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배 성균관대 명예교수

박근혜 정권 하에서 문화예술인 2만명 이상이 차별과 불이익을 당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부장관의 블랙리스트 정책집행의 결과다. 그 리스트 존재가 드러났을 때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대명천지에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대대적 차별과 적대행위가 지속적으로 저질러졌고, 그 만큼 문화예술계가 타격을 받고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그 규모와 수법의 교활함 그리고 그 담대함에 놀랐다는 것이다.

모두가 놀라워하는데 정작 두 장본인은 이것을 대수롭지 않는 정책 관행쯤으로 치부한 것이 또한 놀랍다.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 전력에다 법무장관까지 지낸 법 전문가가, 지원 배제 예술인 명단을 작성하고 그들을 차별하고 적대하는 정책행위가 범죄가 되는 줄 몰랐다. 이전 정부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고 일종의 정책 관행으로 여겼다는 것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아무튼 두 전직 최고위공직자는 피고인 신분의 초라한 모습으로 재판대에 서있다.

어떤 죄목으로 얼마큼의 형량으로 심판이 내려질지는 사법부의 몫이다. 다만 필자는 피고들이 제기하는 자기 변명과 법리적 궤변성에 몇 가지 비판적 논점으로 그 허구성을 짚고자 한다.

첫째, 좌·우 예술인들에 대한 균형정책 차원에서 리스트가 작성 집행됐다는 것, 그래서 블랙리스트 집행은 정상적 국가정책의 하나로 범죄행위가 아니란 주장이다. 이것은 외교 교섭, 전쟁 혹은 풍수해 대책 등 국가의 조처와 행위는 사법적 잘잘못의 판단의 대상이 아니란 세르바티우스 국가행위론을 어설프게 끌어들인 궤변이다. 법치국가에서는 국가행위로서의 정책도 법과 규정에 따라 입안되고 공개적으로 집행되지 않으면 불법이며 그 정책 행위는 범행이 된다. 극비리에 추진 집행된 그 블랙리스트정책이 범죄행위가 되는 이유다.

둘째, 블랙리스트 범행이 피고인의 문화예술과 그 가치 창조에 대한 몰이해와 법철학적 지식빈곤에서 자행됐다는 점이다. 문화인을 살해하는 것은, 문화와 법이 없는 원시인을 죽이는 것보다 곱절의 범죄가 된다는 격언이 있다. 살인죄에 문화파괴의 죄가 더해져 두 배의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문화와 예술은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헌법은(제11및 22조) 문화예술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호한다. 대대적으로 이 기본권을 훼손한 블랙리스트 집행은 그래서 위헌적인 범행이다.

셋째, 블랙리스트가 이전의 모든 정부에서 관행처럼 행해진 대수롭지 않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문화정책이었다는 인식 그 자체가 재앙이다. 이 정책관행적 블랙리스트 인식은, 사회철학자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의 한국적 버전 아닌가. 악하고 파렴치한 야만정책을 평범하고 정상적이라니 말이다. 야만적이고 파렴치한 범행이 정상적이고 평범하게 인식되므로 악의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더 크게 범행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악의 평범성 인식은 수 천 수 만명에 이르는 예술인들의 인격과 사기에 대대적 상처를 입히고 문화예술계를 강타하는 범행을 저지르게 한 것이다.

넷째, 블랙리스트 작성이 국가정책행위였다고 했을 때, 국가정책에 대한 이들의 정책 이해의 빈곤을 지적할 수 있다. 국가정책은 국민의 보편적 공익 제고가 목표로 설정돼있다. 그 말은, 이념적 지역적 계층적 차별없이 이익을 고루 배분하는 목적을 국가 정책은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블랙리스트는 지원과 배제할 개인과 집단을 편향적으로 선택하고 차별하는 목표상실적인 반국가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국가 정책은 부분이익 선택성과 이익배분의 강제성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데, 이 경우 정책으로 인해 손해보는 개인과 집단의 반론과 동의를 얻지 못하면 정책집행은 중지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밀실에서 밀어붙였으니 블랙리스트 집행은 범법이다. 이제 그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만 남았다.

전후 파괴된 공장, 백화점, 정부청사, 의회 건물, 오페라하우스 중 원조자금으로 제일 뒤에 예술 건물을 제일 먼저 복구한 국민들이 마샬원조를 제공한 미국조차 부러워할 선진 문화국가를 성취했다고 한다. 이것은 문화예술적 가치 훼손이 큰 범죄행위가 됨을 우회적으로 역설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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