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팀, 소낭 이용하지 않는 물질 이동 기전 밝혀내

▲ 왼쪽부터 연구책임자 이창욱 UNIST 교수, 전영수 GIST 교수, 공동 1저자 정한빈·박주미·김혜인 UNIST 대학원생.

연구팀 “밝혀지지 않은 세포 내 물질 수송 교통망 지도 그리고자 한다”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세포가 기존에 알려진 소낭(Vesicle, 소포)이 아닌 복합 단백질을 이용해 소기관끼리 직접 물질을 수송하는 구체적 방법을 국내 연구진이 처음 밝혀냈다. 효모를 이용해 기전을 규명한 연구팀은 생명의 신비를 규명하는 데 한 발 더 나아갈 것은 물론, 인간의 것과 그 형성 양상이 비슷하므로 관련 난치병 치료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 정무영)은 7일 이창욱 UNIST 교수(생명과학), 전영수 GIST 교수(생명과학) 공동연구팀이 진핵세포에서 복합 단백질을 활용해 일어나는 세포소기관 간 물질교환 경로의 기전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진핵세포는 세포막을 갖는 세포소기관을 갖는 세포를 말하며, 고세균과 세균을 제외한 생물의 세포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세포는 역동적인 우주와도 같다. 수많은 소기관이 외부 환경에 대응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물질을 수송한다. 그동안은 세포가 생명 활동에 필요한 물질을 옮길 때 소낭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소낭은 적어도 한 겹의 세포막을 가지며 독립된 영역을 갖는 세포소기관이다. 세포의 생산물, 부산물을 저장하고 운송하거나 독성 물질을 소화한다. 세포소기관 또는 세포 자체의 세포막이 신호를 받고 물질을 감싸 포장하면서 소낭이 만들어진다. 이를 종합적으로 연구한 것이 소낭에 대한 물질이동 경로 이론이며, 201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한 규격의 박스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듯, 세포에는 소낭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물질 수송도 일어난다. 가령 소낭을 주고받지 않는 미토콘드리아의 물질교환과 소낭에 담기 힘든 콜라겐과 같은 큰 단백질의 수송이 있다. 연구팀은 인간과 같은 진핵세포 모델 생물인 효모를 이용해 의문을 풀고자 했다.

▲ 효모세포의 세포소기관인 핵과 리소좀을 직접 연결하는 막접촉점 모식도. 핵과 리소좀막을 연결하는 막접촉점을 보여주는 세포 사진 (왼쪽 위)과 X-ray 결정법에 의해서 얻어진 Vac8p-Nvj1p 복합체 3차원 구조 모식도(아래), Nvj1p-Vac8p 단백질 복합체의 초고해상도 3차원 구조와 두 단백질 특정 아미노산 사이의 분자 간 결합 사진(오른쪽). (사진=한국연구재단 제공)

연구팀은 효모 세포에서 핵과 청소부 역할을 하는 세포소기관인 리소좀 사이의 막접촉점에서 핵-소강 연결(NVJ, Nucleus-Vacuole Junction)을 이룬다고 알려진 Nvj1p 단백질, Vac8p 단백질의 복합체를 연구했다. NVJ는 효모가 영양분이 부족할 때, 리소좀이 핵의 일부분을 분해하고 영양분을 획득하는 자가포식(Autophagy)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 기존에 알려져 있었다.

연구팀은 먼저 두 단백질이 어떻게 복합체를 이루는지 그 3차원 구조를 X-선 결정구조 연구를 시작했다. 단백질의 단일 결정을 얻는 것이 쉽지 않은 연구다보니 생화학적 성질을 분석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 핵과 리소좀 막접촉점 형성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모식도. 핵막과 소포체막에 연결된 Nvj1p 단백질과, 리소좀막에 연결된 Vac8p 단백질이 직접 결합하여 두 소기관 사이의 막접촉점을 형성한다.(사진=한국연구재단 제공)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효모의 이 단백질 복합체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또 어떻게 NVJ를 만들어 핵-리소좀을 연결하는지 그 기전을 규명했다. 핵막과 소포체막에 연결된 Nvj1p 단백질 끝과 리소좀막의 Vac8p 단백질이 결합해 복합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실제로 연결에 필요한 것으로 나타난 단백질을 세포가 만들지 못하게 돌연변이를 시켰더니 NVJ가 형성되지 않는 것도 확인했다.

연구책임자 이창욱 UNIST 교수는 "단백질을 통해서 물질을 수송한다기보다, 정확히는 세포 소기관과 소기관이 직접 만나서 막접촉점을 만드는 과정에 단백질 복합체가 다리(Bridge) 역할을 한다는 표현이 정확한 것이다. 두 소기관이 직접 접촉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며 "두 단백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합하는지 그 구조적 기전을 밝힌 데 의의가 있다. 돌연변이(Mutation)을 통해 물질의 이동 여부도 확인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번 성과는 인간과 동일한 진핵세포인 효모에서 밝혀진 성과로서 인간의 세포 물질수송 기전을 규명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물질 이동의 결함으로 발생하는 희귀 질병 치료에도 기여할 것으로 연구팀은 전망하고 있다.

▲ Vac8p 정상 단백질과 돌연변이 단백질이 NVJ 막접촉점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실험영상. Vac8p 정상 단백질이 발현되는 세포에서는 NVJ가 잘 형성되지만(왼쪽), Nvj1p 단백질과 상호작용을 하는 아미노산을 돌연변이 시킨 Vac8p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세포에서는 NVJ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오른쪽). Vac8p 단백질이 존재하는 리소좀이 붉은색으로, Nvj1p 단백질은 녹색형광으로 표지되었다.(사진=한국연구재단 제공)

연구팀은 향후 다른 막접촉점에 대해서 그 기전을 규명하는 연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포의 물질 수송 기전들도 규명해 내 진핵세포의 교통망 지도를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공동연구책임자 전영수 GIST 교수는 “사업에 선정되면서 작년부터 한국연구재단 과학연구센터(SRC)를 열고 집단 연구를 시작했다. 이 논문은 핵과 리소좀 간의 막접촉점에 대한 연구로, SRC에서는 세포 내 모든 소기관의 상호작용을 보고 있다”며 “향후 계획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안 알려진 세포의 교통망 지도를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창욱 교수도 "세포 안에는 리소좀과 핵 외에도 미토콘드리아 등 수많은 소기관이 있다. 다른 소기관들 사이에서도 막접촉점을 형성해서 물질교환이 일어나며 이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미래부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지원사업(개인‧집단)과 교육부의 이공학개인기초연구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과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 학술지 미국과학학술원회보(PNAS)에 24일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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