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컨설턴트 박우식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뉴스들이 연일 미디어를 통해 송출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삶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사실은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슨 유행을 쫒아가듯 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듯한 분위기는 경계해야 된다.

코딩교육 의무화, 정부의 소프트웨어 투자 확대, 대학 학제 개편, 채용시장에서 이공계 강세 지속 등 다양한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인문학에 대한 고민은 묻어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갈수록 인문학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취업시장에서의 푸대접은 심각한 상황이다. 취업시장이 수년째 계속 불황이지만 인문계 졸업생들에게 유독 가혹하다. 한 취업률 조사에 따르면 인문은 45.5%, 사회는 54.1%의 취업률을 나타냈다. 이는 공학(65.6%)이나 자연(52.3%) 계열 취업률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인문계 전공자들은 자신의 주 전공을 세탁하기 위해 복수전공을 하거나 편입, 혹은 대학원 진학을 통해서 인문학 전공자라는 딱지를 떼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대학생 55%가 복수전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공계 취업 강세 경향에 따라 인문계 전공자가 이공계 전공으로 복수전공을 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물론 융합이 강조되는 추세에서 다양한 학문을 공부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인문학 전공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왔다갔다하는 것은 문제다.

미국 애덤스 인문학기금 이사장은 "기술이 고도로 발전할수록 우리는 가장 오래된 의문들에 다가가는 것"이라며 "이 어려운 질문을 탐구할 사람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생명공학자가 아닌 인문학자"라고 강조했다. 인문학에 대한 탐구 없이 기술만 발전한다면 신기술에 따르는 필연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으므로 "결국 기술 발전과 인문학 지원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애덤스 이사장의 말에 공감한다. 인문학의 강점이 있다. 인문학을 나무로 비유하자면 뿌리와 같은 것이다.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나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듯이 인문학이 튼튼하지 못하면 응용학문이 꽃을 피우지 못한다. 인문학에 뿌리를 두지 못한 기술이나 서비스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가 오더라도 인문학은 역설적으로 더욱 각광 받을 것이다. 시류의 편승하여 인문학을 홀대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변화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자는 말이 아니다. 균형감각을 유지하자는 말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은 인간 삶의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생산성의 혁신을 통해 기존에 인간이 해왔던 많은 일자리의 감소와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공존방식과 노동 해방이 가져온 인간 삶과 의미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요구될 것이다. 또한 인간만이 가진 감정은 새로운 문화와 산업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감정에 따라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양한 형태로 교통수단이 발달했지만 인간은 일부러 걷거나 뛴다. 전국 곳곳에 생겨난 둘레길의 등장이 이를 증명한다. 디지털 음질이 좋아져도 공연장을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인문학적 사고와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된다. 인공지능, 로봇 기술의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이지만 인문학에 뿌리를 두지 않으면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