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과학정책③] 연구개발 지원, 성과평가, 규제

“전략적 고민은 없이 전술적 확장만 하는 꼴” 평가도

[대선후보 과학정책①] 4차 산업혁명과 컨트롤타워
[대선후보 과학정책②] 인력 및 처우 개선
[대선후보 과학정책③] 연구개발 지원, 성과평가, 규제

▲ 5개 주요 정당의 과학기술정책특보는 연구개발(R&D) 정책을 두고 차별성을 부각하는 데 날을 세웠다. 25일 KAIST서 열린 ‘2017 대선캠프와의 과학정책대화’에서 각 후보의 정책을 설명하는 캠프 과학기술특보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사진=김정현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국가 R&D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R&D를 하나의 부처로 통합해야 한다”고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이 제안한 데 대해 꺼낸 첫 말이다. 지난달 25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2017 대선캠프와의 과학정책 대화’에 참여한 5개 주요 정당의 과학기술정책특보는 연구개발(R&D) 정책을 두고 차별성을 부각하는 데 각을 세웠다.

■ 끝없는 논쟁 R&D…연구자 자율이냐, 책무 강조냐 프레임 전쟁 = R&D 정책은 현재 19조에 달하는 연구비와 인프라의 자원 배분 정책이다. 2014년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R&D 투자수준이 OECD 국가 중 1위(2012년 GDP의 4.4%)면서 성과는 꼴찌 수준이다.

때문에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은 분석 자료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과학기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소통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평가, 감사 체계, 조직 개편 중심의 논의에서 벗어나 한국사회가 현재 과학에 대해 합의된 입장은 무엇이며, 국가와 과학의 계약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효율적인 R&D 정책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프레임은 둘로 나뉜다. 과학기술인의 자율이냐, 책무성과 국가의 책임이냐다.

자율성을 내세운건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다.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은 관리부처 일원화를 내세웠다. 독일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같이 강력한 과학기술 부처를 통해 필요한 곳에 예산을 배정하겠다는 구상이다. 자유한국당은 가칭 국가연구개발경쟁력강화법을 통해 프로그램 매니저(PM) 주도 R&D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은 “지원액이 19조가 넘는데도 실효성이 없다.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면 부처별 실링(Ceiling, 천장)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처음부터 돈을 나눠서 이건 보건복지부, 과학기술부 것으로 두는 게 문제다. 부처별로 관리되는 과제의 기획, 선정, 관리, 평가 업무를 일원화하겠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기초연구예산을 50% 인상할 계획도 밝혔다.

▲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사진=김정현 기자)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각 정권마다 컨트롤을 너무 잘하려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자유한국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정부는 시대적으로 국가가 어디 몰입하고, 먹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큰 틀에서의 플랫폼 판을 만들게 하겠다”면 “물론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기초과학의 기준을 잡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 정부 중심의 의결 구조 개편을 공약했다. 동시에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정책을 강조하며, 그간 소수자로 분류돼 왔던 청년, 여성, 박사후연구원(포닥), 신진, 중소기업 및 지역 과학자에게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관료책임, 부처통합론에도 반대했다.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장을 잘 아는 관료가 현장을 잘 지원하는 체제를 갖추고, 이견을 조정하고 협력하는 수평적 컨트롤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체제가 없어서 R&D가 잘 안 되는 게 아니다. 참여하는 사람, 실행과 운용에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 이성우 정의당 대전시당 위원장.

정의당은 부처별 이기주의와 관료제의 폐혜를 부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연구윤리문제를 감사하는 기구를 상설화하고 정부를 감시하기 위해 출연연의 민주성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과학기술계 현장 연구자와 소수자, 일반 시민까지 의결과정에 참여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제안했다.

이성우 정의당 대전시당 위원장은 “부처마다 연구관리 전문기관을 각각 갖고 있다. 전공 분야별로 크게 통합해 이해다툼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문제의) 핵심은 정부 관료의 문제로 모아진다. 관료들의 이해에 따라 기관이 생기거나 만들어지고, 정부가 바뀌어도 부처 이기주의에 따라 움직이는 정책이 많다”고 짚었다.
 

▲ 황영헌 바른정당 미방위 전문위원.

한편 바른정당은 파급력이 높은 거대과제에는 집중 투자하지만, 그 외의 국가 R&D는 최소화한다는 방향성을 내놓았다. 특히 특정 분야나 일부 집단보다 다수에게 차별없이 장기간에 걸쳐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내놓지 않았다.

