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한양대 건양대 등…ODA에 대한 국가적 관심과 맞물려 활성화

개발도상국 주민들 수요 파악…대학생들 성공 사례도 많아

단순한 시혜적 의미를 넘어 현장중심 교육 효과 톡톡히 봐

[한국대학신문 장진희 기자]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 ‘착한 기술’, ‘36.5° 기술’…최근 대학가에서 따뜻한 기술로 알려진 적정기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적정기술은 해외 낙후 지역 등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의 어려움을 파악해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기술 방식이다. ‘적정기술’이라는 명칭도 단순한 기술 개발 이상을 넘어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학자들의 철학이 담긴 개념이다.

▲ 지난해 서울대 학생들이 방문해 빗물정화장치를 설치한 베트남 빈딘성 지역의 아이가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

■현지인 니즈 반영한 적정기술 적용 = 현재 서울대, 한양대, 건양대, 한밭대, 한동대 등은 적정기술 아카데미를 활발히 운영 중이다.

서울대는 2013년부터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네팔, 라오스 등지로 적정기술을 연구해 실제 적용시키는 프로그램인 ‘SNU공헌유랑단’을 파견해왔다. 지난해 서울대 적정기술 동아리 ‘VESS‘와 일반 지원자들로 구성된 유랑단은 베트남 빈딘성 지역 학교를 방문했다. 이들은 수질 상태가 열악한 학교에 ‘빗물정화장치’를 기획·설치해 학생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했다.

'SNU공헌유랑단‘ 프로그램은 철저한 사전 답사 및 교육을 통해 현지화 실패 확률을 낮추고 있다. 유랑단 학생들은 적게는 7회 많게는 9회까지 적정기술의 기본 개념, 기술 작동 방식 등을 관련학과 석ㆍ박사생들로부터 교육 받는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케냐에 방문해 백신이 더운 날씨에 상하지 않도록 하는 백신 냉장고를 개발해 보급할 예정이다.

건양대는 올해로 3회째 ‘KYU-NPIC 적정기술 캡스톤디자인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적정기술 관련 교과목을 수강한 학생들이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학생들은 어업에 종사하며 숙식을 보트에서 해결하는 아레앗삿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햇빛가리개와 이동형 화장실을 개발해 삶의 질을 개선시켰다.

한동대는 (사)나눔과 기술과 공동 주최해 ‘소외된 90%와 함께하는 창의융합설계 아카데미’를 운영해오고 있다. 한동대 학생들이 아니더라도 적정기술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지난해 진행된 9회 아카데미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캄보디아, 라오스, 네팔 등지에 설립한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를 기반으로 학생들이 해당 국가에 필요한 기술을 설계하는 단계까지 진행됐다. 아카데미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현지 적용 단계까지 나아간 사례도 있다.

참가 학생들은 네팔 주민들이 대나무로 만든 제품을 판매해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에 착안해 수공업으로 만드는 것보다 효율적인 ‘대나무 슬라이서(slicer)'를 구상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대인관계 개선을 위한 IT 기기, 의사소통으로 신원확인이 불가능한 청각장애인을 위한 초인종 등이 아카데미에서 논의됐다.

▲ 지난해 한동대가 개최한 '제9회 소외된 90%와 함께하는 창의융합설계 아카데미'에서 개발한 아이디어 작품 '대나무 슬라이서(slicer)'의 작동 원리. (사진제공 = 한동대 공학교육혁신센터)

■현지 연계 교육…예비공학자들에게 교육적 효과 톡톡 = 전문가들은 적정기술 교육이 활성화된 이유로 한국이 점차 선진국 반열에 오르면서, 공적개발원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을 꼽는다.

▲ 윤제용 적정기술학회장(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사진 = 장진희 기자)

윤제용 적정기술학회장(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은 “대학이 국제 사회 양극화 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학에서의 과학기술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고민하다보니 공익적인 적정기술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적정기술 교육이 대부분 현지와 연계해 적용하는 경험인 만큼 교육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는 호평도 나온다. 적정기술 교육은 원리를 직접 디자인하고 적용하면서 공학에 대한 흥미도를 높여, 수천만 명에게 기여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기 때문이다. 적정기술 교육이 단순히 시혜적 차원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윤제용 학회장은 “앞으로는 적정기술 교육이 대학에서 정규 교과목으로 확대될 여지가 크다”면서 “전공책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예측했다.

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 소속 이정현씨(해외사업팀 전문위원)는 대학가 적정기술 교육에 대해 “학교에서만 하던 고민들을 현실화 할 수 있는 기회”라며 “엔지니어(공급자)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수용자 위주의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구상했던 사업들이 실패한 사례가 많다"며 "현장에 가서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공학자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용석 건양대 공학교육혁신센터장(의료IT공학과 교수)도 현장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이 한 학기동안 적정기술 개발 수업을 들으며 완제품을 만들어 가도 현장에 가면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며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공학을 구현한다는 것이 엄청난 경험”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