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 (본지 논설위원 /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학교 교육이 위기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미래학회는 2030년에 사라질 10가지에 공교육을 포함시켰고 공장형 교육 모델이 도입돼 교사 없는 맞춤형 학습 시대가 열릴 것이라 예측했다.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는 전 세계 대학의 절반은 20년 내 문을 닫을 거라고 예견했다. 위기의 시작은 제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발전이다. 미래학자들이 사라질 거라 예측한 직업에는 의사, 변호사, 기자와 함께 교수, 교사가 포함돼 있다. 대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 대책과 교육개혁이 이슈가 되고 있고, 산업계는 관련 핵심기술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전대미문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학들은 과감한 변화에 나서고 있지 않다. 진짜 위기는 위기인데도 위기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지난 3월 30일 한국대학신문 주최로 열린 UCN 2017 프레지던트 서밋에서 대학총장들은 제4차 산업혁명과 대학구조개혁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필요성을  공감하는 정도에 그쳤다. 총장들은 여러 가지 난관을 거론했다. 교육부 평가 때문에 제4차 산업혁명 준비 여력이 부족하다, 지역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 취업이 우선이다, 교수집단이 제4차 산업혁명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등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나마 몇몇 총장은 학문 간 융합으로 미래인재 육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거나 IBM 왓슨 도입으로 대학 내 알파고 쇼크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지만 대학 개혁의 큰 흐름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의 초중등 교육 현실에 대해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고등교육기관인 대학도 그다지 나아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교육방식과 대학제도는 산업사회의 유산이다. 사회는 탈산업화하는데 대학은 산업화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으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대학은 지식을 배우고 서로 다른 생각이 만나는 지성의 장이었지만 동시에 사회를 발전시키고 미래를 변화시킨 위대한 생각과 가치가 만들어진 곳이다. 이런 대학의 역할이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이 취업준비 기능에 갇혀 있거나 미래변화를 선도하지 못하면 존폐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교육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바랄 수는 없다. 서서히 끓는 물속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하버드나 MIT가 무크라는 온라인 강좌를 만들며 변화를 시도한 것은 위기감의 표현이자 생존전략이다. 하지만 양질의 강의 콘텐츠 개발 정도로 대학 경쟁력을 강화할 수는 없다. 지식을 습득하고 학점을 취득하는 제도화된 공간이라는 대학의 전통적 역할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대학과 교수의 역할, 교육방법 등 모든 것이 새롭게 정의돼야 한다. 지식 전달보다는 토론과 질문 중심으로 바꾸고 창의적 생각과 역량, 기업가정신을 기르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창의적 상상, 도전적 실험이 이뤄지고 미래지향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곳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수 혁신이다. 풍랑이 몰아칠 때 선원들은 선장을 바라보고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두려운 학생들은 교수를 쳐다본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교수들의 인식과 태도 변화가 먼저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고 대학교육의 질도 교수의 질에 달려있다. 교수가 바뀌어야 대학이 바뀌고 대학이 바뀌어야 미래가 바뀐다.

제4차 산업혁명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간 대한민국은 ‘모방, 추격’ 전략으로 선진국을 뒤쫓으며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더 이상 이런 전략은 먹히지 않는다. 대학이 변화의 선두에 나서야 한다. 2500년 전 공자는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생긴다(人無遠慮 必有近憂)’고 가르쳤다. 대학이 제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시일 내에 존폐위기라는 근심에 휩싸일지 모른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