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은 '학점 인플레'는 필기 전형을 폐지한 기업들이 대체로 응시자의 성실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평균점 이상의 학점'을 은근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 특히 현대그룹 등 일부 기업에서는 자사 서류전형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대학 전학년 평균 평점을 공공연히 제시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무리 '톡톡 튀는' 신세대적 경향이 중시되는 추세라 하더라도 최소한 B학 점은 돼야 서류전형에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고학년이 될수록 시험성적이나 출결상황, 리포트 등을 통한 정당한 평가보다는 가능한한 높은 학점을 주는 소위 '꽃가루 학점'이 최근 대학가에 만연되고 있어 새로운 문제 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빈자리가 훨씬 더 많은 4학년 강의실은 이제 우리에게 아주 낯익 은 풍경. 또 평점도 전반적으로 상향 조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D대 국문과의 경우 지난 학기 한 전공선택 수업에서 A+를 받은 학생이 전체의 20%에 이르는 것으로 집 계됐으며 두명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 C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또 수강인원이 50여명이었던 K대의 한 교양선택 수업에서는 전원이 B 이상의 학점을 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 다.
졸업생들의 평균 평점도 자연스럽게 높아지기 마련. S대 언어학과는 92년 졸업생들의 평 균 평점이 3.2에서 올해에는 3.4점으로 뛰어올랐다. K대 재료공학과는 지난 92년 재학생들의 평점이 2.65였으나 지난 학기에는 3.23점을 기록했다. 지난 7월 제주대에서는 교내 전자계산소 메인 컴퓨터를 해킹, 자신의 성적을 상향 조작한 학생이 적발되기도 했다.
학점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평가를 담당하는 교수나 시험 감독을 하게 되는 조교들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우선 특정 학점 등급이 일정 비율을 차지하도록 조정하 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방식으로 학점이 매겨지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비율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대다수 교수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출석일수가 부족하거나 시험성적이 기준에 미달되는 학생의 경우 졸업이나 취업에 지장을 받을 것을 알면서 낮은 학점을 주기도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하소연이다. 시험 감독에서 부정행위를 적발할 수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조교들도 비슷한 곤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대 등 일부 대학에서는 교양과목의 경우 B등급 이상이 수강생의 50%를 넘지 않도록 하는 상대평가 방식을 도입하 는 등 형평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처럼 학점 평가가 부실하게 이뤄지는 사례는 계절학기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1~2주일의 단기간에 한학기 분량의 강의가 이뤄짐에 따라 수업 진행 측면에서도 수업시간 단축 등 각종 편법이 동원되기 마련. 평가도 출결상황 등에서 정규 수업보다 관대한 경우가 많아 '학 점 세탁소' 구실 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계절학기 수강생들의 경험담이다. '취업률 제고'와 '대학다운 평가'의 조화. 이제 우리 대학은 또 하나의 숙제에 맞부닥뜨린 셈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