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커제 대결 이후, 명지대 바둑학과·세한대 바둑전공에게 길을 묻다

컴퓨터 바둑 등 관련 과목 개설…“여전히 인문학적 가치와 철학이 우선”

▲ 명지대 바둑학과 학술대회에 참가한 명지대 학생이 외국인과 친선대국을 펼치고 있다. (사진=김진환 명지대 바둑학과장 제공)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지난해 세계 최강의 바둑 기사였던 이세돌 9단에 이어 올해는 세계 바둑 랭킹 1위 커제까지 알파고에게 완패해 화제가 됐다.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과 동시에 바둑에 대한 미래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 프로바둑기사가 아닌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바둑학을 운영 중인 명지대와 세한대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변화하고 있다.

■ 학문적 바둑 연구 ‘바둑학’ 딱 2곳, 명지대·세한대 = 전국에서 바둑학을 전공으로 두고 있는 대학은 두 곳이다. 주인공은 명지대와 세한대. 명지대는 세계 최초로 바둑학과를 개설해 20년간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한 곳은 생활체육학과 안에 바둑학을 전공으로 두고 있는 세한대다.

이들은 바둑 프로기사를 양성하는 기관인 바둑도장이나 전문기사들의 기예를 향상시키기 위한 한국기원과는 다르다. 두 대학은 바둑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바둑 연구원이나 관련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무게를 둔다는 이야기다.

명지대·세한대는 전통적으로 기술적인 측면만을 강조해온 바둑계에 더욱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접근 방법에 의한 바둑 연구를 진행할 인재를 기르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두 대학이 배출한 졸업생들은 바둑 보급을 위한 지도자와 바둑 수학·통계 등에 대한 연구원, 바둑 연계 상품화에 주력하는 산업체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이런 특징은 졸업생의 진로를 살펴보면 더웃 뚜렷하다. 이 대학을 졸업한 졸업생 A씨는 바둑을 즐기는 S그룹 회장의 직장인 바둑 대회 준비를 돕기 위해 채용됐다가 탁월한 문제해결능력을 인정받아 기획실에서 근무하게 됐다.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게 웹툰 원작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다.

바둑학과에서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한 학생이 CPA에 합격해 국내 최대인 삼일회계법인에 취직한 사례도 있다. 세한대의 경우에도 바둑 보급을 위한 지도자와 바둑 연구원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프로바둑기사가 아닌 사회 인력을 배출하는 두 대학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특히 강하게 다가왔다. 사회는 미래 시대에 맞춰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걸맞은 인적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대학에서도 변화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 강의 ‘컴퓨터와 바둑’ 내용, 미래 시대에 맞게 손봐 = 두 대학은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기 위해 서둘러 강의를 보완하고 교수진도 보충하는 등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학과 신설 20주년을 맞은 명지대 바둑학과는 2000년대부터 ‘컴퓨터와 바둑’이라는 강의를 개설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당시에는 인터넷 등 컴퓨터 관련 기술이 지금처럼 완전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 내용이 바둑 프로그램 편집 등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컴퓨터와 바둑’이 교육과정에서 사라진 때도 있었다. 기기친화적인 세대가 입학하고 있었지만, 교육 내용은 과거에 머물러 있어 효과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알파고의 등장은 변화의 기폭제가 됐다. 명지대는 ‘컴퓨터와 바둑’ 교육 과정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수정하고 인공지능에 대한 전문 교수를 강의에 투입했다. 인공지능 등 바둑 이외의 기술에 생소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눈높이와 기술 능력을 고려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바둑학과 부학생회장인 안태원씨는 “생소하고 추상적인 기술과 이론을 공부한다고 생각했다”며 “내면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강의에서 배우는 개념들을 바둑과 연결시키는 연습을 하면서 성취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한대는 더욱 파격적이다. 바둑학 전공 교수들을 가진 명지대와 달리 세한대는 인공지능 분야의 전문가를 전공교수로 삼았다. 이병두 생활체육학과 교수는 공학박사로 컴퓨터공학에서 인공지능 바둑을 전공했다. 지난 2011년에는 인공지능 바둑과 관련된 책도 출간한 이 분야의 선두 주자다. 세한대 역시 ‘컴퓨터와 바둑’이라는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전달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 지난달 17일부터 양일간 명지대·세한대가 제9회 학술교류·친선 바둑대회를 세한대에서 실시했다. 두 학교는 해마다 정기 교류전을 갖고 있다. 맨오른쪽이 김진환 명지대 바둑학과장, 그 왼쪽 이병두 세한대 바둑학 전공교수.

■ 미래 기술 강조되지만 여전히 바둑의 가치는 ‘인문’ = 두 대학은 핵심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에 앞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철학을 먼저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두 교수는 학생들에게 인공지능 등 컴퓨터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바둑을 둘 때 큰 곳과 급한 곳이 있다면 급한 곳을 우선해야 한다는 만고의 원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알파고가 깨뜨린 것”이라며 “진실과 진리는 무너지고 있는데 인공지능을 또 하나의 원리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르다. 진일보된 기술의 변화를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연결·초지능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가치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병두 교수는 대학들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초연결과 초지능이라는 특징을 갖기 때문에 바둑학과 학생들도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배워야 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현재 교육 실정에서는 학과 내에서의 필요 과목 개설이나 학생 스스로의 복수 전공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간 교차 수강이 가능해져야 한다. 훌륭한 교수의 강의를 학교에 구애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통로를 마련해줘야 한다”며 “일류대와 이류대의 칸막이를 내려놓고 모든 대학들이 새로운 사회를 위한 공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김진환 명지대 바둑학과장의 주장도 이병두 교수와 맥을 같이 했다. 김진환 학과장 역시 교육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가치를 일깨워 주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바둑학과 학생들은 지식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일반 학생보다 한 수 아래인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어릴 때부터 수많은 수읽기 훈련을 통해 발달시켜온 수학 인지력과 문제 해결능력은 어떤 학생들보다 월등하다”고 했다.

김진환 학과장은 “결국 교수들의 임무는 잠재능력이 무한한 학생들에게 스스로 필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라며 “해마다 홍콩과 일본 등 해외 교류와 대만과 중국 우한 체육대학 등과 비교과 과정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넓은 시야와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해 학생들의 가능성을 열어주려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어 “소속 학과가 갖는 위상을 알려줘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며 “인문학적 가치인 다양성·자기주도·자존감 등을 가진 상태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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