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애 낳고 한 2주 쉬면 출근할 수 있잖아? 애는 업고라도 와. 내가 봐줄게.”

A대학 부총장의 장난 섞인 말에 임신 후기였던 B직원은 고개를 떨궜다. 곧 나올 아기를 반년이라도 키우고 복직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꺼내기 위해 만든 자리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큰 기대는 없었다. 육아휴직은 쓰지 않는 것이 이른바 이 대학의 관습이었던 터다. 결국 B직원은 아이를 작게 출산한 후 학교에서 나왔다. 이른바 ‘교직원’의 길을 포기하고 ‘일하지 않는 엄마’의 길을 택한 것이다.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대학이라지만 일부 중소 규모 대학의 상황은 다르다. 당장에 ‘대학의 위기’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일하는 엄마’와 ‘일하지 않는 엄마’의 갈림길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후자를 택하는 경우는 일부 ‘대학’에서도 흔한 모습이다.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점점 말을 잃어가는 30대 인물 ‘김지영’을 통해서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재현한 책 《82년생 김지영》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그려진다. 소설 속 김지영씨는 아이를 낳은 뒤 회사를 그만둔다. 온전히 ‘남’의 손에 맡길 수도, 그렇다고 내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소설 속 이야기이자 현실이기도 하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 ‘표심’을 흔든 핵심 의제 중 하나도 단연 ‘육아’ 정책이었다. 한 후보의 국·공립 병설유치원 건설 자제 발언이 여론조사 지지율 추이를 흔들 정도로 ‘부모’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밖에 나가서 돈은 벌어야 하는데 아이를 맡길 곳은 부족하다보니 후보 말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로 보육 대책을 갈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여성 경제참여율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출산·육아에 대한 국가와 사회적 책임을 높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국가가 팔을 걷어붙이고 아이들을 함께 키우겠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해법으로 내건 ‘국가책임보육’은 지금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을까.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여성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은 반갑다. 그러나 그 정책의 사각지대는 여전히 걱정되는 부분이다. 법으로 주어진 ‘육아휴직’도 ‘조직의 관습’을 우선하며 제공하지 않았던 A대학처럼 말이다. 어느 소속이든 ‘엄마’가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것은 더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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