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호 한국외대 기획조정처장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이 자리에 와 비로소 ‘규범적 실용주의’를 깨닫게 됐습니다. 교수로 있을 때는 저도 이상적이고 규범적인 가치를 강조했거든요. 그런데 처장을 맡고 나니 실용과 효율을 중요시하게 되더군요. 결국 균형이 중요합니다. 규범을 잊지 않으면서도 실용을 추구해야죠.”

평범한 40대 교수가 보직을 맡으면 진귀한 풍경이 된다. 대학 보직교수, 특히 교무·기획·학생처장은 50대 중후반 이상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보직을 맡은 지 1년, 젊은 처장의 깜짝 발탁 배경이 궁금했다.

장지호 한국외대 기획조정처장은 “과거에는 연륜이나 경륜 조정에 있어 나이가 있는 교수가 처장을 맡는 게 유리했지만 이제 대학의 ‘기획’ 분야는 우리 사회의 수요나 정부의 요구 등 외부의 문제로 접근할 부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다소 보수적인 교수사회에서 젊은 처장으로서 느끼는 애로사항도 없지 않다.

“대내적인 문제들은 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제일 큰 건 대외적인 문제예요. 정부관계 등에 있어서 연륜이나 경험을 당연시 여기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도 15년 정도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부와 관련한 일도 해왔고, 공무원 사회 관행과 시스템 등을 다른 전공 교수들보다는 잘 이해하고 있죠.”

기획예산처장은 대학 평가에 가장 민감한 보직이다. 해마다 대학평가와 구조개혁평가 등에 시달리는 자리다. 그는 지난달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마련한 ‘대학구조개혁평가 및 재정지원사업 재편 관련 전문가 간담회’에도 참석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는 대학구조개혁평가에 대한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에 대한 한계는 분명 있습니다. 평가를 한다고 실질적으로 교육 질이 좋아지느냐는 비판이 많죠. ‘행정학 교수 장지호’라면 지적할 점이 많지만 학교 내·외부의 문제를 파악하고 있는 기획처장은 또 달라요. 평가의 필요성에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평가조차 없다면 과연 무엇을 근거로 대학이 잘 가르치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검증할 수 있겠어요?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조정하고 채울 수 있는 게 대학평가의 순기능이라 볼 수 있죠.”

다만 장지호 처장은 평가 지표의 획일성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평가 지표를 구성할 때 하나의 잣대로 운영하기보다는 각 대학의 특성을 구분해서 다양화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외대의 교수이자 처장으로서도 정부에 아쉬운 점은 있다. “사실 전 세계 어디에도 외국어교육을 담당하는 대학 중에 사립인 곳은 없어요. 베이징, 도쿄 등 외국어대는 다 국립이거든요. 60년 넘게 외국어 교육을 시키고 있는데 정부가 이렇게 나 몰라라 하는 데 다소 무신경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나마 내년 특수어진흥법이 통과되는데 만시지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장 처장은 유명한 취미 부자다. 한때는 교수 보디빌더로 TV에 종종 출연한 이력이 있다.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장지호’라는 이름 세 글자를 치면 가장 먼저 구릿빛 피부로 건강미를 자랑하는 프로필 사진이 나타난다. 이 얘기를 꺼내자마자 그는 “괜히 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사실 운동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로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한 육체와 활동에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시작한 게 헬스다. “보디빌딩 대회까지 나갔죠. 몸을 만드는 데는 1년 반 정도가 걸렸고 유지한 건 한 10년 정도 됩니다.”

그에게 와인은 또 다른 취미였다. 연구년을 맞아 향했던 미국 오리건(Oregon)에서 우연히 마주친 와인이 계기가 됐다. “그 지역이 유명 와인 품종지였거든요. 돌아다니며 설명 들은 것을 기록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블로그가 파워블로그가 되고, 한국에 돌아와 와인 관계자나 수입사들을 만나 와인에 대해 더 배웠죠. 전문가는 아니고 준전문가 정도는 됩니다.” 실제로 장 처장은 한국외대 사이버대학의 교양과목인 ‘와인&다인(Wine & Dine)’ 수업에서 강의도 했다.

처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취미는 모두 포기했다. 몸무게는 정확히 14kg 불어났고 와인 블로그는 문을 닫았다. 그러나 잃은 만큼 얻은 것도 있단다.

“교수란 직업은 굉장히 고독한 직업이에요. 강의를 빼면 연구실에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죠. 자칫하면 혼자만의 성에 갇혀 아집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됐죠. 교수뿐 아니라 학생, 학교 직원들의 입장까지도 말이죠.”

보직이 끝날 때쯤이면 그의 연구년이 다시 찾아온다. 시작하면 끝을 보는 장 처장의 다음 취미 계획이 문득 궁금해졌다. “일본의 요리나 발효식품, 사케 등을 배워보고 싶어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운동과 와인이 우연찮게 찾아왔듯 또 다른 취미 생활에 발을 들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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