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장벽은 낮아져도 제도적 장벽은 여전

[한국대학신문 윤솔지 기자] 배움의 욕구 앞에 장애가 문제 되지 않듯 대학들은 장애학생들에게 장벽을 낮춰왔다. 대학 스스로가 장벽을 부수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공간이 된 것이다.

배리어 프리란 장애인들에게 보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무는 운동이다.

▲ 순서대로 왼쪽부터 학내 장애인용 주차공간, 건물 내 휠체어 전용 경사로, 장애학생 이동지원 도움벨. (사진=윤솔지 기자)

배리어 프리를 실천하는 예로 거동이 불편한 장애학생을 위한 장애인용 화장실이 늘어나고 가파른 계단 옆에 휠체어용 경사로가 마련된다. 장애학생 도우미가 장애학생의 이동을 돕고 강의를 대필해준다. 장애학생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을 하지 않도록 일반 학생들도 인식 개선교육을 받는다.

예전에 비해 많은 부분이 장애학생을 위해 맞춰지고 있지만 실제 대학 현장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이 남아있다. 직접 방문과 취재를 통해 서울 내 6개 대학의 ‘배리어 프리’ 실태를 진단해봤다.

■장애인전용 화장실 ‘고장’…장애학생지원센터는 이름만 ‘센터’=A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터는 별도의 사무실이 없다. 학생상담센터 안에 포함돼 있었다. 장애학생 지원의 총괄 업무를 맡는 담당자는 1명이었다. 교육부 지원 인력이나 근로 장학생이 장애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지원했다. 행정적 측면은 담당자 혼자 맡다보니 업무량이 많다.

대부분의 건물에는 지체장애학생을 위해 계단 옆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 신축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있어 위아래 층을 오르내리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건축된 지 오래된 건물들 중 간혹 휠체어 전용 경사로가 보이지 않는 곳도 있었다. 아무리 얕은 계단이라도 휠체어를 타는 학생이라면 도우미의 도움 없이는 출입하기 힘들었다.

▲ 중간 사진에서 보면 장애인용 화장실의 자동문이 고장나 그대로 활짝 열려 있다. 각종 청소도구와 쓰레기 봉투가 있어 창고와 같은 모습이다. 맨 오른쪽 사진에는 아예 변기가 쓰레기통으로 막혀 있는 상태. (사진=윤솔지 기자)

장애인용 화장실 자동문이 고장이 나 아예 열려있는 경우도 있었다. 문이 활짝 열려있는 화장실에는 청소하다가 잠시 막아놓은 변기와 각종 청소도구, 쓰레기 봉지가 보였다. 당장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고장이 난 장애인용 화장실 옆에 위치한 일반 화장실에는 장애인용 칸이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휠체어가 들어가기엔 비좁은 편이었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지체장애인이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변기의 전면에 휠체어가 회전할 수 있는 가로1.4m 세로1.4m 이상의 활동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형블록과 위치를 알려주는 음성 유도장치도 필요하다.

▲ 얕은 계단이어도 별도의 경사로가 없으면 휠체어가 이동하기 어렵다. (사진=윤솔지 기자)

가파른 언덕으로 유명한 B대학은 정문에 큼지막한 장애학생 안내 표시판이 설치됐다. 전용 버튼을 누르면 전동차가 내려와 장애학생의 이동을 돕는다. 이 대학도 마찬가지로 별도의 장애학생지원센터가 따로 없었다. 사설업체 경비원이 장애학생의 요청에 따라 그때그때 움직인다.

B대학은 화장실마다 장애인용 칸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구분돼 있지 않았다. 화장실이 붐빌 때는 일반 학생들도 스스럼없이 사용했다.

C대학은 장애학생지원센터가 별도로 있다. 담당자도 여러 명이었고 방문했을 당시 장애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려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물리적 편의에 비해 제도적 한계 여전…인식개선교육 콘텐츠 필요=학교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장애학생에 대한 시설 지원은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된 편이었다. 곳곳에는 점자 표식이 있었고 장애인용 주차 공간도 눈에 띄었다. 건물마다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있어 휠체어 이동도 용이했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장애학생들이 수강 신청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수강 신청 우선권을 제공하는 한편 좌석 우선선택 제도도 실시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장애학생 휴게실 △교수학습조정 권고 안내문 △교수학습 기자재 대여 △전문 속기사, 대필 도우미 지원 △장애 학생 간담회 △장애학생 전용 열람석 등이 제공됐다.

도우미 인력 수급과 계약직 담당자의 빈번한 교체, 인식개선 프로그램의 실효성은 여전히 문제다.

교육부는 올해 지난해보다 150명이 늘어난 3000명의 장애대학생 도우미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은 장애학생을 지원하는 실무담당자가 1명뿐이었다. 대학알리미 ‘2016 장애학생지원체제 구축 및 운영현황’에 따르면 한 대학의 경우 장애학생 64명을 총괄하는 담당자가 센터장 1명에 겸직자 1명이었다. 반면 이 대학의 교육부 지원 인력은 58명이나 됐지만 지원을 받는 수혜 학생 수는 25명에 그쳤다.

실무자의 임기가 1년 계약직이라 담당자가 매년 바뀌는 대학들도 많았다. 지난 2015년 모 대학에 재학 중이던 장애학생은 학교 측에 담당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며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이 학생은 “매년 바뀌는 선생님에게 본인의 장애 정도와 불편사항을 반복해 말해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곧 임기가 끝나는 선생님은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인수인계도 못하고 있다”며 특수업무를 맡는 장애학생담당자를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불합리한 제도라고 토로했다.

1년 계약직 담당자의 경우 계약 기간이 끝나면 그만둬야 하는데도 학교와 학부모 중간에서 입장 조율까지 도맡아야 한다.

E대학의 담당자는 “우리 대학은 장애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장학금 제도가 없다. 그래서 몇몇 학부모님들이 담당자에게 안 좋은 소리나 심한 말을 할 때도 있다. 나서서 학교 측에 건의를 해봐도 당장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보니 중간에서 굉장히 난처하다”고 말했다.

학교마다 실시하고 있는 장애인 인식개선 프로그램의 시행 자체도 어렵다. 이 담당자는 “장애인 인식개선교육은 연 1회 이상 의무적으로 하게 명시돼 있다” 며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입학식 때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영상을 틀어달라고 요청했는데 학교 측으로부터 거절당했다. 분위기 상 맞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인식개선 교육의 실질적 한계를 지적했다.   

이화여대 장애학생지원센터 고윤자 연구원은 “3년마다 교육부가 대학의 장애복지체계를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설 측면의 개선사항은 눈에 뜨게 좋아졌다. 완벽하진 않지만 물리적인 편의는 많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애학생 전담 인력과 인식개선부분에서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은 장애학생만을 위한 전담 직원을 두기 어려워 계약직을 고용하거나 겸직 직원을 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담당자의 업무 연속성이 떨어지고 장애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대학별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센터다보니 법적 제재는 없다”고 말했다.

고 연구원은 무엇보다 중요한 지원은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장애학생이 대학 구성원으로서 자연스럽게 배려와 이해를 받고 학내 문화에 흡수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일반적인 인식교육 콘텐츠 말고 교ㆍ강사용, 학생용, 직원용 교육자료를 따로 개발해 체계적인 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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