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산 본지 논설위원 / 숙명여대 경영학부 부교수(프라임사업단장))

우스갯소리로 핵폭탄보다 무서운 것이 학령인구 감소라는 말이 있다. 조만간 대학 입학정원과 대학 신입생 수 간에 역전이 발생할 텐데 필자는 특히 2021년을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학 신입생 대다수가 태어난 2002년에 연간 출생자 수가 처음으로 40만 명대를 기록했고, 이들은 문·이과 구분이 폐지된 고교교육 수혜의 첫 번째 대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고교 시절 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는 첫 번째 세대이기도 하다. 입학자원의 양적‧질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셈이다. 이러한 큰 변화를 앞두고 필자는 두 가지 협업과 상생을 생각해 본다.

첫 번째는 바로 정부와 대학 간의 협업과 상생인데, 가장 시급한 사안은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나 정부재정지원사업과 관련해서 정부와 대학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좋은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필자는 대학구조개혁평가 필요성에 동의하며, 이 평가가 대학들이 자체 설립이념과 발전계획에 따라 새롭게 혁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주기 평가가 본래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제기하는 기관평가인증과 연계해 진행하는 방식이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부실대학의 청산이 먼저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새 정부가 진지하게 고려해 주길 바란다.

새 정부에 바라는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 GDP 대비 고등교육 예산을 OECD 평균(1.2%)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대통령 공약사항에 대한 청사진을 하루빨리 제시함으로써, 특수목적성 재정지원사업과 별개로 일반재정지원사업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 방식이나 교부금 형식의 일반재정지원사업 재개에 대한 필자의 요구는 어쩌면 이미 진부한 주장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어 반복적으로 이를 강조하고자 함은 바로 정부가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이 문제를 인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계승하고자 하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에 나온 대학구조개혁 방안으로부터 정부재정지원사업과 정원감축이 연계되기 시작했으며, 2003년까지 그 비중이 60%에 달했던 일반재정지원사업은 참여정부 말기에는 거의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협업과 상생을 언급하면서 정부에 요구만 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이러한 요구가 협업과 상생이며, 더 큰 협업과 상생을 불러올 마중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는 바로 대학 간의 협업과 상생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대학이 자체적으로, 혹은 정부의 다양한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학부교육 혁신을 추진해 왔다. 그리고 여러 대학에서 훌륭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필자 역시 신문 지면, 혹은 협의회나 세미나를 통해 여러 우수한 사례를 접하고 있다. 때로는 해당 학교의 관계자를 초빙해 혁신사례를 배우기도 하고, 해당 학교에 방문해 직접 보고 배우기도 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것만으로는 배움의 갈증을 해갈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아쉬움 속에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대학 간에 서로 배우고 협업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소프트웨어나 컴퓨팅적 사고 혹은 디자인 싱킹(thinking)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학 관계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대학의 경우 그렇지 않은 대학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획일화된 교육 모델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서로 협업하는 과정에서 각 대학의 실정에 맞는 좋은 교육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초보적인 단계지만 필자가 속한 대학 역시 서울 지역의 여러 대학과 함께 교육과정 공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외국어 교육에 전문적인 대학이 아랍어나 베트남어와 같이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외국어 교육을 공유하거나, 서울 소재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창업 관련 교육을 함께 진행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대학들은 한정된 정부재정지원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데 익숙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정부재정지원사업 예산의 양적 확충과 질적 변화가 수반돼야 하겠지만, 이제는 대학들이 지난 10년 동안 각자 훌륭하게 추진한 혁신성과를 공유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따로 또 같이’라는 예전 대중음악 그룹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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