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만명 과학기술인 집합체 …“사기를 진작하는 데 과총이 앞장설 것”

옆방서 지켜본 ‘알파고 쇼크’…“한국경제 위기 극복할 과학기술의 새 깃발 찾아야”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은 여성으로서 첫 과총 회장이다. 환경부 장관, 17대 국회의원 등을 거쳐 2013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직을 마치고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했지만, 여성 후배들의 부탁을 차마 뿌리칠 수 없어 과총 회장직을 맡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을 찾았을 때도 김명자 회장은 언론에 기고할 글을 쓰고, 회의 일정을 소화하려고 전화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삶의 좌우명으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꼽았다. 그는 “일하면서 즐겁다. 언제 어디서든 성실하게 일할 뿐”이라고 말했다.

- 과총 회장으로 선출된 지 1년, 취임 후 3개월에 접어든다. 과학기술계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첫 여성 과총 회장에 올랐다.

“취임 전 1년간 차기 회장으로서 전국을 돌며 600명에 가까운 과학기술계 인사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소통·융합·신뢰를 바탕으로 찾아가고 싶은 과총, 국민과 함께하는 과총, 프런티어 개척의 과총을 구현하고 싶다. 과총이 젊은 과학자들을 비롯한 회원 단체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자율적, 창의적으로 참여하는 거버넌스가 되기를 소망한다.”

- 과학기술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살리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과학기술계가 전에 비해 사기가 떨어져 있다. 어떻게 사기를 올릴것인지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4차 산업혁명 시점에서 과학기술계가 앞장서서 잘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어깨가 무겁다. 규제를 합리화하고, 연구개발 활동의 특성을 고려해 감사제도와 R&D 프로세스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과총이 과학기술 이슈정보센터, 과학기술 입법지원위원회, 청년 일자리네트워크 등을 신설해 각종 현안에 대한 해법을 찾아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한다.”

- 과학기술계 비정규직 문제가 성장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예전에 도입한 과학기술인 연금체계도 잘 뿌리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출연연에서 일하며 떠날 기회만 있으면 다 나간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사기가 떨어진 상태에서는 하드웨어 투자를 해도 뭐가 나올까. 두뇌 유출 상황이다. 여성도 힘들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게 특히 힘들다. 집중도를 요구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박사까지 해도 여성 비정규직이 40%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가 필요한 게 여성 과학기술인의 현실이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단절,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젊은 세대는 ‘슈퍼 우먼’이 아닌 일상적인 사람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바라고 있다.

“젊은 세대의 생각은 사회가 모성보호, 양육, 교육과 같은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 과학자는 경력단절의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왕성하게 연구 활동에 전념할 나이에 그런 고비를 맞고, 일단 공백이 생기면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렵다. 여성만의 문제로 여겨서는 안 된다. 과총은 남녀간 소통에 힘을 쏟을 목적으로 과학기술젠더네트워크를 신설, 운영하고 있다. 각종 현안에 대한 실질적 솔루션을 마련하면서 작은 부분부터 해소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찾아 변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정부는 그간 두뇌한국21(BK21),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사업 , 그리고 지금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IME)사업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지원을 했다. 그럼에도 현장은 나아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언급된 정부의 지원 정책은 주기가 짧아 정부가 바뀔 때마다 들쑥날쑥한 변화를 거쳐야 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처럼 1년마다 단기 실적 중심의 평가 시스템하에서는 장기적인 독창적 모험 연구는 설 자리가 없다. 연구책임자는 과제를 따는 데, 연구원들은 예산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데 시간을 바치고 있다. 우리 사회와 과학기술계는 두뇌유출, 이공계 혁신, 일자리 문제를 담론의 주요 의제로 포함시켜 진지하게 논의하고 대처해야 한다.”

-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대학정책도 그렇게 보는가.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규제를 푸는 것이라 생각한다. 발상을 전환해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촉진자의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이 격동기에 이리저리 얽혀서 규제를 많이 받는다.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표현이 조심스러우나, 대학이 자구적 회생을 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판단해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갈 길이 아닌가 보고 있다.”

