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전자에 남은 ‘상처’ 찾는 성주헌 서울대 교수

“연구 성공여부 불확실…아직 섣부른 기대는 금물”

▲ 성주헌 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사진=김정현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처음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모임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포기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직접 만나서 어떤 의미에서 하는 것이고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해 드렸다. 꼭 해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부담감이 크다.”

2011년 정체불명의 폐질환을 앓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난다. 의사들의 문제 제기로 역학조사에 착수한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살균제에는 폐 섬유화를 일으키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올리고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이 들어 있었다.

6년이 지났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27일 현재 신고 피해자는 5628명, 사망자는 1197명이다. 정부로부터 관련성을 인정받은 건 982명(17.4%)에 불과하다. 시민사회는 2011년 정부의 역학조사 당시 밝혀진 특이한 폐 섬유화 증상만을 기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해 왔다. 6년간 새로운 사례가 접수되며 피해자가 호소하는 증상도 다양해졌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성주헌 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는 후성유전학으로 해법을 찾고자 모험에 나섰다. 후성유전학, 또는 후생유전학(Epigenetics)은 90년대 중반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은 이론이다. 살아가면서 겪은 환경과 물질에 의해 변하는 유전자를 연구한다. 예를 들면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 타르를 분해하는 효소에 메틸기가 없어지는 변화가 생기는데, 이는 후성유전학적으로 흡연자의 해당 유전자가 더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만약 가습기 살균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피해자들의 유전자가 일정하고 공통된 변화를 나타낸다면, 이는 피해자가 관련성을 주장할 새로운 증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성 교수는 조심스럽다. 그는 이 연구가 일종의 도전이라고 한다. 연구자는 논문으로 말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엄밀하게 연구하지 않으면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섣불리 성공을 속단하지 않았다. 성주헌 교수를 27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났다.

Q. 대략적인 연구 계획을 물어봐도 되겠나.

“이번 연구는 예비조사의 성격으로, 피해자들의 유전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후성유전학적 메틸화 패턴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국제적 비교성을 위해 미국에서 개발한 80만개의 유전자 칩을 사용한다. 분석 비용은 한 샘플당 60만원 선이다. 올해는 피해자 분들을 100명에서 120명 정도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환경부와도 논의 중에 있다.”

Q. 연구 방법으로 후성유전학을 택해 연구하는 이유가 있나.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단백질을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었겠지만 생체 주기가 길어야 3개월뿐이라 실효가 없다. 지금까지는 (피해자들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후성유전학적 변화는 안정적이고 대단히 오래간다. 체질화되는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발견 시점이 너무 늦어지다 보니 질환이 있는 분들을 검증하기 어려웠지만,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Q. 논란도 많고,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그런데도 연구를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대부분 억울함을 풀고 싶어 하고 기대를 많이 해 부담도 크다. 언론에 나온다는 것부터 민감한 관계에 얽힌다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보건대학원 동료 교수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비롯해 건강권과 환경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예방의학 전문의이자 보건학자로서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에, 그것도 정확한 해답을 드릴 수 있다면 보건학자로서 보람이겠다.“

Q. 언급한 대로 이 연구가 사회적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사실 비슷한 생각을 다른 많은 연구자들도 했을 것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도 관심을 갖고 고생한 분들이 노력한 결과로 해결‧보상 마련에 가까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어려운 문제가 많이 남아있다. 연구 결과를 내놓기 전 언론을 만나는 것도 부담이 크다. 실패할 가능성도 굉장히 높은 연구다. 소식을 접한 분들이 오해와 섣부른 기대 없이 있는 그대로 연구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Q.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가습기 살균제의 실제 화학성분은 굉장히 종류도 많고,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노출의 정도나 개인 특성에 따른 민감도나 특이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결과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후성유전학적인 특징을 찾아냈더라도 개인마다 변동이 심해 잘못 분류되는 사람도 많을 수 있다. 개개인의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게 목적인데, 어렵게 된다.”

Q. 서울대 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가 끝나기 전 보도가 나왔다. 소명 요청을 받았다던데.

“그렇다. 소명서 요청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경고를 받은 것에 가깝다. (웃음) 연구 참여자들에게 내용을 소개하는 자리가 언론에 보도됐는데,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연구가 이미 시작된 것처럼 해석될 수 있었다. 물론 연구를 시작하기 전 IRB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지난주에 IRB 심사를 통과해 참여 신청을 받고 있다.”

Q. 언제쯤 결과를 알 수 있겠나.

“목표는 올해 안에 1차 분석을 완료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협조해 주실지가 문제다. 이를 통해 먼저 가능성이 아예 없는지, 아니면 통계적인 유의성이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아예 특이적인 패턴이 없다면 더 실험군을 늘려도 의미가 없다. 만일 특징이 나타나더라도 언급했듯이 개인차를 따져봐야 한다. 절차나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내년 중반은 지나야 논문 발표가 가능하지 않을까 보고 있다.”

Q. 만일 성공한다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을텐데.

“연구지표를 찾아도 학계에서 공인을 받을 수 있는지 논쟁도 거쳐야 한다. 노출평가, 임상에서 애매한 부분이 많다. 법원에서 인정받는 것도 별개의 문제다. 법의학에서 이야기하는 확정적인 증거로 인정되려면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 그렇게 돼야 마침내 억울하게 피해를 보시고도 연관성을 입증 못한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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