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대 안윤서(법학3)씨

몇 해 전, 강의 시간에 들은 교수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강의 준비는 물론 자기관리까지 완벽한 커리어우먼인 교수님은 이른바 TPO에 맞게 옷을 잘 입고 다녔다. 그래서 하루는 지인들 식사 자리에서 한 분이 '교수님 안목이 좋으셔서 그런지 자켓이 고급스럽고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하자 교수님은 미소로 화답했다. 다름 아닌 시장에서 구매한 단 돈 2만원의 자켓이었다. 사람은 보이는 모습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시각 정보의 오류를 범해 편견을 갖고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하기도 한다.

지난 5일 정부가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요즘 대학가에서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공정한 취업 경쟁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하나 실효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3학년이나 당장 졸업을 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 나가야 하는 4학년도 이에 민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른바 '인서울'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역차별'이라며 공부한 시간이 아무 쓸모없어지는 것 같다는 부정적 의견을 드러내는 반면 지방 소재 대학생들은 실력만으로 공평한 기회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등 특히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에서 견해 차이가 분분하다.

나 또한 지방 소재 대학교에 다니는 입장으로 블라인드 채용에 긍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 지방대 경우 입사 지원서를 쓰더라도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는 게 대다수다. 그래서 아예 면접 볼 기회조차 없다. 분명 대학(大學)이라는 큰 학문을 배우는 곳에 들어와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많은 준비를 했는데 서류조차 봐주지 않는다. 면접관들은 실력 있는 인재를 뽑는다 말하지만 결국 그들이 원한 건 화려한 스펙이었기 때문이다. 실력있는 인재가 스펙인가. 높은 학점과 보여주기 급급한 외모에 혈안이 되어 이력서 사진을 바꿀 것이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투박하고 부족하더라도 오랫동안 쌓아온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야말로 진정한 스펙 아닐까. 실력이 스펙이라는 보기 좋은 포장에 묻혀서는 안 된다. 이번 블라인드 채용은 학연ㆍ지연ㆍ혈연을 벗어나 입사 지원서가 보여주는 선입견을 버리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자리가 돼야 한다.

블라인드 채용은 반짝이는 원석 그 자체다. 우리 사회는 그 원석을 내다보고 깎고 다듬어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야 한다. 교수님이 보여줬던 그 미소처럼. 아마 지금 이 순간도 우리 청춘들을 땀 흘리며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종이 한 장에 쓴 이력이 20년 넘게 청춘을 받치며 살아온 우리 인생을 모두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당당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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