- 취업이 되지 않는 분야도 있는 반면, 4차 산업혁명 분야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원하는 인재도 바뀌고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거시적으로는 교육 시스템과 정책이 바뀌어야 하고, 세밀하게는 학습방식과 부모의 교육 방침이 전환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질적 팽창보다 양적 팽창을 기록하고 있다. 상위 10개 대학 재학생 수는 그대로면서 하위권 대학 재학생 증가율은 계속 높다. 대학 자체에 의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이뤄질 수 있다면 질적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결국은 대학의 자율성 확대가 답이 아닐까.”

- 산업 현장에서는 산학협력이 잘 되지 않는 이유로 대학과의 기술 미스매치를 꼽는다. 대학과 사회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2014년에 지난 10년간 세계 500대 대학에 든 한국의 대학 수는 2개 늘어 10개다. 반면 중국은 13개에서 37개로 늘어났다. 대학의 성장에서도 중국의 성장세가 무섭다. 칭화대, 베이징대 부근에 창업 카페가 무수히 생기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 먹거리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와 기업이 창업인재 육성 및 발굴에 대대적 지원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중국처럼 대학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앞선 기술에 투자가 연결돼야 한다. 정부는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제거해야 하고, 기업이 필요한 인재가 대학에서 육성돼야 한다.”

- 지난 대선에서도 4차 산업혁명이 주요 이슈였다.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꼽는다면.

“작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바로 옆방에서 지켜봤다. 국민들도 인공지능의 위력에 대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관심이 뜨거웠다. 일각에서는 이것을 거품이라 이야기하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위기국면에 빠져있는 지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깃발을 찾아야 한다. ICT(정보통신기술) 등 우리에게도 괜찮은 지표들이 꽤 있다.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 새 정부가 출범을 했고 가장 중요한 게 일자리다. 그런 데 있어서 깃발을 만들 수 있다면 계속 이어갈 수 있다고 본다.”

- 과학기술 거버넌스에 대해서도 과학계의 관심이 높고 입장차도 엿보인다.

“미래부를 만들 때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과학기술 거버넌스가 바뀐다. 좋은 취지로 바꾼다고 해도 화학적인 결합이 일어나고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인위적으로 합쳤다 해체했다 하는 게 행정 비효율을 낳을 가능성이 많다. 인선도 중요하다. 어떤 경험을 갖춘 사람이 리더가 되느냐에 따라 미래로 가는 방향과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 거대과학과 응용과학, 중간의 R&D 배정을 놓고도 민감하다. 과총이 생각하는 방향성은.

“나도 바텀업(상향식)을 강조한다. R&D의 성과를 SCI급 논문으로 등재하는 것만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들에게 어떻게 경제적으로 안겨준 게 있느냐가 중요하다. 장롱특허가 90%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녹색기술, 유전자가위도 그렇다. 미국과 더불어 최전선에 있는 기술인데 상용화, 기술이전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신문고를 만들어서 왜 안 되는지 맞춤형 솔루션을 찾아보자. 현장 규제가 어떻게 앞길을 막는지 실전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 끝으로 과총 회장으로서 정부와 대학에 제언이 있다면.

“사회적 현안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과학정책, 대학교육 혁신을 위한 골든타임이 지나고 있다. 고속 압축성장의 신화를 쓴 한국 과학기술의 추격형 전략은 한계에 부딪혔다. 그간의 혁신 시도가 무색하게 생태계는 바뀌지 않았다. 민관이 서로 불신하며 컨센서스 형성과 실행력이 모두 못 미쳤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접근만이 아닌 사회문화적 차원을 포함하는 통합적 시각이 필요하다. 여전히 국가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있다. 산학연정 모두 함께 미래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 대한민국의 새 시대를 열어가길 기대한다.”

■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서울 출생. 1966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1999년까지 숙명여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국민의 정부 시기 1997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등을 역임한 것을 계기로 입각, 1999년부터 환경부 장관을 44개월간 지내며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작년 3월 여성으로서 첫 과총 회장으로 선출돼 지난 2월 말 취임했다.

<대담=김석준 부회장 겸 발행인 / 정리=김정현 기자 / 사진·영상=한명섭 사진부장, 이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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