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 원광대 교수(의과대학 산본병원 소화기내과)
2016년 1월 다보스포럼의 주요 의제로 4차 산업혁명이 다뤄진 이후 이에 대한 논의들이 지속되고 있고 이번 대선에서도 주요 이슈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4차 혁명시대에는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유비쿼터스 인터넷, 빅데이터, 센서를 이용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3D 프린터, 자율 주행차, 로봇, 합성생물학 등의 혁신적인 기술이 도입되면서 일상생활의 파괴적인 변화를 가져와 인간의 삶이 완전히 다르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산업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기술은 사람의 유전자 정보에 바탕을 둔 분석기술과 유전자표지를 이용한 진단 기술 등이며 이러한 유전학 기술을 바탕으로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이 합성생물학과 접목되면 이식용 장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보스포럼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바이오산업과 의료계에서 인간의 유전자 연구와 대등하게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는 인간의 몸에 살고 있는 세균, 특히 장내 미생물총에 대한 연구다. 이처럼 인종 및 개인에 따른 특성을 알아내 진단과 치료에 적용하려는 노력들이 지속되고 있으며, 다양한 유산균 제제의 개발, 약물을 이용해 직접적으로 장내세균을 변동시키는 치료법과 함께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환자에게 이식해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바이오 및 의료 분야의 혁신적 기술의 발달로 인해 향후 환자의 진단, 치료 및 질병 예방을 각 개인의 특성에 맞추어 시행하는 개인 맞춤의학(Individualized Medicine) 혹은 정밀의학 (Precision medicine)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기술적 개발에 있어 성·젠더 차이를 생화학적, 생리적, 유전학적 및 행동방식 등의 수준에서 고려하지 않으면 기술의 질적인 측면에서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심지어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이용될 주요 기술들은 결국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할 기술이므로 인간의 근본적인 특성인 성·젠더 차이를 고려하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다른 기술보다도 바이오산업의 경우는 이러한 측면이 더욱 중요하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연구에서 성·젠더에 대한 고려나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무시되었지만 최근에는 자동차 공학이나 건축 분야 등 바이오 이외의 영역에서도 성·젠더 차이를 적용하고 있다. 의학 분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 이전부터 성·젠더 차이에 대한 이슈가 이미 주목을 받아왔고 젠더혁신(gender innovation)이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젠더혁신이란 성·젠더 분석을 통한 창조적인 능력을 연구에 도입하여 혁신적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성(sex)과 젠더(gender)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개념으로서 성은 생식기관이나 성염색체, 성호르몬 등과 연관된 생물학적 분류인 남성(male)과 여성(female)을 의미한다.
젠더는 사회적 태도나 행동방식에 따른 정형화된 성 정체성인 남성성(masculinity)과 여성성(femininity)의 분류이다. 특히 바이오 분야와 같은 기초 연구 분야는 최종 상용화 단계에 필요한 기초 정보를 생산해내는 시기이므로 이 단계에서 성·젠더의 고려가 없다면 최종단계에서 매우 왜곡된 상품이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오히려 인간에게 해가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과거 신약의 임상시험 과정에서 남성의 신체를 표준으로 이용하던 관행에 의해 남녀 간의 차이가 반영되지 않으면서 여성이 더 부작용을 많이 겪었던 경우를 들 수 있다.
한 보고에 따르면 1997년에서 2000년 사이에 부작용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10개의 약물 중 8개가 남녀 간의 부작용 차이를 보였다. 이 약제들의 부작용 발생 빈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성과 젠더의 차이가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남녀 모두 똑같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다가 부작용이 여성에게 더 흔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 4개였고, 남녀 간 부작용 발생비율이 비슷함에도 여성이 훨씬 더 부작용을 많이 겪게 된 것이 4개였다.
전자의 경우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생물학적인 이유로 부작용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되는 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가 비만약인 식욕 억제제이다. 실제 생물학적으로는 남녀 간의 부작용 발생빈도가 차이가 없지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는 날씬해야 한다는 사회적 선입견에 의해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식욕억제제를 더 많이 복용하게 됨으로써 부작용을 경험한 대부분의 환자들이 여성이었다는 젠더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 차이 문제는 전임상연구인 동물실험에서 더 문제가 되어왔다. 기초실험에서 암수 실험동물을 모두 사용하는 경우 실험비용이 두 배 이상 증가하게 될 뿐 아니라 암컷은 호르몬의 주기적 변화로 인해 결과가 일관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단점을 피하고자 하는 연구자의 의도로 인해 주로 수컷만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심지어 사용한 동물의 성을 밝히지 않는 연구도 많다. 최근에는 성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던 세포주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그 세포주의 기원 동물의 성에 따른 차이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바이오 분야의 기초 연구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그러므로 향후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전임상실험 결과의 정확성과 의미있는 해석을 위해 성 차이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이러한 분석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최근에는 약물의 부작용을 감소시키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약물유전체학(pharmacogenomics)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발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신기술에도 젠더혁신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보다 완벽한 결과를 얻는데 매우 중요하고 할 수 있다.
다보스포럼의 논의 과정에서도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여러 직종들이 영향을 받으면서 남녀 간의 불평등 격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와 유사하게 젠더혁명에서 강조되는 또 다른 이슈는 연구자 집단 내에서의 젠더 불균형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효과로 남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 분야는 전문화된 기술 인력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고, 단순 업무는 디지털화로 대체되면서 남녀 성비의 불균형에 따른 성별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질 위험이 있다.
미국 상무부의 보고에 따르면 2009년 전체 직업에서 여성의 비율이 48%인 것에 반해 STEM 분야에서는 24%로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는 훨씬 낮아 18%에 불과하다.
그나마 기술이나 컴퓨터과학 분야가 여성의 비율이 가장 낮은 것에 비해 보건 및 생명과학의 경우 여성의 비율이 높다. 흥미로운 점은 학부나 석사과정까지는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다가 박사학위 이상의 과정에서 급격히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사회적 여건의 문제와 기존 학계의 관습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은 연구자로서 그들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새로운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시기에 연구의 대상으로서 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 남녀의 균형을 잘 맞추는 젠더혁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향후 바이오산업에서 젠더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연구과정에서 성·젠더 차이를 반영한 분석과 연구 환경 내에서 젠더 균형의 확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만큼 이를 위해서는 국가, 학계 및 대학의 유기적인 협조와 전략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중에서도 연구자를 교육시켜 배출하고 또 활동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인 대학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학부에서부터 젠더혁신 교육을 강화하고 실천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 국가의 연구비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젠더혁신에 관심을 갖고 연구자들을 독려해야 한다. 미국 NIH는 현재 성을 하나의 독립적인 생물학적 변수로 강조하면서 기초 및 임상연구에서 반드시 성·젠더 분석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성·젠더 분석을 포함하는 연구는 필연적으로 그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과 보상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젠더혁신이라는 주제가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시기이므로 젠더혁신 분야에 우리만의 문화적 특성과 인종적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과거의 산업혁명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며 이것은 우리에게 기회인 동시에 위협일 수도 있다. 그 중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보와 연구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이오산업을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려면 정확성과 함께 인간 중심의 연구가 필요하며 이러한 과정에 젠더혁신이 필수요소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