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폰 베링 의학대상 수상한 권준수 서울대 교수(정신건강의학)

‘조현병’ 병명 개정‧학회 창립…한국 뇌 기능 맵핑 분야 ‘살아있는 역사’
끈기 잃게 만드는 학문세태 아쉬움 “자기 분야 전문가 돼야 융합도 가능”

 

▲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정신건강의학)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컨버전스, 초융합, 퓨전. 융합을 일컬어 세상이 부르는 단어들이다. 다보스 포럼이 정의내린 4차 산업혁명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누구나 ‘융합’을 꼽는다. 이는 오늘날 사회가 학문생태계에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 융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저 많은 단어만큼이나 해석도 관점도 제각각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연구실에서 배의 키를 쥐고 있는 연구자들이 혼란해 하는 이유일 테다.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는 인지과학과 정신의학을 융합한 전문로 불린다. 1998년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면서부터 영상의학으로 정신질환을 연구하는 ‘뇌기능 맵핑’ 연구를 선도했다. 2008년에는 한국인지과학회장도 역임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30일 대한의사협회와 제약기업 한독이 수여하는 ‘에밀 폰 베링 의학대상’을 수상했다. 분쉬의학상 본상, 아산의학상 임상의학부문상 등에 이어 8번째 학술상 수상이다. 오는 2018년에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장을 맡을 예정이다.

서울대병원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권준수 교수에게 축하를 건네자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시상식이 있는 의협 총회 날 대국민 건강 선언이 끝나고 소감을 말하라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말하지 못했다”고 감사를 표했다. 인터뷰 직전까지 분당 서울대병원 일정을 소화하고, 직후에는 회의가 있다는 그의 등 뒤로 컴퓨터 화면 속 빼곡히 채워진 일정표가 보였다.

“많은 동료 의사들이 진료에만 많이 치우쳐 있는데 저는 상대적으로 연구를 많이 해요. 기본적으로 시간의 3분의 1 정도는 연구하는 데 보냅니다. 제가 하는 연구는 기초와 임상, 임상과 기초를 ‘중개’해 환자에게 직접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기초연구는 실험변인을 통제할 수 있는데 저는 환자를 직접 검사하고 평가를 하면서 연구를 진행하니 아무래도 어려운 측면이 있죠.”

권준수 교수는 스스로를 조현병 전문가로 소개한다. 1994년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되면서부터 명패에 ‘정신분열병’(조현병의 옛 명칭)을 달았다고 한다. 환자들에게는 조현병에 정통하다는 뜻도 되지만, 자신은 이 병에만 집중하겠다는 선포를 한 것.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서 융합을 말한다면 엉터리라고도 했다. 그에겐 꾸준한 끈기가 곧 연구‧진료‧교육 그리고 융합 네 마리 토끼를 잡은 왕도다.

“우스갯소리로 외국에서는 자기가 파리에 관심이 있다면, 석사 때는 뒷다리를 연구하고 박사 때는 뒷다리 털을 연구해서 먹고 산다고 하죠. 다른 나라에선 한국 사람들이 왜 포기가 빠르냐 궁금해 하는데 하나만 해선 먹고 살기 힘든 구조라서 그렇습니다. 지금도 학회 나가면 한국 사람들은 전부 다른 사람 논문 읽고 리뷰만 해요. 저도 젊을 때는 다른 것도 다 해야 했지만, 전문의가 된 뒤로 내 분야가 아닌 것을 주제로 요청하면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 아 저 사람은 뭐다, 이런 식으로 저만의 브랜드 가치가 생기던데.”

그는 자신이 연구하는 병의 이름도 바꿨다. 전문성을 갈고 다듬은 덕택이다. 2011년 대한조현병학회장으로서 ‘정신분열병’을 ‘조현병’으로 바꾸는 병명개정을 주도했다.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이다. 신경계의 조현이 원활하지 않아서 생기는 병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007년 환자 가족모임 3689명의 서명을 받고 개정을 결심, 의료, 법조, 임상심리 전문가들과 환자 가족들을 묶어내 병명을 개정했다.

“정신분열이라는 표현은 환자에게 낙인이에요. 대부분 조현병 환자는 조용해요. 일부 강력범죄를 제외하면 일반인보다 범죄 비율이 적습니다. 조현병은 정상인에 비해 뇌 신경세포 연결성의 문제가 있어, 사고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딱 끊어지는 병도 아닙니다. 약을 끊으면 위험하다고 교육해도 환자들조차 이해를 못합니다.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약을 먹고 관리를 해야 해요. 편견으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그를 오늘로 이끈 배경엔 ‘살아있는 환자의 뇌를 보겠다’는 학문적 목표가 있었다. 1996년 미국 하버드에 연수를 가서 영상장비로 뇌를 찍는 것을 보며 경탄했다. 그동안은 죽은 사람의 뇌를 해부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1998년 서울대병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영상의학과와 핵의학과의 도움을 받아 인프라를 구축했다. 사람을 모으기 위해 학회도 만들었다.

“사진을 통해 연구를 하기로 마음먹은 건 아마도 한국에서 제가 거의 처음일 겁니다. 도움을 줄 사람이 많이 필요했죠. 2002년 일본 센다이에서 열린 국제학회에 참여한 한국 연구자들을 모아 대한뇌기능매핑학회 창립을 제가 주도했죠. 10년 동안 국내 연구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발표도 하고 홍보도 했습니다. 내년에 마침내 한국에서 처음 국제학회를 연답니다.”

전문가가 되면 마음도 자연스레 열린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인지과학과의 만남도 그 중 하나다. 권준수 교수는 지금도 한 달에 적어도 한 번 관악캠퍼스에 인지과학 협동과정 겸임교수로 출강한다. 언어학, 심리학, 신경과학 그리고 전자공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가들과 만났다. 인지과학 한다면 자신을 다 안다고도 말했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어요. 생명현상이라는 것은 수학과 다르거든요. 수학과가 1+1은 2를 말한다면, 정신과는 1+1은 2라는 것을 찾는 작업을 합니다. 사람에 따라 1.9일수도 있고 3일 수도 있어요. 그걸 이야기하다보면 다른 분들은 흥미로워 해요. 이렇게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면 신기하게도 서로가 이해를 합니다. 도 닦은 것도 아닌데, 자기 분야 연구만 해도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아는 게 아닐까요.”

돌아보면 권준수 교수는 융합을 위해 전문성을 쌓았고, 전문성을 위해 융합에 도전한 셈이다. 새 분야 개척 과정의 난관은 끈기로 극복했다. 그러면서 우물에 갇히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의 힘을 얻었다. 곧 60에 들어서 은퇴를 바라보는 그에게 남은 아쉬움은 없을까.

“혹자는 조현병의 원인이 밝혀지는 날은 뇌 기능이 다 밝혀지는 날이라고 말합니다. 태아 때부터 뇌손상이 올 수 있다는 연구도 있듯이, 기전을 밝히려면 평생 단위의 연구를 해야 합니다. 병을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은 알지만, 일으키는 바로 그 핵심은 아직 몰라요. 곧 연구를 접어야 할 나이지만 여건이 된다면 계속하고 싶은데 (웃음) 젊은 사람들이 할 일도 남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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