덕분이었다. 특히 중용했던 위징도 태자였던 그의 형 이건성의 참모였다. 폐부를 찌르는 신랄한 간언에 그를 죽이고 싶은 충동까지도 일었지만, 당 태종은 이를 소화해냈다. 리더 그룹의 비판의식과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에 따라 그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비판적 시각을 양출하며 그 공공성으로 사회의 거울 구실을 해야 할 대학이 일용의 상품이 되어 시장바닥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구매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한국 고등교육의 현실이다. 어설픈 신자유주의의 생체실험 대상이 되었던 결과다. 그 사이에 만연한 학벌주의, 대학 서열화의 폐해는 사회 곳곳에서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승자독식의 무한경쟁, 과중한 사교육비, 불평등의 악순환 등의 병리현상은 이미 한국 사회의 고질이 되어 있다. 국민들에게 커다란 절망감을 안긴 모 대학의 부정입학과 부당한 학사운영 사건은 우리 교육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다. 요즘 여러 단체에서 교육혁신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것은 모두가 교육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10월에 출범한 대학정책학회의 경우,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와 더불어 수차례의 정책포럼을 통해 한국대학의 혁신을 위해 누구에게든 제안할 만한 몇 가닥의 고등교육정책안을 다듬어 왔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를 담보할 수 있는 국립대학법과 사립대학법 제정의 필요성, 교육재정 확대를 통한 고등교육 여건 개선, 교육부를 포함한 교육행정기구의 개편, 서열화 해소를 위한 고등교육시스템 개선, 부정비리 척결 등의 내용을 담은 제안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백년대계를 위해 단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일각에서는 학제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국가교육위원회나 교육지원처 설치 등도 논의되고 있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교육정책을 새롭게 가다듬는 일은 불가피해 보인다. 교육부와 총장에게 몰려있는 정책결정권, 정부에 순치되기를 바라는 재정지원방식 등으로는 제대로 된 고등교육혁신이 어렵다. 다음 대통령은 건강한 시각의 비판적 담론이 대학 현장에서 뜨겁게 일어나고, 그 실천방법의 결정이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거버넌스 시스템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비판정신이 살아야 대학이 살고, 대학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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