황 위원은 “산업기술을 개발하는 R&D는 민간이 알아서 하는 게 맞다. AR, VR 같은 (4차산업혁명 관련) 기술은 한국이 후진국이고, 정부가 육성하는 게 맞겠지만, 지금은 많은 기업이 세계로 나가는 상황이다”며 “컨트롤타워는 다부처간에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을 조정하는, 쌓인 규제를 철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다양한 환경을 만드는 일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고 설명했다.

 

▲ 기초연구비, 연구자 자유공모 연구비 확대 및 성과평가제도 개선에는 모든 후보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각 당이 주안점을 두고 있는 R&D 정책 핵심 키워드는 차이가 두드러진다. 대선 후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표는 각 캠프 공약 및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자료를 종합한 것.

■ 공약분석 “자율과 책무의 균형을 둔 연구자 주도의 담론 형성 필요”=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공약 분석에 참여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안오성 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전 연구기획조정실장)은 “과학기술정책의 핵심 의제부터 뚜렷이 할 필요가 있다”며 세 가지 지점을 들었다. 

먼저 “책임을 하도급하는 구조”라는 표현을 쓰며 국가의 정책적 목표와 지표가 뚜렷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를 들었다. 이어 풀뿌리 연구의 결과를 국가사회 문제 해결과 사업화로 연결 짓는 파이프라인의 부실, 기존 행정관료 주도의 추격형 연구개발 프레임을 벗어나 전략적 위험 수용형 연구개발을 수행하기 위한 중간 에이전트의 미성숙 문제를 꼽았다.

안오성 전 실장은 OECD 분석 결과를 인용, “고질적인 R&D 투자전략의 문제로서 시설과 인프라 위주 투자 비중이 선진국 대비 2배 수준으로 높다. 시설과 인프라 투자는 무리한 예산 경쟁의 도구로 전용될 수도 있고, 위험 회피 중심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기초, 응용을 떠나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국민의당 공약에 나타난 자율성 강화를 두고 “기초과학을 중심으로 이미 상당부문 시도되었으나 실패한 이유에 대한 진단과 교훈을 간과하고 있다. 국가가 처한 위기 환경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하겠다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며 “기초-원천 연구비중을 50%로 늘리고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일견 긍정적이지만, 우리가 처한 R&D 부실의 구조적 문제 해법과는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유한국당 공약을 두고도 “식수용 댐 사업은 미래혁신전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PM을 강조한 면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여러 부처에서 오래전에 도입한 바 있는데, 그 실패한 이유에 대한 진단과 대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세 당의 공약은 상대적으로 "국가 전략 차원의 고민이 많이 보인다"고 호평하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안오성 전 실장은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적극 개입을 내세웠는데, 이러면 (중소기업 등) 작은 생태계가 소외되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사람도 보겠다고 한 점에서 밸런스를 두었다고 본다”며 “지난 정부의 위원회는 관료 위주, 저명인사, 대통령 위주로 되어서 실패한 것이다. 수직적 의결구조를 가능한 한 수평화하고, 학계 대표를 위원회 장으로 선임하거나 평의원제를 가능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오성 전 실장은 “국가 R&D의 핵심은 국가가 민간이 회피하려는 위험부문에 전략적으로 선행 투자하는 것이어야 하므로 현행과 같은 행정부처 주도, 민간 자율 및 감사 완화 모두 대안이 아니다. 민간에 권한을 이양하려면, 현장 리더십(중간 에이전트)이 강화되어 질적 향상이 가능해야 한다”며 “자율-책무 대립이 아니라 질적으로 국가혁신에 어떻게 도움이 되냐는 차원에서 연구자 중심의 주도적인 담론이 필요하다. 특히 감사를 모면하는 수준을 넘어 현장리더십이 자율적으로 높은 수준의 질적 혁신을 추구할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가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호원경 서울대 교수 등 연구자 40인이 작년 정부에 청원하며 쟁점으로 떠오른 연구자 주도 자유공모연구비와 순수기초연구비 확대에는 모든 과기특보가 화답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까지 2배로 늘리겠다고 하고 국민의당은 기초연구분야에 한해 중복과제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출연연구원(출연연) 등 공공연구기관의 성과 중심 평가를 유도한 연구과제 중심운영제(PBS)도 모든 정당이 전면 재검토하거나 개선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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