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과 도입 등 "4차 산업혁명에 맞춘 학제간 융합"

▲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료사진)

사회 트렌드 맞춰 학제 간 벽 허물자 vs 자기 분야 전문성 가진 연구자 줄어 들어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전국 과학기술원 4곳은 학부대학 출범부터 무학과·기초학부 이름 아래 학생들을 선발했다. 연구중심대학인 포항공대(POSTECH)도 내년도 입학생부터 사실상 학과 정원의 벽을 허문다. 이공계 중점대학 5곳의 전공개방 현황은 어떨까.

가장 먼저 무학과 개념을 도입한 곳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다. 학부과정을 처음 설치한 1986년도부터 대학 단위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2006년도부터 900명을 뽑아 과학기술원 중 학생 수가 가장 많다.

신입생은 1학년 때 수학·물리·화학·생명과학 등 기초과학과 교양과목을 주로 듣는다. 2학년으로 올라가며 전공 학과를 선택해 소속감을 갖는다. 무학과 트랙 도입도 검토 중에 있다. KAIST 관계자는 “2018학년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의사를 묻는 과정을 거쳐 대학 실정에 맞게 준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2009년 개교 당시부터 이공·경영 계열단위로 학생을 모집했다. 이공계열 320명, 경영계열 40명 총 360명의 학생이 계열 내 무전공으로 입학한다. 학생들은 기초과정부로 입학해 교양과정을 이수하며 전공 선택을 위한 탐색과정을 갖는다.

김지연 UNIST 입학팀장은 "학생들은 2개 이상의 전공을 의무적으로 고르되 인원 제약 없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융합전공을 강조하는 UNIST의 특징을 살리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내년도부터 정시전형을 폐지하고 수시로 360명 전원을 선발할 계획이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2010년 학부 개교부터 ‘전공선언제’라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 전공학과(major)에 속하는 것이 아닌 집중(concentration)의 개념이다. 신입생 200명 전원을 무전공 기초교육학부로 선발하는 것은 같다. 기초과정을 듣는 기간이 2년이다. 3학년 진학 시 전공을 '선언'하고 학과 정원 제한 없이 심화과정을 이수한다. 단 심화과정의 졸업이수 전공학점을 12학점으로 제한하고 그 이상은 전공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권진 GIST 입학사정관 팀장은 “타 대학과 커리큘럼 성격 자체가 다르다. 한 가지 전공만 심화해서 듣는 게 아니라 다른 전공을 이해해 융합을 강조하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GIST도 기존 2+2의 선언제 학사과정을 4년 무학과 등 다른 형태로 변경하고자 검토중에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는 2014년 개교부터 4년 무전공제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200명 전원을 무학과 단일학부로 뽑고, 교ㆍ강사도 모두 단일학부 소속이다. 학생들은 졸업 시 자신이 자유롭게 이수한 과목의 비율에 따라 이학사, 공학사 중 하나를 받는다. 2학년까지 자연과학 기초교양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3학년부터 자신이 지망하는 전공과 연계시킬 수 있는 심화과목을 자유롭게 수강하는 방식이다.

더불어 UGRP 프로그램이라는 학부생공동연구 프로그램을 수행하도록 한다. 학생 5명이 한 조가 돼 지도교수 1인과 1년 간 연구과제를 진행한다. 3학년 필수, 4학년 선택이지만 김기호 DGIST 입학팀장은 “UGRP 프로그램을 2년 연속으로 수강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포스텍의 경우 내년도부터 320명 입학생 중 70명을 대상으로 했던 무학과 제도를 전체 입학생으로 확대한다. 단 명품IT인재육성사업 학과인 창의IT융합학과는 제외한다. 무학과 입학생들은 타 과기원처럼 1학년 기초과정을 거친 후 학과를 선택해 심화과정을 이수한다.

타 대학과 달리 학과 선택을 2ㆍ3학년 때까지 유보할 수 있다. 학생이 원하는 전공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전공필수 이수요건 등 졸업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다. 오창선 포스텍 학사관리팀장은 “학과별로 고정돼 있던 정원 벽을 허문다는 게 차이점이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학과 간 선호 경쟁을 유발할 것”이라며 “기존 전공 틀을 유지해 전문성은 살리고 무전공의 장점을 취하는 혼합형태”라 설명했다.

이공계 중점대학들이 전공 개방을 적극 도입하는 이유는 뭘까. 이들 대학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등 융합이 강조되는 현대 과학기술의 변화를 강조한다. 김기호 DGIST 입학팀장은 “우리 대학 교수들은 자신만의 연구가 아닌 공동연구, 융합연구를 하고 있다. 다른 분야 이해가 없으면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기 어렵다”며 “학제간 융합연구가 강조되는 현대 과학기술 트렌드를 따른 것”이라 설명했다. 오창선 포스텍 학사관리팀장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에 맞춰가려는 게 있다. 기존 학문 영역을 유지하면 이런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고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성을 갖춘 연구책임자 양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박사급의 연구책임자가 논문을 작성하려면 자신의 전공 분야에 몰입해 세상에 없던 연구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포스텍 관계자는 “연구자를 지망하는 학생 본인의 정체성에 맞는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전면 무전공을 도입하면 그런 측면을 고려하기 힘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KAIST 담당자도 “졸업 후 바로 창업, 취업을 하고자 하면 융합이 유리하다. 하지만 학계에 남으려고 한다면 학부에서 한 분야에 특화된 학생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KAIST도 무학과 도입을 검토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업 교재를 새롭게 개발하는 등 보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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