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대안으로 부상…국내엔 KAIST, POSTECH 운영

<1. 대학가, 권리장전·인권센터 설치 노력과 한계>
<2. 이공계에서 다시 떠오르는 갈등조정자 '옴부즈퍼슨'>

▲ 옴부즈퍼슨 제도를 운영하는 KAIST.

“전문적이고 유능한 인력, 물적 투자 뒤따라야”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13일 발생한 연세대 폭발물 사건 원인이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의 갈등이었다는 피의자의 자백이 나오자, 교수사회에서 갈등 조정자 ‘옴부즈퍼슨’ 제도 도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옴부즈퍼슨(Ombudsperson)은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고 대학 전체 구성원간에 벌어진 갈등을 조정하는 직책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고전적인 옴부즈맨은 도덕적인 지지를 받는 학교의 어른, 인격적인 대표체다. 고충처리 상담관, 고충처리 제도, 컴플레인 프로세스 등의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징계권은 없고 인권센터와 같이 징계나 처리를 권고할 권한만을 갖고 있다.

이미 미국 등 서구권에서는 1960년대부터 보편화된 제도다. 현재 국내에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포항공대(POSTECH) 두 곳이 옴부즈퍼슨 기구를 두고 있다. POSTECH이 2012년 7월, KAIST가 2013년 9월에 도입했다. 1809년 스웨덴 의회에서 처음 도입된 시민 민원 해결 전문 기구 ‘옴부즈만’ 제도가 모태다.

윤태웅 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ESC) 대표(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관계의 비대칭성 때문에 일방적으로 학생이 고통 받기 쉽다. 옴부즈퍼슨이 총장과 대등한 위치에서 지도교수를 변경하는 등의 방식으로 갈등을 해소해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옴부즈퍼슨은 인권센터와 달리 총장의 직속기구로 보직되거나 단과대마다 부학장 또는 학장에 준하는 지위를 갖는다. 실제로 KAIST는 총장 직속기구로 두고 명예교수 2명을 보직하고 있다. KAIST 옴부즈퍼슨인 박승오 명예교수(항공우주공학)는 “현직 교수는 (이해관계에)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명예교수는 제 3자적 입장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립성은 옴부즈퍼슨의 핵심이다. 독립성을 근간으로 의뢰인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비밀리에 활동한다. 정치력을 발휘해 가해자가 권력으로 피해자를 억누르는 행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타협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박승오 교수는 “정기적으로 총장을 만나 보고하며, 필요하다면 총장 또는 학장에게 직접 의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도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누가 맡는지도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옴부즈퍼슨은 대학과 강단, 대학원에서 일어나는 현장의 생리를 이해하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예컨대 연세대 사건과 같은 대학원 사제 간 갈등에서는 지도교수를 변경하게 해 주거나 연구 분야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옴부즈퍼슨을 도울 상담과 조사에 능한 전문가도 다수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옴부즈퍼슨 제도는 인적, 물적 차원에서 아직 부족해 보인다. KAIST 옴부즈퍼슨인 구자경 명예교수(수학)는 “외국의 경우엔 학생담당, 직원담당, 교수담당이 나뉘어 많게는 6명의 옴부즈퍼슨이 있는 대학도 있다”고 전했다. KAIST는 현재 옴부즈퍼슨 명예교수 2명과 행정조교 1명으로 구성돼 있다. 2명의 교수가 1주에 2일, 1일 1시간 반씩 돌아가며 업무를 본다. POSTECH은 개소 당시 외부 법무법인의 변호사 1인을 위촉했다가 현재는 대학이 고용한 변호사 1인이 맡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명예교수와 변호사만으로는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홍성수 교수는 “상담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조사는 상담과는 또 다른 전문성이 필요하다”면서 “(연구 전문가인) 명예교수가 하기 어렵다. 변호사도 큰 사고를 방지할 수는 있어도 상담전문가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대학원생들의 반응도 비판적이다. 한영훈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기존 옴부즈퍼슨이 학과, 단과대를 거쳐 올라가는 마지막 창구로 운영되고 있어 직접 고민을 의뢰하지는 않는다며 “옴부즈퍼슨이 상담센터나 인권센터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예방과 조치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데 활동이 전무하다. 단순히 상담을 받고 경청, 공감 정도만 해주지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옴부즈퍼슨들은 제도가 올바르게 확산되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기관장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구자경 명예교수는 “도입을 주도한 강성모 당시 총장의 경우 미국에서 오랫동안 총장 생활을 해 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대부분 총장들은 잘 모를뿐더러 의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아쉬워했다.

전문가들도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교육부나 국가인권위 등 외부 지원도 도움이 되나, 대학 자체의 의지와 지원도 중요하다고 거든다. 홍성수 교수는 “대학도 교수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불편하고 돈이 많이 드는 비효율적인 것이라 생각할 게 아니라, 문제를 예방하고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투자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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