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모에 들어간 교육부 '두뇌한국(BK)21 사업'이 공모 초기부터 지방대학들의 거센 저항에부딪히고 있다.

세계수준의 대학원육성과 지방 우수대 육성을 골자로 한 'BK 21 사업'은 교육부가 우리나라 연구수준을 세계적으로 높이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야심찬 계획.

그러나 선정대학이 가시적으로 점쳐지고 대학의 서열화와 빈부 고착화, 인문학 고사 위기를 우려 하는 대학들이 집단 반발 움직임을 보이는 등 향후 제도 시행에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교육계 전문가들을 초청, 향후 대학가에 유례없는 판도 변화를 몰고 올 BK21 사업 을 주제로 한 긴급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는 BK21 사업의 근본 취지와 배경을 재점검하고 대학가에 몰고 올 긍정·부정적 효과 등을 진단하는 한편, 향후 시행 과정에서 수정되거나 보완될 사항은 없는지 모색해 보는 자리가 됐다. <편집자주>

주제 : BK21 사업, 그 허와 실을 진단한다.
일시 : 1999년 6월 9일(수) 오전 9시∼11시
장소 : 연세대 상남기념관 1층 VIP B Room
사회 : 김우종 본지 주필
토론자 : 주인기 연세대 교무처장, 박거용 상명대 교수, 김화진 교육부 대학원지원과장

사회 : 교육부가 BK21 사업을 입안하게 된 취지부터 설명해 달라.

김화진 과장(김) : 이번 사업은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에 사교육비 문제 등 입시과열 현상을 개혁 하자는 취지로 도입하게 것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입시구조를 개선하는 일은 단순한 제도개 선만으로는 어려우며 서울대를 대학원중심대학으로 바꾸어야만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초에는 서울대를 위시한 몇 개 대학만을 대학원중심대학으로 육성하는 것이 골자였으나 이에 대한 논란이 제기돼 공모를 통해 대상 대학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꾸게 됐다. 대학원중심대학과 지역 우수대학 육성방안 외에 전문대학원제를 도입한 것도 초기와는 달라진 부분이 다. 이 제도가 정착단계에 들어간다면 수능성적에 따른 대학서열화는 불가능해 진다.

사회 : 이번 BK21이 21세기에 걸맞은 인재 양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애초 도입 취지는 입시문제의 해결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번 사업은 특정분야와 대학에 대한 선택적·집중적 지원을 골 자로 하고 있다. 아무래도 입시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김 : 일각에서 이번 사업이 대학의 서열구조를 오히려 첨예화해서 입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오해일 뿐이다. 대학원중심대학으로 바뀌는 대학들은 입시제도를 개혁하고 학부정원을 감축하는 등 개혁을 수행해야만 한다.
무게중심을 대학원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한 푼의 예산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학부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에 과거 와 같은 입시난은 크게 해소될 수 있다.

사회 : 교육부의 입장은 BK21이 입시위주 교육 해소와 21세기 인재양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 시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인데 대학에서는 어떻게 보나. 대학원중심대학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큰대학의 경우 어떤 입장인지.

주인기 처장(주) : BK21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대학원중심대학이 자칫 학부교육을 약화시 키는 것으로 이해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학부정원의 감축은 필요하겠지만 대학원 전 단계인 학부 과정의 일반교육과 교양교육은 오히려 강화돼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 폭넓은 일반·교양과 정을 이수해야만 장차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전문분야를 제대로 연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대학은 신입생 모집단위를 대단위로 광역화했다.

사회 : 그렇다면 자칫 시회초년생의 고령화라는 문제가 야기되지 않겠는가.

주 :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실 그동안은 특정한 기술만을 단기에 배워서 사회에 진출했었다. 이 는 21세기에 걸맞은 인재양성 체제가 아니다. 창의성 함양을 위한다면 교육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가령 모 대기업의 경우도 다양한 학부 출신을 신입사원으로 선발하는 추세로 돌 아선 것으로 안다.

사회 : 지난 9일 부산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이번 BK21에 반대하는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이번 사업이 지방과 서울간 격차를 심화시켜 제도시행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데.

주 : 꼭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다. 경쟁사회에서 대학간 서열은 부정할 수 없다. 단 서열이 고착화 돼 있다는 것이 문제다. BK21은 대학 서열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부산대 교수들께서는 이번 사업에 반대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기 대학의 서열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 : BK21이 지방대를 교육중심으로 낮추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부산대 교수들의 지적은 잘못된 것이다. 이번 사업은 수능성적에 따른 대학 서열화를 폐지하고 분야별 서열화로 재편을 도 모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물론 이번 사업이 일부대학에 대한 집중적 지원을 골자로 하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대학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학부중심대학이라 해서 연구기능을 수행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대 학은 기본적으로 연구와 교육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곳이라는 점을 교육부도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작지만 연구에 충실한 대학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새로운 지원사업도 강구할 생각이다.

사회 : 그에 대한 교육부의 조치가 조속히 뒤따르기 바란다. 또한 BK21에서 기초학문이 소외됐기 때문에 장차 우리나라의 학문기반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주 : 기초학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초학문의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의 연구기능 강화가 필요하다. 이·공계 참단분야에 대한 지원강화는 결국 기초학문의 수요 창출이 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사회 : 그렇다 해도 많은 인문학 교수들이 상당히 우려하는데 박교수 생각은.

