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으로 트라우마 치료 보장했지만 참여는 아직 미미
관계자들 “치료 위해선 학교-학생 ‘신뢰회복’ 우선”

[한국대학신문 황성원 기자] #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주위 사람들의 축하와 부모님 기대 속에 입학했다. 사건이 터졌을 때는 학교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낀 채 종이 피켓을 들고 앉아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건물 사방에서 밀려드는 경찰들의 눈빛이 기억난다. 학교에 대한 믿음과 내가 바라왔던 이상, 순수했던 내 마음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길을 걷다 경찰차 마크만 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화여대 재학생 김씨)

▲ 지난해 8월 이화여대 학생들이 본관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철회를 외치며 앉아있다.(한국대학신문DB)

이화여대는 학생들을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대 목동병원과 협력해 정신건강 상담을 무료로 진행했다. 그러나 치료를 받은 학생은 몇 되지 않는다. 문제는 ‘신상 공개’ 우려였다.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공개 진료’를 요구했다. 치료를 위해선 이화여대 학생임을 확인해야 하고, 익명 치료는 진료비 등과 관련해 회계상 문제가 된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의 비민주적인 학사 운영과 지난 시위 당시 일부 교수가 시위 참가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언을 하는 등의 모습을 봐온 터라 학교의 공개 치료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온라인을 통한 모임을 만들어 외부 시설에서 치료를 진행했다. 이 대학 교수협의회(교협)에서는 모금과 기부를 통해 학생이 외부에서 심리상담을 받는 데 도움을 주고, 철학과 교수에게 위탁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철학 상담도 진행했다.

그러나 현재 교협의 학생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모금은 중단된 상태다. 학생의 상처 치유를 위해 다시 학교가 나섰기 때문이다. 교협 관계자는 “많은 분이 학생들의 트라우마 치료에 힘써줬다”며 “지금은 학생들이 교내 학생상담센터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이 대학 학생상담센터에서는 재학생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고,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특별 상담실’도 열었다. 오는 4월 초 심리상담 관련 행사도 개최할 예정이다. 학교 측은 학내 갈등으로 생긴 학생들의 상처 치유에 힘을 쏟겠다는 입장이다.

학생상담센터 관계자는 “이번 달부터 트라우마가 생긴 학생들을 위해 익명성을 보장한 상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며 “벌써 몇몇 학생이 상담을 진행 중이다. 치료가 필요한 더 많은 학생이 프로그램을 알 수 있도록 홈페이지와 현수막 등으로 홍보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교가 학생들이 요구했던 ‘상담치료 익명성 보장’에 손을 들어줬지만, 학생들의 프로그램 참여는 미미한 상황이다. 학생들의 활발한 치료를 위해선 학교와 학생 간 ‘신뢰 회복’이 우선이라는 게 학내 구성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학생상담센터 관계자는 “학생들이 학교에 믿음이 생겨야 더 많은 학생이 치료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협 관계자도 “학생들이 학교 프로그램을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학교와 ‘신뢰 회복’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대면으로 만나는 일을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학생들이 겪은 트라우마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눈에 보이는 문제로 드러날 확률이 높다. 지금은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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