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황성원 기자] 문재인정부가 ‘평등한 기회·공정한 과정’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채용 시장 내 학연·지연·혈연을 끊을 묘수다.

명문대 출신이라는 네임텍으로 높은 연봉을 보장받고 부모님 직업으로 평가되며, 이력서 내 숱한 항목을 채우기 위해 방학도 반납해야 했던 학생들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는 것이다. 흙수저와 금수저로 이분된 꼬리표를 채용 시장에서부터 자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5일 정부가 발표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에 따르면 당장 이달부터 공공부문 이력서에는 출신 지역과 가족관계, 신체적 조건, 학력 등을 적는 항목이 사라진다. 대신 직무와 관련된 교육을 받았거나 현장 경험을 적는 항목이 들어간다. 채용 시장을 ‘능력중심평가’로 돌리겠다는 의지다.

정부는 정책 실현의 혼선을 막기 위해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에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그들이 얼마나 잘 시행하는지 평가까지 하겠다고 한다. 취지는 분명하고, 방향은 간결하다.

그러나 디테일이 떨어진다. 일부 민간기업들과 학생들은 볼멘소리 한다. 기업들은 읽을거리가 확 줄어든 이력서를 보고 평가 기준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피땀 흘려 좋은 대학에 들어왔고, 결석 한번 없이 살뜰하게 학점과 스펙을 챙겼는데 노력이 무시된다며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반응이다.

실제 이공계 기업의 경우 채용에 있어 구직자의 학교가 중요했다. 전문기술이 필요한 직군이기 때문에 더 괜찮은 커리큘럼과 시설을 갖춘 학교를 졸업한 구직자를 선호했다. 다르게 보면 학벌은 손쉽게 구직자를 파악하는 명확한 근거였다.

블라인드 채용이 민간기업에도 확산되면 구직자가 배운 과목이나 현장 실습 등이 이력서에 열거될 텐데 기업 입장에서는 해당 과목이 내실 있는 커리큘럼인지, 질 높은 현장 실습을 다녀왔는지 검증하기 위해 2~3배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우왕좌왕하다 채용 기간만 늘어날 확률이 높다. 정책에 디테일을 살려야 하는 이유다.

다만 이번 정책이 악수(惡手)라는 평가에 대적하기 위해 서두르면 안 된다. 블라인드 채용은 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했지만, 이와 관련해 업무를 지시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에 꺼내졌다. 사회적 합의를 얻기 위해서는 그럴싸한 목적보다 공감 가능한 내용이 우선이다.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특히 민간기업으로 확산을 위해서는 살아있는 디테일이 전부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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