박거용 교수(박) : BK21은 물론, 교육발전 5개년 계획 등 일련의 교육정책에서 인문사회 분야는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다. 이른바 문·사·철로 불리는 인문학과 예술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21세 기 지식기반 사회에 맞는 창조력과 상상력을 함양시킬 수 없다. 하지만 교육부 정책에는 이에 대 한 배려가 전무한 실정이다.

사회 : 지원액수에 큰 차이가 있다지만 사실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자연계나 이공계에 비해 비 용이 덜 드는 분야가 아닌가.

박 : 국내에 인문·사회과학을 지원하는 기관은 오로지 '학술진흥재단'뿐이다. 비용 차이를 고려한다 해도 엄청나게 적은 액수만이 인문학에 투여되고 있다. 또한 대학원중심대학 육성과 맞물려 있는 사안이 바로 '학부제'인데 이것 역시 인문학의 퇴조를 부추기고 있다.
물론 기초학문 분야의 학과가 모두 있어야 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적어도 기초학문 분야의 교육은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주 : 대학원중심대학을 지향하다 보면 학부과정에서는 기초학문인 인문과 교양을 저절로 중시하게 돼 있다. 거듭 말하지만 기초학문을 강화하는 방도는 다른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대학원중심 대학을 육성하는 데에 있다.

사회 : BK21이 첨단학문에 집중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김장관도 21세기 산업사회 인력수요 에 맞는 대학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으로 안다. 그것이 과연 어떠한 교육을 말하는가.

김 : 서울대만 해도 졸업생의 60∼70%는 취업을 택한다. 따라서 같은 학과라 하더라도 학생의 진로에 따라 교육과정과 학위의 성격이 달라야 한다.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이 불가피하게 기초학문 을 전공하게 될 경우 복수전공 이나 전과의 기회를 부여하는 등의 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기초학문에 대한 수요는 늘어난다고 본다. 또한 대학원중심대학이 되면 인 문교육의 강화는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과거 학과 위주로 신입생을 모집할 때는 인문학 위기론이 없 었다는 점이다. 위기론이 교수 중심으로 논의된 것은 문제이다. 학생 중심으로 사고한다면 얘기는달라질 것이다.

사회 : 대학원중심대학이 되려면 교수인력 확보 등 재정문제가 따르는데 연간 2천억원은 너무 적 지 않나.

김 : 사실 연간 2천억원이라는 액수는 시드 머니(seed money)에 불과하다. 또한 대학원중심대학 에 선정된 대학들은 앞으로 학부감축, 입시개혁, 교수연봉제 등 수많은 개혁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번 사업이 일부대학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는 점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박 : 교육부가 연간 2천억원이라는 미미한 액수로 추진하는 BK21은 결국 대학간 서열구조의 고 착화라는 부작용만 나을 가능성이 크다. 진정한 대학개혁과 국제경쟁력 강화를 원한다면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교육부는 지나치게 미국 중심의 교육개혁을 지향하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공공성이 극히 취약하다. 고등교육의 공공재원 비율도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공공재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교육개혁의 관건이라고 본 다. 물론 이는 정부의 책임만이 아니다.
재벌기업들도 그동안 고등교육의 지적 성과물을 독점하며 성장해 왔던 사장을 감안, 고등교육에 책임질 부분이 있다. 마치 선심을 쓰듯 일부대학에건물을 지어주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또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과연 21세기에 대규모 대학이 살아 남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앞으로 대학은 관광지가 되고 말수도 있다. 또한 엘리트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 대학에서 소규모 연구소로 이행할 수도 있다. 불행히도 BK21에는 이같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다. BK21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들이 우리 사회의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김 : 유럽은 교육을 공공재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교육비의 국가부담은 곧 국민의 세금부담과 일치한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는 기업인들의 기부문화가 발달해 있고 정부의 재정지원도 강한 게 사 실이다. 현재 우리 실정은 열악하지만 경제 여건이 나아진다면 사정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사회 : 정리하는 의미에서 향후 BK21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정, 보완할 사항은 없는지 얘 기해 보자.

주 : BK21이 입시교육의 폐해를 줄이고 고교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인 만큼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미 대학원중심대학으로 잘 나가고 있는 포항공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은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대학원중심대학 육성 대상은 인문학 등 기초교육이 강화돼 있는 대학에 집중돼야 한다고 본다.

박 : 이번 사업이 이미 대학을 내정해 놓고 정해진 수순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사정을 감안할 때 수정, 보완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매우 유감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미래사회 로 갈수록 고등교육은 국가 사업화될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 달라는 것이다. 국가적 기획이 없이는 고등교육의 개혁은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고등교육의 공공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또한 BK21 계획은 우수인력 양성, 대학의 다양화·특성화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부적합 안 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전국의 국·공립대를 통폐합하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 다. 모든 국·공립대가 백화점식 구조를 할 것이 아니라 각기 특성에 따라 전문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지방대의 균형발전, 영·호남 교류 등 많은 이득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전국 대학의 70% 가량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상태로는 미래사회로 나 아갈 수 없다.

김 :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교육부는 이번 사업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대학들을 위한 새로운 지원 사업을 곧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BK21 사업은 지원대상 대학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유념해 주기 바란다. <정리·신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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