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부정 잇따르는 대학가, 자체 조사 지연‧공정성 놓고 구성원 의심 계속

▲ 연구부정이 잇따르지만 연구진실성위원회가 대학 구성원의 신뢰를 잃으면서 학문사회의 절망감과 갈등이 커져만 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달 서울대 중앙도서관 복도에 붙은 논문표절 고발 대자보를 보는 학생들.(사진=김정현 기자)

정부 행정규칙‧대학 규정 계속 강화됐으나 반복되는 불신
“가급적 빠른 시일 내 조사해야 증거 인멸‧제보자 신원유출 방지 가능”

[한국대학신문 김정현‧주현지 기자] 대학의 연구부정 사건을 조사하는 자체기구인 연구진실성위원회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 데이터 조작으로 논문이 철회되거나, 대학원생이 대자보를 써서 표절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하지만 조사의 공정성에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지난달 본지가 보도한 이 대학 재료공학부 주승기 교수와 대학원생 A씨가 연루된 표절 문제도 아직 조사 중이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핵심 관계자는 “조사가 끝났다는 보도는 잘못이며, 대단히 신중하게 조사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한 연구자들은 “서울대는 정녕 그냥 지나갑니까?”는 제목으로 글을 게재하는 등 대학의 공식적인 조사 절차에 불신감을 드러냈다.

연구부정은 대학가 전체의 고질병이다. 김선우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땜질 처방만 되풀이 되고 있다”며 “이런 일이 워낙 비일비재하나 조사는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학교에게 자율적으로 맡겼을 때에는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학원생 시절 강요를 받고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교수 수 명을 공저자로 기재했다”고 제보해 온 서울 소재 모 대학의 B교수는 “이 분야 교수들은 바쁘지만 논문은 필요하니 쉽사리 자기합리화를 한다. 연구를 하지 않아도 3년 뒤 공동 논문이 5편까지 불어난다”며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소집되는 면면을 듣고 보면 전부 옆방 동료다. 겁을 먹어서 제보 자체를 할 수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대학가에 자체 연구진실성위원회 기구가 생겨난 것은 2005년 말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이 계기가 됐다. 정부는 2007년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행정규칙을 제정했다. 이 규칙 6조에 따라 대학에 자체 규정과 관련 위원회 마련은 의무사항이 됐다. 이인재 서울교대 교수의 저서 《연구윤리의 이해와 실천》에 따르면 위원회를 설치한 대학은 2014년 기준 149개다.

또 이 규칙에 따라 대학에서 연구부정행위를 검증할 때는 반드시 본조사 실시를 결정하기 전 예비조사가 이뤄져야 하며 예비조사는 제보 접수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열려야 한다. 대학이 자체 규정을 마련할 경우 △자체조사 절차 및 기간 △위원회 구성 및 운영원칙 △제보자 및 피조사자 보호방안을 명시하도록 했다. 피조사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의혹이 판정되기 전까지는 외부에 조사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제보자가 제보로 인해 불이익을 받거나 신원이 노출될 경우 책임이 대학에 있다는 것도 명시됐다.

서울대는 위원회를 만들고 나서도 연구부정 행위가 끊이지 않자, 2013년 10월 관련 규정을 수정했다. 이에 위원회는 연구부정이 의심되는 교수의 증거 인멸 방지를 위해 총장에게 연구실 압수수색과 폐쇄를 요청할 수 있다. 정부도 2014년과 2015년 지침을 고치는 등 규정을 구체화하고 강화했다.

대학가 연구진실성위원회 위원에 따르면 대부분 대학에서 조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해 본조사 참여 인사 중 외부 인사를 30% 이상 포함시키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법률전문가를 함께 포함시켜 법적 자문을 담당하게 하는 대학도 있다.

김정호 KAIST 연구처장은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 및 경험이 풍부한 자를 조사위원 총 수의 2분의 1 이상 포함하며, 외부 인사를 조사위원 수의 10분의 3 이상 위촉한다”며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본조사 착수 이전에 제보자에게 조사위원 명단을 알린다. 제보자가 조사위원 기피에 관한 정당한 이의를 제기할 경우 이를 수용할 수 있으며, 당해 조사 사안과 이해갈등 관계가 있는 자를 조사위원회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위원회가 진실을 덮는다는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비판적인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위원회가 제보 접수 직후 시간을 끌면서 사건을 덮으려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부정을 저지른 교수가 학내에 쉽게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온정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대 연구진실성위원회 위원인 김창일 교무처장은 “중앙대는 제보 접수 직후 1주일 이내에 연구윤리위원회를 소집한다. 가급적 짧은 시간에 조사가 돼야지 늦어지면 제보자에 대한 정보가 유출되고 증거도 인멸될 수 있다”며 “만약 규정상에 (소집 기한이) 명기되지 않아 개최가 지연된다면 명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학계의 자정 능력이 전무해 연구 부정이 반복된다고 입을 모았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연구 부정이 반복되는 이유로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했다. 우 교수는 “1년 단위 평가에서 반영되는 논문의 수가 곧 명예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의 욕망과 맞물렸을 때 연구부정 사건들이 발생한다”며 “황우석 박사 사건 이후 윤리위원회가 생기고 관련 지침도 강화됐지만 사실상 징계를 받고도 학계에서 퇴출되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학계의 자정능력이 전무하기 때문에 연구 부정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인재 서울교대 교수는 “연구윤리위원회가 어떤 사안에 대해 검증을 할 때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거나 조사를 하더라도 제 식구 감싸기식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며 “또 연구 부정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과 검증을 균형있게 해야 하는데 검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와 국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3월 교육공무원법 상의 징계 시효를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제보자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진로 문제로 연구부정 신고를 못하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고발하려고 보니 징계시효로 인해 고발을 못하는 사례가 있다. 당시에는 여러 문제로 고발하지 못해도 진실을 알기 위해 처벌하게 하려는 취지다"고 설명했다.

이우창 서울대 대학원 총학생회 고등교육전문위원은 “조사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대학원생들의 교육권을 어떻게 보장하느냐의 문제도 들어가야 한다. 연구는 공적인 문제다. 제자들과 연구 사업을 함께하던 외부 사람들은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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