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14조 5920억원 규모 내년도 정부 R&D 예산 실효성은

文정부 일자리 정책기조 반영, 유관분야 R&D 우선투자 계획
“상향식‧풀뿌리 공약대로 늘려야”…과학기술혁신본부 출범이 관건
연구현장에서 실효 있으려면 간접비‧연구비 규제도 손 볼 필요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확대와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기조로 삼은 문재인정부의 첫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안이 확정된 가운데 대학가 기초연구에 숨통이 트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서 열린 제16회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2018년도 정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기초연구‧기반확대(기초원천) 1조8000억원 △R&D 기반 일자리 창출 9320억원 △4차 산업혁명 대응 1조5230억원 △바이오신산업 육성 5764억원 △재난재해 대응 8951억원 등으로, 20개 정부부처 460개 R&D 사업에 쓰인다.

■ 개인‧집단 기초연구 2400억‧4차 산업혁명 유관 분야 4108억 증가= 대학 연구현장에 영향을 미치는 기초원천연구와 기반확대의 예산이 올해보다 3000억원(15.6%) 늘어난다. 기술사업화 등 R&D 기반의 일자리 창출 예산도 1546억원(19.9%) 증액됐다. 이와 함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국가전략 5대 영역을 설정하고 예산을 3108억원(25.6%) 증액, 사업별 지원방식을 벗어나 ‘패키지 지원방식’이라 명명한 통합 지원을 시범 실시한다.

특히 기초원천 부문에서 개인‧집단 기초연구가 현행 1조26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2400억원(18.5%) 늘어난다. 첫 실험실을 여는 신진연구자들을 위한 ‘생애첫실험실’ 지원에 525억원을 투자해 전년대비 400억원 가량(250%) 예산을 증액했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견연구자(개인‧집단)에 대한 연구비도 922억원(20%) 늘어난다.

▲ (자료=미래부)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에 두는 정책 기조도 반영됐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 효과가 높은 △인력 양성‧활용 △기술창업 △사업화지원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집중할 계획이다. 대학서도 주목하고 있는 기술창업(3392억원, 36.3%), 사업화지원(2607억원, 8%) 분야 예산이 늘어난다.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R&D 예산 편성을 위해 5대 투자 영역으로 △기초과학 △핵심기술 △기반기술 △융합기술 △법‧제도를 선정했다. 이 중 핵심, 기반, 융합기술 분야에 대해서는 사업별 지원방식을 벗어나 기술‧산업‧제도를 하나로 묶는 ‘(가칭)패키지 지원방식’을 도입하고 내년부터 △자율주행차 △정밀의료 △미세먼지 세 분야에 시범 투자할 계획이다.

▲ (자료=미래부)

이와 함께 4차 산업혁명 유관 분야 육성을 위해 △바이오신산업(5764억원, 9.6%) △중소기업(1조6945억원, 3.1%) △서비스R&D(7826억원, 17.7%) 분야 투자를 증액했다.

이 밖에도 국민 삶의 질 향상과 재난‧재해 대응을 위한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과 지진‧산불‧미세먼지 연구에 8951억원(10.3%), 기후변화 대응 연구에 8955억원(6.8%), 국가치매 책임제 지원을 위한 치매 대응, 재활지원 및 만성질환 관리 분야에 877억원(48.1%)이 증액 투자된다.

이번에 확정된 ‘2018년도 정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은 기획재정부에 통보되며, 기재부는 출연연 운영경비, 인문사회 연구개발 등의 편성 결과와 함께 내년 정부 예산(안)으로 확정해 오는 9월 2일 국회에 송부할 예정이다.

■ 첫발 뗀 기초연구 증액, 공약대로 임기 내 4조 수준 실현할까= 기초연구비 증액에 대해서는 이미 정치권과 과학기술계의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관건은 이를 이행하려는 정부의 의지와 실행력이다.

지난해 과학기술계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연구현장 자율성 회복을 위한 청원운동을 진행하고 ‘바텀업(상향식)’ 방식의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비 증가를 요구했다. 특히 단순 지원금 증액보다 기존의 톱다운(하향식)이 아닌 상향식 비중을 증가시켜 달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정부‧여당도 현행 2조원 수준인 기초연구비를 2020년까지 2배로 확대하고, 바텀업 연구자 주도 자유공모 연구비 비율도 20%에서 2배 이상 확대하겠다던 정부‧여당의 대선공약을 내놓았다.

실제 개인‧집단 기초연구 분야의 올해 증액분도 2400억원으로, 예년 1600억원 대비 800억원이 더 늘어나 지난 정부에 비해 차별성이 있다는 평가다.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 노석균 상임대표는 한국 GDP 규모를 고려하면 상향식 기초연구비가 3조원 정도는 돼야 한다며 “현장에서 바라는 대로 됐으나 앞으로 계속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지난해 과학기술계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연구현장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한 청원운동을 진행하고 ‘바텀업(상향식)’ 방식의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비 증가를 요구했다. 사진은 지난 4월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for Science) 광화문 집회.(사진=김정현 기자)

관건은 의지와 실행력이다. R&D 예산안이 매년 부처 간 협의를 통해 발표됐던 것을 고려하면 번복이나 수정의 가능성은 적다. 전문가들은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 거버넌스 체계가 작동하려면 정권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과학기술계의 중지를 모을 수 있는 집행력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이는 정부조직 개편으로 미래부에 신설될 예정인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에 달렸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은 “4차 산업혁명은 산업 등의 연계가 큰 다부처적인 내용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가 4차 산업혁명의 기치를 들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기초원천 중심 과학기술 분야 정책 입안‧실행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당초 지난달 통과를 내다봤던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보수야당의 반대로 국회에 묶여있다. 통과되더라도 기획재정부 등 타 부처의 반발과 견제도 예고돼 있다.

이진규 미래부 1차관도 지난 7일 열린 과학기술연차대회에서 이를 언급하며 “20개 부처에 분산된 기초연구 원천사업을 미래부로 통합한다. 여러 부처의 반대가 있을 텐데 과학기술인 여러분이 미래부에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고 과학계의 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는 간접비‧연구비 지원규정 개선해야”= 연구현장 자율성 확대를 이루려면 간접비 등 현실과 괴리됐다는 평가를 받는 지원규정‧규제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연구비는 연구자들에게 주어지는 인건비성 경비와 장비‧재료‧사무용품‧활동 등 직접 연구에 활용되는 ‘직접비’와 연구진이 속한 대학 등 기관의 연구 지원금 등으로 간접 지원되는 ‘간접비’로 나뉜다. 특히 총 연구비 중 절반을 가져가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간접비에 비하면 비중은 낮지만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연구 현장에서 “증발했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김소영 원장은 미국은 간접비를 활용해 연구자들이 행정 업무를 하지 않도록 철저히 지원한다면서 “우리는 연구실에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영수증 처리하느라 밤을 샌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간접비가 도대체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겠다는 연구자들의 불만이 있다”고 지적했다.

▲ 정부가 발표한 2018년도 국가R&D 예산안 개념도.(자료제공=미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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