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측 “구체적 방법 논의 중…이전부터 언론 통해 의지 밝혀와”

▲ KAIST가 학내 논의가 끝나지 않은 무학과 학사과정안을 수험생에게 배포해 논란이 예상된다. 사진은 28일 코엑스에 붙은 과학기술원 입시설명회 포스터를 지나치는 학생들.(사진=김정현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학내 논의단계에 있는 무학과 학부 교육과정 개편안을 확정된 것처럼 수시박람회를 찾은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

KAIST는 지난 27일부터 30일까지 강남 코엑스(COEX)에서 열린 과학기술원 공동 입시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배포된 학사과정 모집안내 팜플렛에 개설 학부 및 학과에 ‘융합인재양성 무학과 트랙(가칭)’을 명기한 것.

현장에서 상담을 진행한 입학사정관은 “내년 3월부터 확정되는 내용이나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논의 중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KAIST에 따르면 이 내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항이다. 김보원 KAIST 기획처장은 “내부절차를 진행하고 있고 커리큘럼을 개발 중이다. 당장 시행되는 게 아니라 1년에서 2년의 기간을 두고 나서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학년 무학과 학사과정은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전공을 갖지 않는 일종의 ‘전공개방’ 과정을 2학년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입학전형 자체에는 영향이 없으며, 기존대로 모든 학생들이 전공 없이 단일계열로 1학년을 시작한다.

KAIST 학칙에 따르면 학사 운영에 대한 주요 사항을 변경하고자 할 때에는 학‧처장회의를 거쳐 학사‧연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 후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위원회는 총장이 지명하는 보직교수 2인, 학생대표 2인, 위원장인 교학부총장 추천을 받은 교원, 직원 2인으로 구성된다. 무학과 학사과정은 아직 위원회 전 단계인 학‧처장 회의도 열지 않았다.

설명회를 찾은 학부모와 수험생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고3생 자녀를 대신해 설명회를 찾은 박동홍(서울 송파구)씨는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라는데 뽑아두고 나중에 흐지부지되면 어떻게 하나”면서 “전공이 있어야 진로가 나올텐데 불안하다. 아이가 생명과학 전공을 강하게 희망해 무학과를 택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하용 입학처장은 아직 확정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총장 부임시부터 여러 언론을 통해 무학과 도입 의지를 내비쳐 왔다. 이번에도 우리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봐 달라"고 설명했다.

김보원 기획처장도 “2019학년도 도래시 2018학년도 입학생에게는 신설되는 무학과 학사과정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되므로 안내가 필요하다”며 “무학과 트랙 검토위원회에서는 학사과정 등 관련 내용을 설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KAIST의 무학과 교육과정 개편안은?

“4차 산업혁명에는 융복합 인재 양성 필요” 신성철 총장의 혁신안
“학계에 남고자 할 때는 무학과보다 전공을 갖는 게 유리” 우려도

KAIST가 내년도 신입생부터 무학과 학사과정 적용을 추진 중이다.

KAIST는 1986년 개교부터 전공없이 대학 단위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올해 KAIST가 추진하는 ‘융합인재양성 무학과 트랙(가칭)’은 1학년만의 무학과가 아닌 전 학년에 걸친 무학과 과정을 말한다. 무학과 학사과정이 신설되면 학생들은 전공 또는 무학과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국내에서 4년 무학과 학사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유일하다. 신성철 현 KAIST 총장이 DGIST 초대 총장으로 재직하며 도입했다. DGIST의 경우 200명 전원을 무학과 단일학부로 뽑고, 졸업 시 자신이 자유롭게 이수한 과목의 비율에 따라 이학사, 공학사 중 하나를 받게 된다.

무학과는 과학기술중점대학 전반에 확대되는 추세지만, 전 학년을 통틀어 무전공을 운영하는 곳은 아직 DGIST가 유일하다. 포항공대(POSTECH)는 내년도 입학생부터 1학년 전체에 무학과 제도를 도입하고, 이후 전공을 선택하도록 할 계획이다.

‘무학과 전도사’인 신성철 KAIST 총장은 융합이 강조되는 현대 과학기술의 변화를 도입 근거로 제시한다. 올해 DGIST를 떠나 KAIST 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공약에서부터 무학과 학사과정 도입을 주장해 왔다.

신 총장은 지난 4일 대만에서 열린 영국 대학평가기관 타임즈고등교육(THE)의 ‘리서치 엑설런스 서밋’ 기조연설에서 “기초과학, 공학과 인문사회교육을 강화한 전뇌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제간 융합연구는 물론, 취업과 창업 등 다양한 분야의 배경지식이 필요한 진로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무학과 전면 도입에 위험부담이 뒤따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KAIST의 한 관계자는 “졸업 후 바로 창업, 취업을 하고자 하면 융합이 유리하다. 하지만 학계에 남으려고 한다면 학부에서 한 분야에 특화된 학생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학계에 남길 꿈꾸며 진학하는 과학기술원 학생들에게는 전공에 심화된 지식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과 POSTECH은 무학과 과정을 심화전공 선택 전의 탐색 과정으로 운영한다.

KAIST는 현재 ‘무학과 트랙 검토위원회’라는 별도 학내 기구를 만들어 도입과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기구가 무학과 학사과정 도입을 반대하는 구성원을 배제하고 운영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조영득 총학생회장은 “실상을 보면 무학과 학사과정 도입은 당연하고 어떻게 만들지 논의하는 기구로 운영하고 있다. 융합인재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미완성 상태”라며 “4월 말 무학과 검토위가 처음 열렸다는 사실을 알고 5월 11일 교무처장에게 참석을 요청했는데, 한동안 시간을 끌다가 7월 4일 열린 4차 검토위부터 참석을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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