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 활동가’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이명박 정부 이후 정권이 바뀌었다면 백남기 농민과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똑같은 정권이 들어오면서 경찰도 점차 폭력에 무뎌진 것이죠.”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숨진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15일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집회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사망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계기가 생긴 것이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문재인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상을 격상했고, 경찰도 이에 발맞춰 ‘인권 경찰’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시민들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진)는 지난 달 30일에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피켓을 들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교수가 단장으로 있는 참여연대 ‘집회시위 자유 확보 사업단(집회자유사업단)’ 활동의 일환이다.

“참여한지는 1년이 넘었어요. 가장 큰 계기는 2015년 11월에 있었던 민중총궐기 백남기 농민 사건이 결정적이었죠. 그동안 참여연대에서 일을 많이 했었고, 나름 시위와 관련해 글도 많이 써왔어요. 특히 현재의 정치에서 국가권력이 국가폭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장이 대규모 집회이기 때문에 그걸 없애야 한다는 데 공감했던 거죠.”

집회자유사업단의 궁극적인 목표는 집시법 11조와 12조의 개정이다. 주요 기관의 경계에서 1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한 11조와 교통 소통을 이유로 집회를 제한할 수 있는 12조를 독소조항이라고 본다. 최근 인권위 격상과 더불어 경찰도 집회와 시위 활동에 자유를 주겠다고 나섰지만 한 교수는 이 같은 경찰의 ‘선의’에 매우 회의적이다.

“경찰이 자유를 주겠다는 건 건방진 이야기예요.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헌법에 의해 보장된 것인데 경찰이 주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죠. 또 자유를 주겠다는 것은 정권이 바뀌면 또 다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거죠. 결국 한 인물의 의지보다 제도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2015년에는 경찰인권위원회에서 자문단 역할을 했고, 언론 기고와 SNS에서도 꾸준히 자신의 소신을 말하며 사회적 참여를 활발하게 해오고 있다. 연구와 후학 양성하기에도 바쁜 법학자를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이끄는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다른 학문은 몰라도 법학은 사회참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법은 철저하게 현실의 학문이자 나라의 학문이거든요. 내가 공부한 것이 그 자체로 사회 변화를 야기하거나 발전을 야기하지 않는 법학이라면 무의미 한 것이죠.” 대학원에서 지도교수에게 잡혀 법사회학을 공부하게 됐다는 농담조의 시작과는 다르게 진지한 법학자로서의 소회가 이어졌다.

“제 연구논문을 보면 거의 대부분 활동가들의 요구사항을 글로 옮긴 겁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기 때문에 어떻게 고치면 된다는 것도 눈에 보이죠. 그게 참 재밌어요. 이걸 학술이냐 아니냐 판단하기 전에 적어도 운동 차원에서 제기됐던 열정들을 하나의 논리 틀 속에서 가공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이렇듯 인권에 천착하게 된 데에는 유년시절 읽었던 《전태일 평전》속 ‘나에게도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구절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1987년 체제가 들어서고 난 뒤에도 대중의 삶이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데서 인권의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법학은 현실의 학문’이라는 그의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연구하는 활동가’ 이전에 본연의 자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단이다. 그런 그가 법학자로서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가치는 ‘흔들림’이다. “저는 학생들에게 ‘비틀거리면서 결정하라, 머뭇거리면서 결정하라’고 얘기합니다. 법이라는 것은 직선적이고 단순사고구조를 요구하죠. 하지만 사실 인간이 하나의 행동을 하는 것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작동한다는 의미이거든요. 그래서 가능하면 머뭇거리고 비틀거리면서 결정을 유예하라고 얘기하죠.”

냉철하고 흔들림 없는 판단을 요구하는 법조인들에게 ‘비틀거리라’는 그의 주문에서는 의외성이 묻어났다. “학생들이 잘 들을지는 모르겠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모습에서 인권과 인간을 강조하는 한 교수의 사람 냄새가 짙게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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