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말 혹은 고3 1학기 때 수능 치르자는 주장도 제기

▲ 16일 열린 국회 교육정책토론회에서 수능과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수능시기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사진=천주연 기자)

[한국대학신문 천주연 기자] 수능을 5등급 절대평가로 실시해 영향력을 줄이고 내신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수능시험 시기도 고2 말 혹은 고3 1학기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교육을바꾸는사람들과 오세정 의원실은 16일 ‘2021학년도 이후의 수능체제와 대입전형,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주제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교육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다가온다. 인문학적 소양과 과학기술의 창조능력을 갖춘 인재를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과 입시체제의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2018년부터 도입된다. 이 과정을 공부한 아이들은 2021년 변화된 입시를 치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너무 성급하게 이뤄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문가의 목소리를 듣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전적인 정책제안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능 영향 줄이고 내신 신뢰 높여야” = 발제를 맡은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미래의 수능체제는 중장기적으로 수능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내신의 신뢰도를 높이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찬승 대표는 수능 미래모형으로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학업성취도검사’ 성격을 갖는 1안은 수능과 고교 교육과정과의 연계가 강한 모형이다. 국·영·수는 공통으로 보고 공통사탐과 공통과탐은 논술로 평가하되 선택할 수 있게 했다.

2안의 경우는 읽기·쓰기·수리 중심의 대학입학자격고사의 성격이 강하다. 수능과 고교 교육과정과의 연계성은 1안에 비해 낮다. 대입전형에 내신의 반영 비율을 높이고 수능시험에서는 최소한의 과목만 보게 하자는 취지다. 이 안에서도 논술은 선택이며 소재는 공통사탐, 공통과탐에서 취하도록 했다.

이찬승 대표는 “토론수업, 프로젝트 수업을 통한 탐구학습을 강조하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의 도입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논술 형태의 평가가 필요하다”며 “다만 2021년도는 지금부터 불과 3년 남았기 때문에 매우 간단한 방식의 논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별 문·이과 성향을 고려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필수가 아닌 학생 선택에 맡기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모형 모두 내신과 수능은 5등급 절대평가로 설계했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등급 총합을 기준으로 선발한다. 등급 총합을 다시 5개 등급 구간으로 나눠 동일 등급구간에 속하는 지원자는 동일한 자격을 가진 것으로 보고 모집 단위별 유자격자 중에서 추첨으로 최종 선발하는 안을 제시했다.

수능시험 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찬승 대표는 “대입 시험 준비에 쏟는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2 말이나 고3 초가 적당할 것”이라며 “그렇게 하면 고3의 나머지 기간은 시험 점수를 의식하지 않고 각자의 진로, 진학 계획에 따라 다양한 학습과 시도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이찬승 대표는 새로운 수능체제를 논하기에 앞서 대입전형과 수능, 내신 설계의 기본 방향이나 원칙을 먼저 세우고 이를 기준으로 초안을 만들고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방향으로 △학생구성 다양성 추구 △고교 과정의 성격 변화 △고교교육 정상화 우선 △수시·정시 균형 추구 △수능 시험시기 조정 △수능에 논·서술형 포함 △수능의 영향력 축소 △수능 절대평가 △내신 질적 평가 강화 △내신 절대평가 지향 등 10가지를 설정하기도 했다.

■기본 전제는 공동선발제·대학별고사 법적 금지 = 이날 토론에 참여한 패널들은 학교 교육에서 경쟁체제가 크게 완화되고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신과 수능에서의 절대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5등급 절대평가라는 이찬승 대표의 안을 두고는 대학들의 변별력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이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장은 “수능이 자격고사의 성격을 갖지 않는 상황에서는 변별력이 약한 5등급 절대평가제가 정착되기 어렵다”며 “공동선발제도가 어떤 방식으로든 도입돼야 한다. 한국사회는 학벌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일정기간 동안에는 공동선발은 공동학위제도와 맞물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연구소장도 “이러한 안이 논의되면 대학의 변별력 요구는 거셀 것이다. 학생을 선발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칠거고 본고사 실시 요구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며 “개편안이 되기 위해서는 대학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본고사나 대학별고사는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의 논술형 수능이 필요하다는 데도 공감을 이뤘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창의융합교육이라는 게 단순히 여러 과목을 통합시켜놨다고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며 “본질은 내용의 넓이보다 깊이에 있다. 깊이 배우기 위해서는 요소는 축소되고 고차원적 의미 있는 질문을 갖고 통합적 사고를 하는 프로젝트형 수업이 이뤄져야 한다. 수능을 전개할 때 이런 내용이 이뤄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바칼로레아식 논술형 수능 도입을 주장했다.

다만 이를 수능에서 선택으로 할 경우 국·영·수 중심의 수능 성격이 더욱 심해질 우려가 있다며 통합사회·통합과학의 논·서술형 평가를 수능에 필수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능시기 조정에 대해서는 공감과 동시에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표했다. 김진우 공동대표는 “취지에 상당히 공감한다”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렇게 작동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만약 고3 1년을 자유학년제처럼 하고자 한다면 수능이 자격고사 개념으로 합격하고 나면 더 이상 점수를 올릴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승 대표가 제안한 추첨제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많았다. 학벌 경쟁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수용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범 전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고르기아스의 매듭은 풀어내려 해서는 안 되며 끊어내야 한다”며 “우리 교육의 핵심 문제는 과열 경쟁과 주입식 교육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 교육의 내용적 변화, 즉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낼 수 있을 것이냐는 것과 경쟁의 강도를 어떻게 완화시킬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쟁 강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 학부입학 평준화를 제시했다. 이범 전 부원장은 “앞으로 3~4년 후에는 고교 졸업자 수가 45만명 정도 급감한다. 이중 15~20만명을 일반대학에 선지원 추첨 방식으로 배정하자”며 “정부가 학생선발권을 가져오는 대신 대학에게 매년 정부예산의 1%인 약 4조원을 나눠 지원하자. 사립대의 경우 재정이나 인사 등의 자율성은 그대로 인정해 주되 학생선발권만 가져와 전국적 인구비율에 맞는 메이저대학 공동 학생선발체계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능을 폐지하고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대학들이 학생의 수학 능력과 수능 성적의 상관성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고 있다”며 “게다가 모든 과목을 암기하도록 강요하던 ‘학력고사’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1993년 수능이 도입됐지만 모든 면에서 과거의 ‘학력고사’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수능 폐지를 주장했다.

이어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며 “대학의 학생 선발 능력을 회복시키는 노력이 가장 시급하다. 입시의 다양성이 미래 지향적 입시의 핵심 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