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위한 행진, 광화문 등 세계 600여곳 동시 집회

▲ "과학이 미래다!" 행진 전 2시 시작된 과학버스킹 '과학을 말하다'에서는 중견, 신진, 여성, 장애인 등 다양한 과학기술계 목소리가 분출됐다. 22일 전 세계 610곳에서 '과학을 위한 행진' 집회가 동시에 개최됐다.(사진=김정현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국정운영을 과학적으로! 연구는 자율적으로!”

과학기술인들이 대학과 연구소를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22일 전 세계 610곳에서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for Science)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서울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은 피켓을 든 과학기술자 수백 명으로 가득 찼다.

한국의 장미대선, 미국 트럼프 정부의 국립보건원 예산 반토막 등이 맞물려서일까. 참석자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반지성주의를 비판하고 과학기술인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등 정치적 의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마이크를 잡고 연단에 서거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돌며 행진했다.

■ “기초연구비 증액‧연구개발 지원제도 개선”=행진에 참여한 중견 과학기술자들은 공통적으로 연구개발(R&D) 정책의 개선을 요구했다. 대열 속에서 만난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앞서 작년 9월 호원경 서울의대 교수 등 40명과 함께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청원을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연구자 주도의 연구 방식,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연구가 더 늘어나야 한다”며 “R&D 예산의 효율성을 올리기 위해서는 연구자 창의성을 받쳐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서울에서 연구하는 물리학자라고 밝힌 한 남성도 R&D 정책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기획연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느낀다. 연구자 주도 연구비가 현행 2대 8 정도에서 6대 4 정도로 늘어나야 한다”며 “(실력에 따른) 연구비 격차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행 연구비 분배가 합리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적절히 배분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22일 '과학을 위한 행진' 전세계 공동집회가 열렸다. 과학버스킹이 끝나고 광화문광장을 도는 행진을 시작한 참가자들.(사진=김정현 기자)

 여성‧장애인 과기인 “사람들이 함께하는 사회로”=행진에 앞서 열린 과학 버스킹 ‘과학을 말하다’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여성은 출산 후 경력단절을 겪었던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육아휴직 기간은) 사회의 시계와 다르게 돌아간다. 기술변화는 빠르게 이뤄지고, 새로운 이슈가 등장한다”며 “육아휴직 2년이 끝나고 나면 프로그램 개발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이를 돌보느라 만족할 만큼 공부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지은경 포스텍 대학원생은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면 화장실이 학부 건물에 없어 다른 건물까지 다녀오는 여성 이공계 학생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 학과 층에도 화장실이 없었다. 넓은 대학에 생리대 자판기는 3, 4개 뿐이었다”며 “이름 석자가 아닌 여학생으로 정의되고, 여자는 어떻더라는 고정관념을 겪으며 대학을 포기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과학을 하는 사람은 안다. 과학은 100%가 아닌, 0.1%, 0.001%의 다양성을 만드는 학문이다”며 “우리 삶도 과학과 비슷하다. 성비가 불균형하거나 다양성 배제되는 상황에서는 (앞으로의 미래가) 고민된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마이크를 잡은 정현희 숭실대 교수(물리)는 장애인으로써 과학하는 것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정 교수는 “학회가 열리면 발표를 잘 하지 않는다. 높은 연단에 올라서기 힘들어 책상 앞에서 연구에만 매달렸다”며 “과학하는 사람이 함께하는 사회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분의 응원으로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었다”고 울먹였다.

이어 “앞으로 사회에 나와 (연구와 생활의) 노하우를 함께 나누고, 저 같이 불편한 사람도 함께 과학할 수 있다는 목소리 낼 것”이라며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과학은 " 이번 과학을 위한 행진 전세계 집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과학적 정책에 대한 항의 표시가 계기다. 피켓을 들고 있는 외국인 과학기술인 참가자들.(사진=김정현 기자)

한편 과학을 위한 행진 세계 동시 집회는 온라인에서 처음 기획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과학적 정책에 대한 항의 표시가 계기다. 앞서 3월 트럼프 행정부는 의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국방과 국토안보 예산을 증액하고 국립보건원(NIH) 17%, 환경보호청(EPA) 31% 삭감 등 과학기술계 예산을 대폭 깎아 전 세계 과학계의 우려를 샀다.

이번 과학을 위한 행진 서울 집회는 과학기술인 단체인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과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연총), 한국과학기자협회 등 14개 과학기술단체 후원으로 열렸다. 노석균 과실연 대표와 과학기술인 출신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도 행진에 함께했다. 한국에서는 서울과 부산에서 집회가 열렸다.

행사를 주도적으로 기획한 과실연 김승환 포스텍 교수(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는 “사람들이 과학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기회가 되었다. 더 큰 물결을 만들어낼 용기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 22일 전세계에서 동시에 열린 과학을 위한 행진 세계 동시 집회는 온라인에서 처음 기획됐다. '과학을 위한 행진' 본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집회 주최 현황 캡쳐에 따르면 집회는 세계 610곳에서 열렸다. 한국에서는 서울과 부산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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