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육종인‧김남희 교수, 기초연 황금숙 박사 연구

▲ 연구책임자 육종인 연세대 교수(좌)·황금숙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중)와 1저자인 김남희 연세대 연구교수(사진=한국연구재단 제공)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국내 연구팀이 암세포 생존 방법을 이해하는 새 지평을 열었다. 한국연구재단(이사장 조무제)은 21일 육종인 연세대 교수(치과대학), 황금숙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김남희 연세대 연구교수(치과대학, 1저자) 연구팀이 전이 과정에서 암세포가 살아남는 방법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전이 중 암세포가 살아남는 구체적 기전을 밝힌 건 처음이다.

특히 암세포가 어떤 물질을 분해해 살아있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이화작용(Catabolism)을 이용한다는 것을 밝힌 데 의의가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기존 연구는 암세포가 에너지를 활용해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 동화작용(Anabolism) 측면의 성과가 많았다. 따라서 어떤 물질이 암세포 생존에 필요한지, 또 그 물질의 생성‧활동을 어떻게 억제하는지가 학계의 주요 관심사였다. 동화작용의 반대인 이화작용을 암세포가 이용한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향후 암 치료 연구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암에 걸린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데는 암세포의 전이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 암세포가 된 세포는 영양분만 공급된다면 죽지 않으며, 무한히 분열한다. 본래 기능을 잃고 에너지를 소모해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전이과정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살아남기 위해 포도당이 없는 등 다양한 대사 스트레스를 극복해야 한다.

연구팀은 전이가 일어나는 때와 같이 포도당이 없을 때 암세포가 생존하는 방법을 처음 밝혀냈다. 이전에 암세포가 생존하는 방법을 설명해준 것은 와버그 효과였다. 20세기 초 독일 오토 와버그(Otto Warburg) 박사가 제창한 것으로, 신체에서 에너지 재료로 쓰이는 포도당이 많을 때 암 주변의 다른 세포보다 많은 양의 포도당을 흡수해 에너지를 만든다는 이론이다. 와버그 효과가 이뤄지지 않을 때 암세포가 생존하는 방법을 밝히는 건 학계의 관심사였다.

연구에 따르면 암세포는 항산화물질을 만들어 전이 과정에서 생존한다. 암세포는 상피세포에서 기원한 암종(Carcionoma, 대부분의 암)과 근육, 뼈, 혈관 등에서 유래한 육종(Sarcoma, 백혈병 등)으로 나뉜다. 상피세포에는 세포 사이를 결속시키는 카데린(E-cadherin) 단백질이 있으며, 암세포가 본래 위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방지해 암의 전이를 막는다. 암세포는 스네일(Snail) 단백질을 만들어 카데린 단백질을 제거하고, 본래 위치에서 이탈해 다른 곳으로 전이된다.

▲ PFKP가 억제되면 세포는 정상적인 해당작용 대신 항산화물질 NADPH를 만드는 5탄당 인산경로를 일으킨다. PFKP는 해당작용 또는 5탄당 인산경로로 향하게 하는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한다. (사진=한국연구재단 제공)

암세포는 이 스네일 단백질을 이용해 정상적인 이화작용을 바꿔 항산화물질을 만든다. 세포는 포도당을 먹고 이를 젖산으로 바꾸면서 에너지를 만드는 이화작용인 해당작용을 한다. 열쇠는 해당작용을 촉진하는 PFKP(Phosphofructokinase) 효소다. PFKP가 억제되면 세포는 해당작용 대신 항산화물질 NADPH(Nicotinamide Adenine Dinucleotide Phosphate, 환원형)를 만드는 5탄당 인산경로를 일으킨다. 즉, 스네일 단백질이 생기면 PFKP가 억제돼 항산화물질이 생성되고, 활성산소를 제거한다. 포도당이 없을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견디면서 무사히 전이된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세포 단위에서의 실험뿐 아니라 실험 쥐(Mouse)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도 같은 현상을 관찰했다고 밝혔다. 동물 모델에서 스네일이 생기면 폐로의 암세포 전이가 늘어났고, PFKP를 증가시켜 스네일의 양보다 많아지면 전이가 억제됨을 확인했다. 스네일이 PFKP 발현을 억제해 생체 내에서 암 전이를 유도함을 보인 결과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책임자 육종인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로 새로운 표적이 드러나면서, 대사경로의 목표가 알려진 기존 대사약물을 암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앞으로 항산화물질(NADPH)을 억제하는 5탄당-6인산화효소(Pentose-6-phosphatase)와 같은 물질을 투여해 암을 치료할 방법을 연구하겠다”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밝혔다.

이번 성과는 미래창조과학부‧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개인연구부문),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의 학문후속세대양성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지난 2월 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