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대학 노력으로는 부족… 제도·조직 법제화 필요

<1. 대학가, 권리장전·인권센터 설치 노력과 한계> 
<2. 이공계에서 다시 떠오르는 갈등조정자 '옴부즈퍼슨'>

▲ 지난 13일 연세대 공학관에서 발생한 텀블러 폭발 사고를 조사하기 위해 경찰 특공대와 탐지견이 투입되고 있다.(사진=이하은 기자)

[한국대학신문 이하은·장진희 기자]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을 계기로 대학원생 인권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대학원생의 인권 침해를 예방하려는 흐름도 본격화되고 있다.

연세대는 사건 직후 김용학 총장 지시로 TF를 꾸려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포함해 고충처리 상담제도 보완 등을 논의했다. 부총장급인 일반대학원장 겸 연구본부장이 책임자로 임명돼 사태 수습의 의지를 보였다.

■ 대학원생 인권침해 심각…대학 인권 강화 흐름= 서강대는 지난 15일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제정해 대학원생의 인권보장과 건전한 연구문화를 정착할 것을 다짐했다. 이 대학 대학원생도 권리장전을 시작으로 인권센터나 인권위원회를 세울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종구 서강대 총장은 “권리장전은 새로운 세대들이 기성세대에게 드디어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이화여대는 김혜숙 총장의 공약이기도 했던 학생인권센터 설치와 권리장전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혜숙 총장은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주변에서 지도교수에 대한 불평을 듣는 경우가 있어 같은 교수로서 민망했다”며 “제3자의 관점에서 문제를 조정하고 갈등을 이완하는 완충지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간지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중간에서 소통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중간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 입장에서도 문제가 곪기 전에 예방하고 조기 해결할 수 있는 기구가 생기는 게 이득이라는 지적이다.

일찍부터 이런 노력을 해온 대학들도 있다.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인권센터를 개설한 중앙대는 작년에 총 59건의 신고 사안에 대해 총 526회의 상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들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인권 교육이나 인권 문화제를 통해 교육을 활발히 함으로써 참여 학생들은 ‘인권에 대해 친근하게 접할 수 있었다’며 긍정적 피드백을 보냈다. 인권센터가 잘 운영된다고 평가받는 서울대는 대학원생 인권실태 조사보고서에서 대학원생 인권장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 2016년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가 20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의원들에게 제출한 정책 의견서 표지

■ “신고 시 학내 매장” 우려…유명무실 지적도= 그러나 대학원생 사이에서는 이러한 대책이 실제로는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학생들은 우선 인권센터의 유명무실함을 꼬집었다. 인권센터가 교수를 처벌하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만 한다는 것이다. 또 인권센터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아예 학계에서 추방되는 일이 잦아 신고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지적도 나왔다. 동국대 일반대학원 서정호 총학생회장은 “학생이 인권센터에 신고할 경우 학계에서 매장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센터에 신고하겠느냐”고 꼬집었다.

권리장전도 최소한의 장치에 그친다는 평가다. 권리장전이 대학원 내 인권에 대한 인식 차를 좁히고 합의를 이끌었다는 점에선 의미가 있지만 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인권 보장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이들은 성희롱·성폭행 교수에게 교육부 차원에서 강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같은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인권센터 내부에 대학원생 전담 인원이 배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앞서 지난해 11월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는 대학가에 아직 인권센터조차 없는 학교가 많다며 학내 인권센터 설립과 권리장전 제정 여부가 대학평가에 반영돼야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인권센터가 갈등을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수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사례 교육을 통해 인권 감수성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성수 교수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나설 것을 주문했다. 홍 교수는 “개별 대학의 노력으로 부족하다. 정부의 압력과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권센터에 비정규직을 채용한 점을 지적하며 전문성·신뢰성·독립성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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