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식 고려대 교수/산업공학

30년 전 필자가 컴퓨터 시각시스템으로 물체를 인식하는 시스템 구축을 내용으로 연구를 진행해 박사학위를 받을 때에만 해도 인공지능이 제조ㆍ서비스ㆍ바이오메디컬ㆍ문화예술 그리고 금융 등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이 적어도 수백만 년 이상 오감을 통해 멀티미디어 정보를 실시간 처리하면서 진화한 우리 두뇌의 지능을 컴퓨터가 모방하기에는 수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아주 먼 미래의 일로 예측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전혀 다른 세상 즉 디지털 세상의 출현까지도 예상된다. 디지털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다른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하는 특성이 있으며 더구나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기계가 최고의 바둑 고수를 능가하고 십 년 이상 수련한 전문의 수준으로 암을 진단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또한 외국어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연어를 빠르게 처리하고 추론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개발되고 수백 년 동안 발전해온 자동차산업에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됨에 따라 동력이나 제어시스템이 바뀌면서 무인 자동차나 드론과 같은 완전히 다른 이동수단이 출현하는 현실이 우리 산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미래의 구체적인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이러한 때 대학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 등 새로운 환경에 대응할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연구에도 많은 변화가 예견되며 과학기술 분야와 인문사회과학 분야와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디지털 혁명시기에 대학은 미래의 산업을 이끌어 나갈 학생을 교육하기 위해 현재의 학제 시스템이나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또한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 디지털 산업의 모습을 성급히 예단해 결론을 내고 미숙한 교육정책을 섣불리 실행하기 전에 모든 학문 분야가 소통하고 융합하는 디지털 광장문화와 생태계의 조성이 우선적으로 선행돼야 한다.

한 예로 10년 전부터 활동해온 전국 공과대학의 공학교육혁신센터가 좋은 본보기라 생각된다. 산업화의 전진기지인 대한민국 공과대학의 혁신을 위해 공과대학장협의회에서 제안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진흥원이 같이 추진해온 공학교육혁신센터는 각 대학의 혁신방안과 사례를 다른 대학들에 전파 확산하고 공유함은 물론 함께 사업을 추진하는 운영 구조를 갖고 있다. 본사업이 이처럼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는 수요자의 자발적인 토론으로 사업이 제안돼 바텀업(Bottom-Up)으로 진행됐고 대학과 기업이 함께 모여서 고민하고 같은 과제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방법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대학도 산업계도 교육 등의 국가적 미래를 위해서는 서로 공조하고 토론하는 것이 우선인데 이제까지 기업들은 이익 추구 외에 거시적으로 대학교육에 기여하는 기업문화 형성을 위한 노력은 다소 미흡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산업체와 대학, 연구소와 정부는 각각의 벽을 넘어서 인공지능 주도의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해 서로 만나서 토론하며 공동의 미래전략과 전술을 다듬어 가는 디지털 아고라 문화와 그 생태계의 구축이 절실하다. 특히 우리 산업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위기감은 우리가 다 같이 소통하고 합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모든 산업 관련 기관이 서로 소통하고 국가관을 갖고 대응한다면 우리의 미래 먹거리 산업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섣부른 공약과 정책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탑다운(Top-Down) 문화는 디지털혁명의 공유시대에 효율적이지도 않고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현명한 대처 방안이 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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