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후보 교육공약 2012년 수준에 그쳐 … 여권 ‘문·안·이’ 성토에 정책 실종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확정됐다.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가운데 한국 사회는 격랑에 휩쓸릴 전망이다. 무엇보다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은 국내 상황보다 국외 상황이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트롱맨(강한 지도자)’ 시대에 접어든 가운데 지난해 1월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회장이 강조한 4차 산업혁명이 코앞에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그간의 어려움을 일신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이자 위기다. 그러나 정작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는 대선주자들의 공약에는 핵심인 직업교육이 빠져있다. 교육정책은 여전히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를 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화돼야 할 고등직업교육은 취업복지정책 수준으로 논의하는 정도다. 이에 본지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함께 전문대학에서 4차 산업혁명의 답을 찾는 공동 기획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1. 박근혜정부의 실패 그리고 변죽만 울리는 대선공약
2. 4차 산업혁명의 해답은 고등직업교육 현장에 있다
3. ‘학제개편’ ‘직업교육’ 직업교육 답안지는 나왔다

[한국대학신문 이재 기자]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전문대학과 고등직업교육은 빠졌다. 대선주자들은 연일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4차 산업혁명 최전선인 전문대학과 직업교육에 대한 관심은 미흡한 수준이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측도 마찬가지다. 22일 서울 영등포 대영초등학교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직접 밝힌 교육공약은 대학입시와 공교육 정상화, 지방대 육성, 비리·부실사학 처리 등이다. OECD 평균 수준으로 공교육 지출을 늘리겠다는 공약은 정부지출을 OECD 평균인 1.0%로 끌어올린다는 박근혜정부의 공약보단 진일보한 내용이지만 큰 골격은 2012년 대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고등직업교육 분야가 그렇다. 지난해 1월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회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직업 510만 개가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삶의 환경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딥마인드가 추진한 ‘국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국이 큰 파장을 불렀다. 인공지능의 발달된 현주소가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렇게 한국사회는 4차 산업혁명을 두 눈으로 직접 목도했다. 정치인들의 4차 산업혁명 언급이 많아진 것도 그 때부터다.

그러나 교육현장에선 여전히 미흡하다. 기존 정책이 4차 산업혁명으로 둔갑한 게 전부다. 능력중심사회를 만들겠다는 국가직무능력표준에 4차 산업혁명 대비가 슬로건으로 삽입됐다. 서울대는 국제적인 연구력 강화를 위해 추진한다던 시흥캠퍼스를 4차 산업혁명 대비로 선회했다. 내용은 같다. 한 전문대학 교수는 “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이 화제가 된 뒤 너도나도 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지만 정작 정부정책은 여전히 취업률 쥐어짜기에 그치고 있고 대학들도 홍보용 팸플릿에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할 뿐”이라고 힐난했다.

5월 9일로 다가온 이른바 ‘장미대선’을 앞둔 각 정당의 경선레이스에서도 미래 비전은 실종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장 유력한 후보를 여럿 보유해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 비유되고 있지만 교육정책은 주요 이슈로 등장하지 못했다.

유력 야권후보들의 교육공약을 살펴보자. 문재인 전 대표는 평등원리에 기초한 교육공약에 가깝다. 더 구체적으로는 2012년 이후 민주당계가 설계해둔 교육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립대 교육비 지원 확대와 국공립대 연합체제 점검은 과거 국공립대 네트워크에 준한다. 중학 일제고사 폐지와 초중고 교육의 교육청 이관, 누리과정 중앙정부 부담도 평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주장해온 그간의 궤도와 같다. 외국어고·자사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방침도 혁신학교 등을 끊임없이 시도해온 진보교육감들의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와 대학입시 전반에 공정성을 강조한 것은 그간 교육·입시의 불공정성을 타파하는 효과를 낳겠지만 도리어 개인의 탁월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방국립대 등록금을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안이 주목을 끈다. 한 교육전문가는 “최상위권의 서울 소재 사립대와 최하위권 부실·비리대학들 사이에 중간층을 설정하겠다는 것”이라며 “대다수의 보통 학생들이 모든 대학입시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지 않도록 중간층을 설정하겠다는 의도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교육정책은 징벌조치의 성향이 짙다. ‘사이다 발언’으로 주목받은 평소 발언과도 부합한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사학비리를 근절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시장 역시 문재인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공영형 사립대를 제안했다. 공영형 사립대는 정부가 대거 재원을 투입하는 동시에 대학의 운영권 일부를 국가가 갖는 형태다. 비리·부실사학의 경영진을 사실상 징벌하고 국가가 해당 대학을 공교육 체계로 떠안는다는 개념이다. 이재명 시장은 여기에 더해 국공립대와 공영형 ‘전문대학’은 등록금을 무상으로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는 4차 산업혁명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속해 있어 가장 전문성이 높다. 이미 안철수 전 대표는 수차례 교육 관련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학제개편이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안철수 전 대표의 학제개편은 중학교육에서 직업탐색기회를 늘리자는 게 골자다. 직업교육학계는 난색을 표한다. 실제 학제개편의 기본적 개념은 일반대와 전문대학의 병렬이다. 일반대가 전문대학에 앞서 있는 직렬구조로 된 것을 동등한 위상의 병렬구조로 바꾸겠다는 개념이다. 한 전문대학 교수는 “지금은 4년제 일반대가 1진 대학, 전문대학이 2진 대학처럼 돼 있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고교생이 직업교육을 받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4년제에 가야 한다. 학생 선택권이 제한되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자는 게 학제개편의 핵심이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래도 안철수 전 대표가 4차 산업혁명의 이해나 직업교육을 강화할 필요성을 가장 깊고 크게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고 평했다.

이와 달리 여권에서는 별다른 교육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바른정당은 여권내 정책통 이미지를 굳혀온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유승민 의원이 경선에 나섰지만 파편적인 공약만 나왔을 뿐이다. 자유한국당은 경선 토론회마다 야권을 성토하는 데 힘을 쏟고 있어 정책대결이 어렵다는 분석이다.

대선후보들이 직업교육에 큰 전문성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전문대학과 고등직업교육 전문가들의 우려는 깊어지고 있다. 서울 소재 한 전문대학 관계자는 “지금 국내외로 사회체제 격변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데 정치권에선 속 편한 소리만 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직업교육에 대한 이해가 너무 떨어져서 그렇다. 직업교육에 대한 개념 확립부터 직렬적인 구조를 회복하는 것, 그리고 4차 산업혁명에서 어떤 분야를 집중해 역량을 발전시킬지 하는 전략까지 과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직업교육이 소외받는 배경으로 캠프의 인적 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전문대학 교수는 “대부분 대선캠프에 참여한 교수진의 전공이 교육학이다. 초중고 문제에 이슈가 집중돼 있어 그렇다. 직업교육 전공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들 중에 전문대학에 몸을 담은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소외를 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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