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은 작동 중…여전히 피해자 보호‧가해자 징계엔 한계

공론화와 진상 조사에서 2차 피해 발생하기도
“증거가 없어서” 징계 여부 불투명에 피해자 조사 포기
복잡한 행정 절차와 부족한 전담인력, 중재 단체 부재
징계 의결권자들의 왜곡된 성인식도 장애물로 작용

[한국대학신문 윤솔지‧김진희‧이지희‧장진희‧주현지 기자] 현재 우리 대학사회는 끊임없는 성폭력에 노출돼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공론화도 되지 않는 어두운 단면이다. 대학이라는 보수적인 체제 속에서 성(性)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하지만 감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에 각 대학은 약자인 피해자를 보호하고 학내 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폭력 신고 절차를 시행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신상이 노출되는 등의 2차 피해를 입기도 하고 증거 불충분으로 가해자의 징계가 무마되기도 한다. 복잡하고 긴 조사 절차와 전담인력의 부족, 피해자와 인권센터 간의 중재자 부재, 의사 결정권자의 왜곡된 성의식 문제도 제기된다.

■성폭력으로 병든 대학가…문제가 곪아 수면 위로= 경희대 A교수 제자 성추행은 작년 2월 피해자가 페이스북 페이지 ‘경희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린 제보로 인해 알려졌다. 그러나 A교수는 성추행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해당 학과 교수회는 학과 원로와 학장의 조언에 따라 학내 옴부즈맨(감사행정원)에 진상조사 서류를 보내는 것을 유보했다. 피해 학생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교수 징계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해 조사 중단을 요구한 상태다. A교수는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은 채 강단에 서 수업을 진행했다. 이후 교수회 측은 추가 조사를 요구했지만 역시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조사의 진전이 없었다.

대학원생 제자를 성폭행한 것으로 밝혀진 고려대 B교수는 피해자 학생의 신고 접수 후 양성평등센터의 징계 발의로 교원징계위원회에서 조사를 받고 파면 처분을 받았다.

 고려대 ‘고추밭’ 사건은 모 학과의 남학생들이 비공개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같은 학과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언어 성희롱과 몰카를 공유한 일이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자체적으로 피해자대책위원회를 꾸려 진상조사에 나섰다. 양성평등센터와도 협조했다. 허나 성희롱의 대상이 특정인이 아니라 포괄적인 집단 개념인데다가 가해자가 온라인에 익명으로 글을 올려 사법 처리는 불가능했다.

메신저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자행되는 성폭력도 심각하다. 동국대에서는 남학생들끼리 대화하는 채팅방에서 지속적으로 여학생을 성적으로 비하하거나 여성 혐오 발언을 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피해 학생들은 사건 공론화 후 임시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가해자들은 학내 인권센터에 제소돼 징계를 받을 예정이다. 성희롱 발언을 주도한 가해자 6명은 중징계 차원인 정학을 받고, 나머지 방관 학생들은 경징계를 받는다.

한국외대도 단톡방 성희롱 사건과 선후배 사이에서 일어난 성추행 문제가 대두됐다. 이 사건도 현재 교수와 총학생회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 진상조사위원회가 사건을 조사 중이다. 징계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일부 가해자가 군대에 있어 면대면 조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선배가 후배를 강제 추행한 사건은 검찰에 송치됐다. 피해자는 휴학을 했고 가해자는 아직 학교에 재학 중이다.

■‘신고 절차’ 성상담센터에 신고하고, 징계위원회가 별도 징계= 이처럼 각 대학마다 가해자가 받는 징계나 문제 해결 현황은 조금씩 달랐지만 학내 신고 절차는 대부분 비슷했다.

▲ (자료=경희대 성평등상담실 홈페이지)

피해자가 성상담센터에 피해 신고를 접수하면 비공개와 신상보호로 면담이 이뤄진다. 다음으로 대책위원회나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진상 조사가 시작된다. 징계 발의 이후에는 학내 상벌 위원회, 징계 위원회가 가해자의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진상 조사 과정에서는 해당 학과 운영위원회, 총학생회, 총여학생회, 교수회, 학내 행정감사기관 등의 다양한 객체들이 관여할 수 있다. 조사 중에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접근 금지를 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경기대의 경우는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가 구성된다. 성평등센터장이 위원장을 맡고 위원은 위원장 포함 7인 이내다. 위원 구성은 형평성을 위해 한 성의 비율이 70%를 넘지 않도록 한다. 위원회는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법적 구제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나 일부를 지원하기도 한다.

한국외대는 이번 사건 처리에 학교 차원의 징계 위원회는 꾸려지지 않았다. 대신 관련 학과 교수들이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고 학생회도 나름의 차원의 잔상조사위원회를 열어 진상 규명에 힘쓰고 있다. 이원화된 위원회가 상호 협조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증거 불충분‧2차 피해 발생에 조사 포기…왜곡된 성인식도 걸림돌= 학내 성폭력 신고 시스템은 구축된 상황이다. 하지만 학내 구성원들은 가해자가 징계를 받기까지 수순과 과정에 여러 부작용과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폭행과 단톡방 성희롱은 명확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지만 일순간에 벌어지는 언어, 신체 성희롱은 목격자가 증언하지 않는 이상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진상 조사도 어려워진다. 피해자가 부담감을 느끼고 아예 신고를 하지 않거나 도중에 조사를 포기한다.

경희대 성평등상담센터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피해자의 주장만 가지고 징계를 할 순 없다. 대학이 정식 수사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엄격한 조사가 불가능하다. 정황상 참작하는 부분도 있지만 증거가 없이는 더 내밀한 조사와 판단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C씨는 양성평등센터의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성폭력 문제에 있어 상담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실상은 센터 직원도 적고 성폭력 사안에 따라서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성인권침해는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되도록 신속히 해결해야 하는데 일처리가 느린 편”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총여학생회 측은 “진상 조사 중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일어나기도 한다”며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사과문을 게시한다거나 온라인상에서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피해자가 지칭되는 경우다. 워낙 비밀스럽게 조사가 진행되다보니 피해자 중 일부는 조사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학 총여학생회는 진상조사를 담당하는 전담기구와 학생 간의 중재 단체가 없다는 점을 소통의 한계점으로 꼽았다. 또 복잡하고 어려운 신고 절차, 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피해자가 진술을 반복해야 하는 구조, 1년 이내 성폭력 사건만 접수할 수 있는 규정도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성상담센터 직원들은 피해자를 1차적으로 마주하고 그들의 피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도 징계에 관여하지 못한다. 실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위원회에 소속된 보직교수”라며 “이들 중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 많다. 이들이 징계나 조사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학내 신고 시스템이 있어도 제대로 작동해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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