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역사학자협의회’ 접촉 승인…‘고고학회’ 등 논의 급물살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2019년 4월 ‘겨레말웹사전’ 출시…‘겨레말큰사전’도 완료할 것”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이전 정부 당시 중단됐던 남북간 학술 교류가 다시 활력을 되찾는 분위기다. 문재인정부가 남북간 민간 교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방향을 설정하면서 학술 단체들이 남북교류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냉랭함을 유지하고 있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군사·정치적 대치가 문화·학술 교류를 가로막지 않도록 하는 교류협력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2008년 남북 공동으로 개성 만월대에서 제3차 남북공동발굴조사를 실시해 건물들의 정확한 규모와 배치상태를 확인했다. 번호순으로 ① 17호 · 18호 건물지 및 ‘다’지구 마당 전경 (남-북) ② 조사구간 전경 (남동-북서) ③ 17호 건물지 전경 (남서-북동) ④ ‘다’건물지군 전경 (동-서). (사진=문화재청)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지난 5일 통일부로터 대북 접촉을 승인받았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지난 2015년 11월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던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조사 재개 △평양 고구려 고분군 공동조사 △남북 공동학술대회 개최 등을 17개월 만에 재개할 수 있게 됐다. 모두 7차례의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조사를 실시했던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2013년 만월대 등 ‘개성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2015년 고려 금속활자를 발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공동대표 안병우 한신대 명예교수는 “개성 만월대뿐만이 아니라 평양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시급히 해야 할 공동연구 분야”라며 “현재 북측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등을 통해 의사를 전달했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2018년은 고려가 건국된 지 1100주년이 되는 해고, 2019년은 고려 태조 왕건이 송악(현재의 개성)으로 천도(수도를 옮김)한 지 1100주년이 되는 해다. 학계에선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시기에 남북교류가 재개된 것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한국중세사학회는 남북 민간교류 활성화 방침을 기회로 ‘고려’에 대한 학술대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2007년에 90일간 개성에 머무르며 직접 만월대 공동발굴조사에 참여하기도 했던 기획연구위원장 홍영의 국민대 교수는 “남북 공동 열쇠는 결국 ‘고려’에 있다”며 “고려가 갖는 역사적 특징인 ‘하나된 통일’이라는 공감대로 ‘남북 학술발표회’와 남북간 학술 교류 방안을 논의하는 ‘한·중·일 고려사학자 포럼’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공동편찬사업도 다시 재개될 전망이다. 이 사업은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공동사업이 중단된 뒤 6개월 만에 재개될 전망이다. 겨레말큰사전의 2019년 출판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김학묵 사무처장은 “통일부에 대북접촉 승인 신청을 해놓은 상태이고, 승인이 나면 즉시 북과 관련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활발히 진행됐던 겨레말큰사전은 지난해 완료를 목전에 두고 중단됐다. 김학묵 사무처장에 따르면 전체 목표의 75%까지 완료됐던 이 사업은 개성공단 폐쇄의 여파로 사업이 중단돼 출판 목표 시기가 조정됐다. 사업회 측은 우선 2019년 4월 ‘겨레말웹사전’ 출시를 목표로 제시한 상태다.

이 밖에도 남북 민간교류 확대에 따라 학계는 들뜬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국고고학회는 유물·유적에 대해 더욱 전문적인 역할로 남북 학술 교류를 담당하겠다는 구상이다. 학회에 소속된 교수들도 남북 간 학술 교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양시은 충북대 교수는 ‘북한 고고학 인명사전’을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시은 교수는 “고구려에 대한 연구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지만, 무엇보다 남북이 의기투합할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고구려’가 될 수 있다”며 “경제난으로 열악해진 북한 연구력의 현주소와 연구 성과 등을 미리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김범철 충북대 교수는 ‘북한 문화유산 디지털 지도제작 사업’을 제안했다. 김범철 교수는 “무엇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며 “문화유산에 대한 위치가 종합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는 현실 속에서 통일을 대비해 문화유산 관리를 주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종택 고려대 교수는 ‘남북고고학협회’를 설립해 진정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남북간 학문적 논의 기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우선 통일고고학특별위원회를 꾸려 계획들을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최 교수는 “학회에서 정관 등 세부적인 내용들이 완료되면 오는 7월부터 본격적으로 교류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며 “민화협을 통해 북한의 조선고고학회 등 교류 상대를 정하는 것도 차질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병우 대표는 “정치·군사적 긴장 국면에 따라 문화·학술 교류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유물·유적의 습도 문제 등을 해결해 줄 인프라가 열악한 북한의 상황을 봤을 때, 인도적인 측면에서의 학술 교류협력이 하루빨리 재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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